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공자의 집
낡은 연립주택 안.
성냥불을 켜자 꾹의 얼굴이 보인다. 성냥불로 향에 불을 붙여 꽂아둔다.
두세 군데 향을 꽂아두고 주문을 외우는 세 사람. 이상한 주문을 끝내고 헤드랜턴을 모두 켠다.
작업을 시작한다. 탁은 소독약을 뿌리며 이동한다.
척 인턴, 인턴, 아까 문패에 뭐라고 써 있었지?
꾹 (절도 있게 군인처럼) 예! 국가유공자의 집이라 써 있었습니다.
척 이 집은 국가유공자의 집이니 정성을 다해라!
꾹 예써!
척 이게 나라냐? 국가유공자가 이런 데 살아? 게다가 연고도 없이 깨꾸닥!!
탁 조용!
척 국가유공자님이 이렇게 비참하게 돌아가시고 (성호 긋는다) 주여! 이분은 천주교 신자셨네. 절에는 왜 안 다니셨나. 아이고 불쌍하셔라~ 탁형, 이분은 국가를 위해 뭘 하신 걸까요?
탁 시끄럽다.
척 말이 안 나올 수가 없네요. 딱해서.
성호를 다시 긋는 척.
척 주여~ 주여~ 어디 계시나이까!
신나서 일하는 꾹. 그 모습을 보는 척.
척 신났네. 신났어.
꾹 전 이 일이 너~무 즐겁습니다. 딱 제 체질이에요.
척 확 그냥 막 그냥. 명심해. 당분간은 인턴이야, 인턴!
꾹 넵, 싸장님!
척 너 맛이 갔지? 정상 아니지?
꾹 돌았습니다. 싸장님!
탁 잡담 그만하고 일이나 해!
꾹 네. 마스터!
꾹, 일하다 옛날 축음기를 발견하고 음악을 틀어 본다.
탁 꺼!
꾹 음질도 좋아요. 아직도 축음기가 있네.
탁 꺼!
척 꺼라 인턴!
꾹 넵. 근데 저 이거 가져도 되죠?
척 아이고, 아이고 그래 가져라 가져!
꾹 넵.
꾹은 주변 둘러보다가 스노볼을 들어 올린다. 스노볼을 흔들더니 그 모습을 유심히 본다.
꾹 이쁘다. 저 이것도 가질게요!
척 그래, 그래. 다 가지세요. 이 구더기 곰팡이들도 좀 가질래?
탁 쟤 잘라! 거지 같은 놈! 왜 안 그만두고 자꾸 따라다니는 거야.
척 그러게요. 후회가 막심입니다. 그때 잘랐어야 했는데. 귀신처럼 들러붙어서 불행히도 이 일의 재미를 알아버렸네요. 그래도 저노마 좀 귀엽지 않나요?
탁 귀여운 거 다 죽었다. 쟨 좀 심한 거 같아. 탐욕이 왜케 심해.
꾹 탐욕이라뇨? 섭섭하시게~ 적성 찾은 거 같습니다. 요즈음 이 조도가 완전 맘에 들어요.
척 뭐 조도? 조또!
조용히 세 사람 일에 열중하기 시작한다.
한쪽 구석에 유령(여자)이 나타난다.
이번에도 꾹이 유령과 눈이 마주친다.
꾹 형님들, 형님들! 보이세요? 저기요!
꾹이 말을 건네지만 척과 탁은 꾹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꾹은 계속 말하는데 두 사람은 조용히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
마치 투명 인간의 말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듯 꾹의 말을 듣지 못한다.
꾹 척형, 장난치지 마요! 진짜 유령이야! 또 온다고!
유령이 다가온다.
환영(여) (낮은 음성) 알고 있어? 여보, 여보, 알고 있어?
꾹은 환영을 피하면서 일한다. 환영은 꾹을 향해 같은 말을 반복, 일정한 거리를 두고 꾹을 따른다. 아주 천천히 가까워진다. 꾹은 정신이 없다. 밖으로 나가버린다. 환영은 천천히 그를 따라 이동한다.
그사이, 척과 탁은 잠자리와 주변을 정리한다. 그러다가 상자 하나를 발견한다.
척 보물상자 같아요.
탁 열어 봐!
척, 성호를 긋고 아주 천천히 상자를 연다.
훈장과 젊은 여자의 흑백사진, 진주목걸이, 편지 뭉치가 담겨 있다.
척 미인이네요.
탁 그래.
척 (목걸이를 들어 올리며) 진주목걸이도 이 여자랑 관계가 있겠죠?
탁 모르지.
척 형님, 이 사진 가지셔야겠다. 제가 봐도 이 사진은 딱 의미도 깊어 보이고, 미인이고…… 그럼 진주목걸이는…….
탁 사연이 있어 보이네.
척 (훈장을 집어 들고) 훈장이 이렇게 있으면 뭐 하노! 알아주지도 않고 이렇게 혼자 뒤져버리시고,
척이 탁의 가슴에 훈장을 대 본다.
척 간지난다. 형님!
탁 됐다. 어여 넣어! 부정 탄다.
척 (훈장을 이번에는 자신의 가슴에 대 보며)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지. 이 나라에서는 국가를 위해 좆나 목숨 걸어도 이 모양 이 꼴이야. 대일본제국과 위대한 양키들을 위해 살아야 만수무강 대대손손 평안한 거지. 이게 집이야? 감옥이지. 눈을 아무리 씻고 찾아봐도 돈 되는 건 하나도 없네. 죄다 골동품들. 건질 건 이 진주목걸이랑 훈장 하나 뿐이네요. 참 쓸쓸하다, 쓸쓸해.
탁 (사진을 다시 상자에 넣으며) 이 사진은 가지면 안 될 거 같다. 여기 상자에 있는 게 맞다.
척 죽었는데요. 뭐…….
탁 넣어둬!
척 그럴까요? 이 상자 어떻게 할까요?
탁 두고 가자! 이건 가져갈 물건이 아닌 거 같다. 진주목걸이도 두고 가라! 느낌이 안 좋다.
척 느낌이 안 좋으세요? (진주목걸이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이쁜데.
탁 이 일 하다 보면 예감이란 게 있어. 이것들은 두고 가자.
척 넘 이쁜데…… (사이) 네, 형님! 형님이 그러시면 뭐 두고 가죠. (아쉬워하며 입맛을 다신다)
기운이 다 빠져서 꾹이 들어온다.
진주목걸이를 급하게 상자에 넣는 척.
척 저 화상. 뭐 하다 인제 와?
꾹 저, 유, 유, 유령, 저 뒤, 여자, 머리 길고, 걸어서, 저기에서.
척 뭐래?
꾹, 척의 다리를 잡는다.
꾹 제발 쫌, 저 좀 도와주세요! 형님들! 유, 유령이…….
척이 꾹의 이마에 손을 얹더니 가운뎃손가락만 뒤로 젖혀 딱밤을 때린다. 강력한 딱밤이다. 꾹은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처럼 말이 없어지고 멍한 상태가 된다.
무대에 무당이 나와 우아한 동작으로 춤(부채춤)을 춘다.
(그사이 척과 탁 퇴장한다. 꾹이 무대 구석에 서서 그 동작을 지켜본다)
나비같이 가볍고 유연한 부채춤이 펼쳐진다. (무당의 춤이 펼쳐진다.)
짧은 시간이지만 무대에서 동작(움직임)을 하고 여자는 자리에 앉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