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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속삭임, 유령의 속삭임

영화 <벌집의 정령>을 보다가

by 황은화

빅토르 에리세의 영화 <벌집의정령>을 보며

묘하게도 내 과거의 기억과 만나게 됐다.

영화 <벌집의 정령> 1973년

살면서 두리뭉술 전체적인 그때의 인상이나 감정들은 기억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상황들 하나하나를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니다.


수치스런 기억 하나는 지우려해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아침마다 엄마는 작은 매점 일로 바빠서 나와 동생을 돌볼 시간이 없었다. 내가 알아서 옷 입고 세수 하고 이닦고 학교를 가곤 했다.

하루는 수돗가에서 세수를 하고 있는데 본 적 없는 낯선 아저씨가 내게 다가오더니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학교 갈 필요 없어. 안 가도 돼. 그렇게 중요하거나 의미 있는 게 아니야!"라고 속삭였다.


그건 분명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막연하게 학교가 가기 싫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혼동이 왔다. 가방을 맸지만 학교가 아니라 집 옆에 앵두나무에 걸려 있는 그네에 몸을 기댔다. 그 아저씨의 말이 계속 맴돌았고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마법에 걸리듯 그네를 타고 복잡한 생각들에 사로잡혔다.


어머니는 바빠서 내가 학교가 가지 않았던 사실을 몰랐다. 그렇게 한 두 시간이 지났을 무렵, 시장에서 찬거리를 사들고 오던 외삼촌이 날 발견하더니 물었다.


"너, 왜 학교 안 갔어?"

“가기 싫어서요.”


잠시 후, 엄마가 집으로 뛰어왔고 나는 엄마에게 엉덩이와 등짝을 맞았다. 그리곤 엄마의 거친 손에 이끌려 학교로 이끌려 갔다.


수업 중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로 향했고,

나는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울고 또 울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억울하고 서글펐다.


지금도 생각하면 왜 그 아저씨의 말을 따랐는지 모르겠다. 그 말을 따라야만 했다. 거역할 수 없었고 또 그러고 싶었다.


저녁에 엄마가 왜 학교에 안 가려고 했냐고 물었고, 외삼촌도 물었지만 나는 그 아저씨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 말을 하면 더 바보 같고 어리석어 보일 거 같아 함구했던 거 같다.


나의 그 경험은 깊이와 내용은 다르지만 5살 아나의 그 알 수 없는 심리와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그 무엇.


언니가 속삭여준 프랑켄슈타인의 은밀한 세계, 5살 아나는 그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유혹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만나게 된다.


그때의 경험은 잠시만의 일탈이었지만 그 속삭임은 힘이 있었다. 난 학교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늘 회의적이었다. 공부를 좋아해도 학교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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