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교, 거리에서 아버지를 만나다
소금을 뿌린 곳에 아버지가 서 있다.
아버지 (감정이 절제된 조용한 말투로) 너, 뭐하냐?
다소 놀란 민교.
아버지 뭐하냐고?
민교 소금 뿌려요.
아버지 대체, 너 여기서 뭐하고 있냐?
민교 책 팔고 있어요.
아버지 나는 내가 눈이 잘 못 된 줄 알았다. 뭐 책을 팔아?
민교 네. 책 팔아요.
아버지 집 나가서 이런 짓거리하고 있었냐?
민교 짓거리라뇨?
아버지 책들 싹 다 버리라고 했던 거 같은데….
민교 지금 버리고 있어요.
아버지 (정리된 책들 중 한 두 권을 툭 치며) 이게 버리는 거냐?
민교 천천히 버리는 중이에요. 모르시면 가만히 계세요.
아버지 뭘 모르는데?
민교 아는 게 뭔대요? 저 꼴 보기 싫으셔서 나왔는데. 왜 여기까지 찾아오셔서 시비세요.
아버지 뭐, 시비?!
민교 아, 아들이 이러고 있으니까 신경 쓰이시는구나~ 아버지 사회적 지위도 있는데 쪽팔리셔.
아버지 너….
민교 영업 방해하지 마세요!
아버지 당장! (사이) 정리하고 들어와. (사이) 책이 너를 망쳤는데 이 짓거리가 하고 싶냐?
민교 책은 신성한 거에요. 그리고 저 집에 안 가요.
아버지 안 가면 어디 가게?
민교 집 구했고요.
아버지 마음대로 해라, 마음대로.
민교 네. 마음대로 할 거에요. 그러니 장사 방해 마시고 어서 가세요.
아버지 당장 때려쳐!
민교 경고하는데요. 책 하나도 손대지 마세요! 손대는 날엔 진짜 큰일 날 줄 아세요!
아버지 큰일!?
민교아버지, 빨간책방을 헤집어 놓는다. 책을 이리저리 흐트러뜨리고 밟고 그림도 찢어버린다. 기타마저 바닥에 내리쳐 부셔버린다. 민교는 가만히 서서 지켜만 본다.
민교 후련하세요?
민교아버지, 망가진 기타를 손에 쥔 채 민교를 바라본다.
아버지 못난.
민교 저를 때리세요. 저를 때리시지 왜 애꿎은 물건들에 화풀이세요. 어렸을 때는 잘도 때리시더니 이제는 두려우세요.
민교아버지, 민교의 따귀를 때린다.
민교 차라리 이게 낫네요. 체면이나 남들 시선 따위 의식하지 마시고 하던 대로 하세요! 아무도 우리 신경 안 써요.
아버지 집안 망신시키지 마라!
민교 아버지나 위선 그만 떠세요.
아버지 너, 너의 무능을 이런 식으로 나에게 떠미는 거냐? 네 실패를 애비 잘못이라고 거리에서 떠벌리고 시위하는 거냐?
민교 잘 보셨네요. 그래요. 아버지 때문에 망했다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려고요.
아버지 약해빠져서!
민교 아버진 저 같은 놈이랑은 다른 분이시죠. 고결하고 강하시죠. (말을 잇지 못하고 화제를 바꾼다) 이 기타 기억은 나세요? 아버지가 중학교 들어갔다고 선물로 주신 거에요. 기억은 나세요?
아버지 넌 니 엄마 생각은 안 하냐?
민교 아버지나 실컷 생각하세요. 전 저 하나 생각하는 걸로도 벅차고 힘들어요.
아버지 넌 세상을 너무 몰라.
민교 맞아요! 전적으로, 전적으로 동감해요. 그래서 거리에서 체험하고 있어요. 책 밖에 세상은 어떤지, 저같이 무지하고 두려움 많은 놈이 어 떻게 살아야 하는지 체험해 보고 있어요.
아버지 이 책들이 널 망친 거 같아.
민교 아니요. 책들 덕분에 더 병신같이 살진 않게 된 거죠. 적어도 아버지 시키는 대로는 안 살게 됐으니까.
아버지 넌 재능으로 문학을 한 게 아니야. 도망친 거야. 도망치려고 글을 쓴 거라고. 넌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
민교 아버지는 실패자에요.
아버지 니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니?
민교 아니요. 하지만 책들 때문에 입은 통제가 안돼요. 이 주둥이는 멈출 줄도, 만족할 줄도 몰라요. 아버지가 목사라는 사실이 역겨워요.
다시 따귀를 치려고 손을 든 아버지. 치켜든 손이 공중에서 떨린다.
사이.
민교 김목사님, 성경도 책이에요.
아버지 마음대로 짓거려라! 마음대로 짓거리고 마음대로 살아.
민교 그렇게 할 수 있으면요.
아버지 (떨리는 손을 내려놓으며) 맘대로 해! 우린 할 거 다 했어. 그 보답이 이거면 할 수 없지. 대신 절대 집으로 기어들어올 생각은 하지 마! 절대!
민교 저도 원하는 바에요. 거긴 지겨워!
민교, 주변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떠나는 민교아버지.
민교 엄마 소식은 아세요?
민교아버지 멈춰 선다.
아버지 모른다.
민교 연락처도 모르시죠? 알려드려요?
아버지 됐다.
민교 엄마, 지금 캐나다에 있어요. 누나한테 갔어요. 아버지가 애지중지하는 딸에게요. 거기 사는 건 아니고 따로 산대요. 엄마 영어 배운 거 모르죠? 엄마 영어 잘해요. 궁금하시면 누나에게 연락하세요. 아버지가 너무 아끼는 딸에게요.
다시 걸음을 천천히 옮기는 민교아버지. 그의 앞을 막아서는 민교. 책 한 권을 아버지에게 건넨다. ‘바둑의 정석’.
민교 아버지 책인데 잘못 가져왔네요. 말년 위해서 제대로 정독해 보세요. 혼자서 외롭지 않게요.
민교아버지, 책을 힘없이 받아든다.
아버지 얼마냐?
민교 음…, 천 원이요.
민교아버지,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준다.
민교 거스름 돈 없어요.
민교아버지 말없이 떠난다. 민교, 받아든 지폐를 구겨서 떨어뜨린다. 부랑자3이 성경을 쓰다가 멈춘다. 지폐 쪽으로 천천히 기어온다.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