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일
황금마차 사무실.
기절해 있다 눈을 뜨는 꾹. 악몽을 꾼 듯 멍하다.
두부김치에 소주를 마시는 척과 탁. (탁은 술을 마시면서 연장들을 닦거나 광을 내며 정비를 한다) 깨어난 꾹에게 술자리로 오라고 손짓한다. 꾹은 좀비처럼 두 사람 옆에 앉는다. 척이 술을 따라주지만 마시지 않고 술잔을 바라보고만 있다.
척은 술이 급한지 저 혼자 연거푸 두 잔을 원샷한다.
척 캬아~ 시원타. 너도 해라! 먹고 정신 차려라! 야, 야, 내가 누구랑 얘기하니? 얌마, 괜찮냐?
꾹 (힘없는 말투) 아니. 절대적으로 안 좋은 거 같아. 이건 사람의 일이 아니야.
척 사람의 일이 아니면?
꾹 좆나 역겨운 일.
척 (얼굴을 진지하게 쳐다보다가 웃음이 터진다) 이 새끼~ 형님, 이놈 말하는 본새 좀 보세요.
탁 됐다.
척 이거, 이거 감방도 갔다 온 새끼가. 이거 (웃으며) 얌마, 일단 치웠으면 된 거야. (술잔 기울인 후, 탁에게 시선을 돌리며) 형님, 일이 힘들어서 비용 더 청구할까 고민 중입니다. 부패가 와아~ 이건 뭐. 탁형도 힘드셨죠?
탁 우리 일이 그렇지 뭐. 근데 공무원 새끼들 돈 더 안 준다. 그놈들이 우리 사정 봐줄 거 같아.
척 긍가? 그래도 이번 거는 정도가 있지. 청구는 해 볼려고요. 아냐 아냐~ 최 주임은 나랑 좀 잘 맞는 거 같아. 신경 써줄 거 같아. 암~
탁 반장아, 공무원은 공무원이다.
척 긍가?!!
꾹 저 유령 봤어요.
탁 (말 무시하며) 힘들었던 건 (눈짓으로 꾹 가리키며) 저기, 저 물건이지.
척 (술잔 부딪치며) 고생 많으셨습니다.
두 사람, 술을 들이켠다.
척 (돈 봉투 건네며) 저 여기, 다섯 장 더 넣었어요.
탁, 봉투에 돈 세지도 않고 주머니에 넣는다.
척 세보지 않으세요?
탁 잡으면 알아.
척 역시!
꾹 저 유령 봤다고요!
척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확 그냥, 막 그냥. 아오~ 그래, 자주 그래. 헛게 보이고 막 그러지. 나는 벌건 대낮에도 유령 봐. 요기 편의점 옆 골목 있지. 거기서 딱! 낮에도 딱! 알았냐!!!
꾹 진짜라고요. 진짜~ 벽에서 나왔는지 스윽, 옆으로 스윽…….
탁 유령 맞을 거다. 망자의 공간이니까. 오히려 우리가 침입자잖아.
척 맞단다. 야! (웃음) 암튼 다음엔 기절하면 죽는다. 죽을 것도 없지 그냥 거기 두고 올 거다. 치우는 일도 힘들어 죽겠는데 너까지 업고 오는 데 와아~ 환장, 허리 다 나가는 줄 알았다.
꾹 저는 오늘까지만 하겠습니다.
척 진짜? 도저히 못 하겠어?
꾹 죽어도. (술 원샷하며) 다른 거 알아볼게요. 그동안 넘 안일하게 살았나 봐요. 정신이 번쩍나요. 일준 건 고마운데 전 적성이 안 맞아요. 이제부터 정신 바짝 차리고 살려고요.
척 아이고, 득도하셨네. 득도하셨어.
탁 반장아, 억지로 시키지 마라. 괜한 사람 잡지 말고! (손짓하며)
척 알았다. (봉투 건네며) 자, 기절해주신 비용이다. 삼십. 아따 계산은 냉정해야 하는데, 다른 사람 같으면 1도 없는데, 너니까 그냥 쳐준다. 너 요즘 힘든 거 아니까! 용돈이라 생각해라. 원래는 오십 줄려고 했어.
꾹 (돈 센다) 감사해요.
척 한잔해라! 그리고 이 일은 소문내지 마. 소문나면 파리 꼬이거든.
꾹 네.
척 고 주둥이를 믿을 수가 없긴 한데…….
꾹 생각도 하기 싫어요. 트라우마예요.
척 트라우마?! (짧은 웃음) 잡설 그만하고 함부로 주둥이 놀리고 다니면 확 그냥, 막 그냥, 어, 진짜 국물도 없어!
꾹 네.
척 (술 한 잔 마시고 화제를 돌린다) 탁형, 근데 그 사람 자식이 하나 있었나 봐요.
탁 아들.
척 편지를 많이 썼더라고요. 글발이 뭐…… 작가가 따로 없더라고요. 그런데 부치지를 않고 그냥 쓰기만 했던데. 얼마 전까지도.
탁 아들이 캐나다에 있어.
척 캐나다요? 그것까지 아셨어요?
탁 (사진을 몇 장 건네며) 유학 가서 돌아오지 않고 쭉 살았나 봐. 캐나다년인지, 미국년인지 결혼했고 애도 둘이 있어. 켈리, 아니타.
척 오~ 언제 또 챙기셨대. 부지런도 하셔.
척, 사진을 유심히 본다.
척 아들놈 인물이 별로네. 키도 작고 병약해 보이기도 하고, 거기에 비해선 이 할아방 인 물도 좋고 풍채도 좋아.
탁 인생이 별거 없지. 사진 몇 장만 봐도 인생이 다 보인다. 별로 다를 게 없어. 사진이 증거지.
척 근데 형님,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왜 사진 모으세요? 찝찝하지 않으세요? 죽은 사람 사진 난 쫌 그런데…… 뭐 유별날 것도 없고.
탁 맞아. 유별날 게 없어. 그래서 모으는 거야. 이 사람 그냥 평범한 회사원으로 평생 산 사람이다. 전혀 별난 거 없어.
척 엄청 검소하더라고요. 취미도 없는 거 같고. (사진 탁에게 다시 건넨다)
탁 취미다, 취미. 내 취미가 사진 모으는 거다. 어렸을 때 우표 모으는 거 취미였는데 이제는 사진 모으기가 취미다. 재수 옴 붙는 것도 아니고 (사진을 보며) 사진을 보면 사람들이 아련해 보여서 버리기가 아깝더라고. 시체가 있던 자리를 치운 뒤에 사진을 보면 연민이 생겨. 이렇게 죽으려고 산 인생이 아니잖아.
척 로맨티스트야 로맨티스트. 죽은 사람이 아니라 형이 별나네.
탁 그래, 내가 별나지. 내 인생이 조금 별나지.
꾹 근데요, 형님들! 왜 무연고라고 했죠? 왜 구청에서는 몰랐을까요? 연고자 없는 죽음이라고 의뢰한 거잖아요. 지금이라도 캐나다에 있는 아들에게 알려야 하지 않나요?
탁 (사진 보며) 우리 말고 그런 데를 누가 유심히 볼 거 같냐. 대충 하는 거지. 육시랄 공무원놈들!
척 답답아, 알리면 올 거 같아?
꾹 당연히 오겠죠. 가족인데!
탁 그 노인이 편지를 쓰고 왜 보내질 않았겠어? 아들은 한국 떠나고 다시는 오질 않았어. 아들의 흔적이 전혀 없거든.
척 형님 완죤 탐정이시네.
꾹 그래도 가족인데…….
척 그래도 가족인데? 그래도 가족이라고!! (허탈하게 웃는다) 너 어느 별에서 왔니? 그래도 가족이라면 말이야. 우리가 거기 갈 일이 있을까 없을까. (술 한 잔 따라 다시 마신다) 화상아, 절대 없지.
탁 가족이 더해. 가족이 더 잔인해.
척 답답하다 너도. 감방도 갔다 온 놈이.
꾹 감방 얘기 그만해. 헤드에 또 막 오려고 하니까.
척 야. 거기 면회 간 사람 몇 명이나 되냐? 나 말고 또 누가 갔어?
꾹 됐어요. (사이) 그건 고맙게 생각해요. 고맙게 생각한다고.
척 그 자식놈 안 와. 연락받아도 절대 안 와. 그리고 우리가 그런 거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지. 우린 우리 할 일 하고 빨리 입금되면 장땡! 괜히 연고자 있다 해 봤자 일만 복잡하다. 석 달 방치된 시체라면 답은 딱인 거야. ALL ALONE, ALL ALONE, 인생 올 얼론이다.
꾹 (혼자 술 따라 마신다) 참 더럽네…….
척 알겠냐?
꾹 (고개 끄덕인다) 더러워. 저 화장실 좀 갔다 올게요.
척 더럽긴 니가 더 드럽다. 그렇게 토하고 또 버릴 게 있냐?
꾹 화장실 어디예요?
척 도망가는 거 아니지? 저기 벽에 열쇠 걸려 있다. 저거 가지고 계단 올라가면 나와. 올때 복도에서 소주 한 병 가져와. 손 닦고.
꾹 (귀에 대고) 네.
꾹이 화장실 간다. 두 사람, 술과 안주 먹는다.
탁 줄 거 있다.
척 뭐요?
탁 (가방에서 금두꺼비 꺼내준다) 어때?
척 와아~ 이쁜데요. 자태하며 귀엽기도 하고. 진짜 이쁘네요.
탁 장롱 속에서 찾았다. 깊은 곳에 있더라.
척 이뻐요. 이뻐서 침이 나오네요.
탁 밝히기는…… 그렇게 불행한 노인은 아닌 거 같네. 금두꺼비도 있고.
척 그러게요. 그런데 왜 저에게?
탁 너 원래 이런 거 챙기잖아.
척 아셨어요?
탁 왼손 들어 봐.
척이 손을 들자 손목시계가 손목에서 흘러내린다.
탁 모를 거 같아.
척 죄송해요.
탁 나 속이지는 마라. 난 일한 만큼 벌면 돼. 니가 반장이니까 콩고물은 알아서 챙겨. 상관 안해.
척 (벌떡 일어나더니 고개 숙여 인사하며) 감사합니다. 형님! 역시 내가 형님 때문에 산다. 이 시계 드릴게요. 내가 원래 형님 드리려고 챙겨둔 건데, 이런 거 싫어하실까 봐.
탁 (단호하게) 됐어. 시계는 더 싫어. 시간은 출근 시간, 퇴근 시간만 알면 되지. 근데 반장아, 속이진 말아라! 챙길 때 뭐 챙겼는지 말만 해. 나 속이면 바로 끝이다.
척 넵! 명심하겠습니다. (금두꺼비를 바라보며) 이건 팔지 말고 우리 황금마차 컴퍼니의 상징으로 삼아야겠어요.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죠. 행운의 상징으로다가~
탁 마음대로 해라.
탁, 술잔을 기울인다.
척, 두꺼비를 쓰다듬는다.
척 형님도 쓰다듬어 보세요. 자~
탁 유난은…….
척 해 보세요! 나쁠 거 없잖아요. 귀여운 두꺼비, 두꺼비님.
탁도 마지못해 두꺼비를 쓰다듬는다.
척 으메 귀여워라!
꾹의 인기척이 들리자 척은 금두꺼비를 숨긴다.
꾹이 소주병을 가지고 돌아온다.
척 가서 귀신 안 봤냐?
꾹 됐어요.
탁 있었을 텐데.
꾹 됐습니다. 저는 이만 갈게요.
척 그래 들어가라. 그럼 너, 앞으로 뭐 할 건데? 이 고수익 산업을 마다하고 뭐 할 거야? 설마 또 빠칭코에서 죽칠 생각이면 돈 뱉어내고 가라!
꾹 걱정 마세요. 그럴 일 없어요.
척 그래서 뭐 할 건데?
꾹 사람이 할 만한 일요. 이렇게 더럽고 역겨운 일 말고 깨끗한 일, 좆나 깨끗한 일 찾을 거예요.
척 니미.
탁 육시랄!
척과 탁이 꾹을 노려본다.
암전.
경쾌한 음악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