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책 사서 2-2

보자기를 든 할머니

by 황은화

2막 2장

보자기를 든 할머니


보자기에 짐을 싸서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 허리도 무릎도 아파서 빨간책방 옆에 주저 앉는다. 다리를 주무르며 쉬고 있자 민교가 말을 붙인다.


민교 뭘 이렇게 들고 가세요. 무겁게.


할멈 아이고 무릎이야. 이봐 총각 여기가 어디야?


민교 을지로입구요.


할멈 을지로? 종각이 아니고?


민교 종각은 저쪽으로 더 가야돼요.


할멈 저짝?! 아이고야. 다리 아파 못 가것다. 길이 왜 이렇게 복잡해.


민교 여기가 원래 복잡해요. 제가 같이 가 드릴까요?


할멈 됐다. 좀 쉬었다 가면 된다. 거 말고 혹시 물 있어?


민교 잠시만요, (물을 종이컵에 따라 건넨다) 물 드세요.


할멈 아이고~ 살았다 살았어.


민교 뭔 짐이래요?


할멈 옷이야.


민교 옷이 뭐 이렇게 많아요.


할멈 있어. (사이) 손주 겨울에 입으라고 스웨터랑 모자랑 뭐 그런 거야.


민교 좋겠다~ 손주!


할멈 그렇지. 좋겠지. 올해가 엄청 추울 거라고 뉴스에서 떠들어 싸서 내가 부지런을 좀 떨었지. 물 참맬로 맛있다.


민교 더 드릴까요?


할멈 그래 더 줘라. 내가 종각인지 종로인지 가려면 물이라도 왕창 먹어야겠다. 늙으면 걷는 것도 쉽지가 않아. 목도 쉬이 타고.


민교 들어드릴까요, 할머니.


할멈 됐다. 일 봐라. 지금 장사하는 거 아니야?


민교 근데 잠깐 비워도 돼요.


할멈 이놈아, 완전 초짜네. 그렇게 하다가 망한다. 사장이 가게를 지켜야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더니 곶감을 건넨다) 이거나 먹어라!


민교 망하려고 하는 거에요.


할멈 뭔 염소 방구끼는 소리!


민교 할머니 드세요. 전 괜찮아요.


할멈 말이라도 고마워서 그렇다. 하나 먹어라. 안 좋아해?


민교 아니요. 엄청 좋아해요. 제가 할머니 닮아서 곶감 좋아한다고 엄마가 그러셨어요. 식혜 좋아하는 거며 식성이 딱 할머니래요.


할멈 그럼 당장 먹어봐라.


민교, 곶감을 먹는다.


민교 맛있어요. 와아~ 꿀이에요, 꿀. 대체 어디서 사신 거에요?


할멈 사긴 내가 만들었지. 야, 손님 왔다, 가봐라!


민교 네, 여기 잠시 쉬고 계세요. 진짜 예술이에요.


빨간 책방에 손님이 와서 책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한다. 민교, 손님을 응대한다. 할머니는 편한 자세로 앉아 쉰다. 멍하니 허공을 응시하다 노랫가락을 조용히 한다.


할멈의 쓸쓸한 노래(몽금포 타령):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님 만나 보겠네

에헤이요 에헤이요 에헤이야 님 만나 보겠네

갈 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늦바람 불라고 성황님 조른다

에헤이요 에헤이요 에헤이야 성황님 조른다

임도 보구요 술도 마시며

몽금이 개암포 들렸다 가게나

에헤이요 에헤이요 에헤이야 들렸다 가게나

에헤이요 에헤이요 에헤이야 님 만나 보겠네


손님이 야한 책들과 만화책을 다수 구매해 간다. 즐겁게 거래를 마친 민교가 할머니 자리를 돌아보는데, 할머니는 자리에 없고 보자기짐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민교, 주변을 살피고 할머니를 불러보지만 찾지 못한다. 보자리를 끌어안은 민교.


민교 할머니!


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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