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책 사서 2-3

단속자들

by 황은화

2막 3장

단속자들


조명 들어오면 민교는 먼지털이개로 책과 물건을 두드리며 주변을 정리하고 있다. (할머니가 두고 간 보따리에 있던 스웨트를 입고 있다.)

잠시 후, 구청단속반이 거리에 등장한다. 빨간책방 근처에서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단속녀.


단속녀 자할, 자할 어디에요? 이쪽으로 오세요. 당장! (상대편 말 자르고 다소 엄격하고 신경질적인 말투로) 일단 여기로 오라구요! 잔말 말고 와 요. (전화 끊는다) 아 말 많아. 지가 상전이야?! 제발 쫌 니 나라로 가세요! (민교에게) 저 여기요! 여기요!


민교 (책 정리하다가) 네?


단속녀 여기 신고하셨나요?


민교 신고요?


단속녀 영업 허가 받으셨냐고요?


민교 그런 것도 있나요? 그냥 여기 보시다시피 쪼매난 가게입니다. 벼룩시장 아시죠?


단속녀 불법이네요.


민교 불법이요? 이게 불법이랄게….


단속녀 불법입니다. 영업 신고하셔야 장사할 수 있습니다. 주민등록증 줘 보세요!


단속남 온다.


단속녀 나 따라 다니라고 했죠!


단속남 죄송하니다. 누가 부러 가지고 주.차. 이바니 심가하네요.


단속녀 됐고요. 여기 사진 좀 찍으세요!


단속남 네. 며 장이나?


단속녀 (미간 찌푸리며) 알아서 찍어요. 쫌.


단속남 카메라를 들어 빨간책방을 찍으려고 한다.


민교 (사진 찍는 거 막으며) 뭐 하시는 거에요. 그냥 막 찍으시면 곤란하죠.


단속녀 거리에서 불법으로 상거래 하시는 거 단속대상입니다. 당장 철수하세요!


민교 거의 두 달 째 이러고 있는데 갑자기 왜 이러세요? 예고도 안 하시고 이러시면 곤란하죠.


단속녀 예고라뇨? 도로교통법 위반이세요.


민교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단속녀 범칙금 200만원 부가 대상입니다. 영업허가 받으시면 그때 다시 시작하세요. 일단 바로 철수하세요!


단속남 사진 찍다가 잡지 하나에 꽂힌다. 책 펼쳐본다.


민교 진짜 어이가 없네. 200만원이라고요?


단속녀 범위를 보도까지만 봤는데, 도로까지 잡으면 300만원 범칙금입니다. 도로까지 잡아 드릴까요?


민교 이 사람, 완전 웃긴 사람이네. 이런 가게들이 영업허가 받고 일합니까 어디?


단속녀 네, 영업허가 받고 합니다. 2017년부터 법이 바뀌었습니다. 게다가 민원이 들어왔습니다. 민원시에는 바로 집행할 의무가 있습니다.


민교 민원이요? 누가 신고했다고요?


단속녀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민교 대체, 누구요? 누가 그딴 신고했어요? 진짜, 저 근데… 혹시… 낯 이… 혹시 저 아세요? 혹시 그러니까 (얼굴 살핀다) 미선 누나세요?


단속녀 놀란다.


민교 누나 맞죠? 그래 여기 눈썹이랑 눈이랑 그대로다. 그대로야!


미선 저….


민교 동남고등학교.


미선 어?


민교 나 민교야! 김민교! 1학년 2반, 2학년 4반 김민교! 와아~ 진짜 반갑다. 누나 공무원 됐구나!


미선 민교?


민교 반가워요. (어색한 표정으로 바뀐다) 공무원 된 거야?


미선 얼마 안됐어. 6개월 정도. 민교구나~


민교 카리스마 쩐다. 진짜 공무원 같아.


미선 (작은 목소리로) 공무원이니까.


민교 원래 꿈이 댄서 아니었나? 춤하고 노래 엄청 좋아했잖아.


미선 민망하다. 넌 영화광이었자나?


민교 맞아. (작은 소리로) 빌어먹을 영화. 야, 반갑다. 이게 진짜 얼 마만이야. (얼버무리며) 그것도 거리에서.


미선 그러게 거리에서….


민교 멋있어요. 잘 어울려.


미선 어, 그래.


사이.


민교 우리 그때 쌍다리 밑에서 만났던 게 마지막이었지? 그날 소나기 오고 그때 사이즈 큰 나이키 운동화 신고왔는데 비 쫄땅 맞았잖아. 그때 누나 노란색으로 염색도 했었지?


미선 그랬었나?


민교 갑자기 옛날 생각난다. 악수라도 해요!


민교가 손을 내밀지만 미선 머뭇거리다 화제를 돌린다.


미선 내가 좀 바빠서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장사하면 안돼!


민교 그래요. (침 한 번 삼키고 능청스런 표정으로) 그래도 학교 인연인데 한 번만 봐줘라! 내가 알고 그런 게 아니라 어쩌다 시작한 거야. 나 법 같은 거 어기는 거 싫엉해, 아니 극혐이야. 설명하긴 힘든데 나한테나름 의미있는 일이야.


미선 (시선 돌리며) 사진 다 찍었어요?


단속남 이 책이고 다 툴린 말야. (베트남 여행책 펼쳐 보이며) 여기 가면 바가지 써. 여기 별료야. 이 솨람 안전 소갔네.


단속녀 놀러왔어요. 자할. 나 그쪽이랑 일하기 힘드네. 놀러왔냐고요?


단속남 뭐가 잘몬됐나요? 제가 또 머 잘몬핸나요?


단속녀 정신 차려요.


단속남 여기 어떻애 해요? 벌금 때려요?


단속녀 됐고요. 따라와요~


단속남 구냥 경고로 땡.


단속녀 민교야, 여기 바로 정리해. 그게 좋아. 또 민원 들어올 거야. 알았지?


민교 그래. (사이, 심호흡) 근데 미선 누나! (사이) 지은 누나 소식 혹시 알아요?


단속녀 (못 들은 척 외면하며) 나 갈게.


민교 지은 누나, 그 이후로 괜찮았던 거지? 잘 해결되고….


단속녀 나도 잘 몰라.


민교 알잖아. 잘 된 거지?


단속녀 나 갈게.


민교 누나, 그때는 내가 그러니까 내가 말야….


단속녀 됐어. 아무 말도 하지 마! 난 아무 것도 몰라. 여기 가게 바로 정리해. 알았지!


단속녀 급하게 가다가 멈춰 선다. 멈춰 서 가만히 호흡 고르다가 다시 걷기 시작한다. 단속자들 사라진다.


민교 (혼잣말) 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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