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자들
황금마차 사무실.
낚싯대 정비하는 탁.
한가로이 테니스공 공중으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소일하고 있는 척.
그러다가 공을 탁에게 던지고 탁이 공을 받고 다시 척에게 던진다.
두 사람 대화하며 공을 주고받는다.
척 탁형, 우리 꼭 마부들 같지 않아요?
탁 뭔 소리?
척 어렸을 때 제주도에 가족끼리 여행을 갔거든요. 제가 아홉 살 때였을 거예요. 도깨비길이라고 알아요?
탁 까꾸로 가는 길.
척 까꾸로~ 거기서 차가 퍼져버렸어요.
척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아빠랑 엄마가 막 싸우기 시작하는 거예요. AS 차량 올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할 거 같고, 부부싸움 끝날 기미도 안 보이고 뭐 자주 보던 풍경이라 신경도 안 썼죠. 들판 구경 다녔어요. 나비 따라, 방아깨비 따라 놀았죠. 그러다가 들판에서 쓰러진 말을 본 거예요. 처음에는 그게 살았어요. 힘겹게 숨을 쉬고 있더라고요.
척이 죽은 말처럼 숨을 천천히 쉰다.
척 땅에 뜨거운 콧김이 새겨졌어요. 호기심도 호기심인데 말이 나에게 와달라고 하는 거 같았어요. 무서웠지만 다가갔죠. 조심스레 다가가서 만져주는데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더니 천천히 숨이 잦아들었어요. 몸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죽었던 거죠. 한 순 간 몸이 축 늘어져버리더라고요. 한동안 그 옆에 우두커니 있었어요. 시간이 멈춘 거 같았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말 주인이 나타났어요. 마부요. 체구가 큰 남자인데, 스키니 가죽 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고 목걸이와 반지를 주렁주렁 매달고요. 여자처럼 머리칼이 긴 아저씨였어요. 말 주인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저승사자같이 보이기도 했어요.
탁 (웃으며) 저승사자?
척 그래서 도망갔어요. 무서웠거든요. 형님! 이 짓 하기 전까지 제가 본 시체는 그게 전부에요.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때는 제가 군대에서 사단 동계 훈련 중 사고가 나서 어수선했거든요. 재수 없게 총기 오발 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머님 돌아가신 소식을 늦게 전달받았어요. 빌어먹을! 너무 늦었죠. 화장 전에 못 갔어요. 병신 같은 소대장, 중대장 놈들. 그래서 엄마 죽은 모습은 몰라요. 이 일 하면서 익숙해져 시체 봐도 아무 감정도 없지만 전 시체가 꼭 말 같아요. 축 늘어진 말! (사이) 탁형, 우리들도 마부 같지 않아요?!
탁 모르겠다.
척 길을 잃은 말을 다른 곳으로 보내주는 사람! (사이) 형님 말마따나 유별나거나 별난 사람들이 아니라 무리에서 잠시 떨어져 나왔다가 길을 잃은 짐승들의 죽음을 치우는 사람.
탁 말(馬)은 아름답지.
척 말은 아름답죠. 인간도 원래 아름답잖아요. 벗은 인간은 아름답잖아요.
탁 벗은 인간?! 아름다운 사람은 죽어도 아름답고 추한 사람은 죽어서는 더 추악하지.
척 때밀이하셨다 하셨죠?
탁 시체공시소. 이 새끼야! 툭하면 때밀이래.
척 또 발끈한다. 저 표정 재밌단 말이야.
탁 재미는, 육시랄! 시체공시소 장례지도사. 알았냐?
척 네네. 장례지도사.
누군가 사무실 문에 노크한다.
문밖에 어떤 남자가 와 있다.
척 누구세요?
남자 여기가 황금마차 맞나요?
척 맞습니다. 그런데요?
남자 안녕하세요!
척 안녕 못한데요~
남자 저…….
척 무슨 일이시죠?
남자 두 달 전에 장기태 선생님 집을 정리하셨다고 들어서 왔습니다. 구청에서 여기에 가보라고 해서요.
척 구청에서요? 그럼 전화를 먼저 하시지.
남자 근처 지나는 길이라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탁 장기태가 누구요? 이름만 말하면 우리는 몰라요.
남자 그분은 국가유공자이십니다.
척 (조용한 목소리로 탁을 향해) 국가유공자? (본래 목소리 톤으로 문을 향해) 몰라요!
밖에서 사무실로 들어오던 꾹이 찾아온 손님에게 아는 척을 한다.
꾹 국가유공자?!! 기억납니다. 기억나요.
꾹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찾아온 남자도 자연스레 들어오게 된다.
척이 인상을 쓰고 꾹을 째려본다. 꾹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남자 안녕하세요~ 장기태 선생님 집을 정리하셨다고요?
척 저희는 시체만 처리해서 시체가 국가유공자인지 뭔지 모릅니다. 저 새끼가 뭘 좀 아나본데 저 친구한테 물어봐요.
꾹 아 왜요? 두 달 전에 그 집, 아무것도 없는 그 쓰레기 집. 기억 안 나세요?
탁 생각해 보니 국가유공자 집에 간 적 있는 거 같소.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소?
남자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탁 그분 손자신가?
척 아닙니다. 장기태 선생님 친구분의 손자입니다.
탁 가족도 아니시고 더더군다나 두 달도 지나 도움 될 일이 없을 거요.
남자 그게…… 장기태 선생님이 저희에게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저희 할머니에게 남기신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척 그래서?
남자 혹시 현장에서 뭘 발견하지는 않으셨나요?
척 참 나, 우리를 뭘로 보고! 저희는요, 돈 받고 유품 치우는 사람들이지 도둑들 아닙니다. (구시렁거리는 말투로) 일도 힘들어 죽겠구만. 별게 다 와서…….
남자 오해 마십시오.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척 딱 그 말인데 뭔 오해?
남자 그래도 혹시 몰라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혹 그 집에서 뭘 보지는 않으셨는지 해서요.
척 뭘 말이요? 뭘?
탁 저희는 유품만 처리합니다.
남자 오해가 없으셨음 합니다.
척 우리한테 찾아올 게 아니라 그 집 찾아가서 뒤져 보면 될 거 아니오.
남자 집에 가 보긴 했습니다.
척 그럼 된 거지,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난리야.
남자 저희 할머니에게는 너무 중요한 거라 꼭 한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발견한 게 있으신지 해서요. 죄송합니다.
척 시간 낭비 마시고 가요 가. 우리도 바쁜 사람들이니까.
남자 그런데 혹시라도 말이죠. 혹시라도 뭐 기억이 나시거나 물건에 대해 아시면 (명함 내밀며)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척 한국말 못 알아들어??
척이 남자에게 달려들자 꾹이 막아선다.
꾹 무쟈게 중요한가 보네요, 이러시는 거 보니까. 집문서? 땅문서? 아님 보석 같은 거예요?
남자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척 위선 떨기는, 그 집 아무것도 없었어. 그 노인 비참하게 살다 비참하게 죽었어요. 살았을 때 연락이라도 하지. 암만 가족이 아니어도, 내가 뭐 이런 말까진 할 건 아닌데 죽은 사람한테 뭐 받을 생각이나 하지 말고 반성들이나 하셔. 뒈지고 나서 물건 찾아 가려는 건 대체 뭔 심보야? 도둑은 되레 그쪽인데 알지도 못하면서 남 도둑 취급이나 하고 씨발. 어이없으려니까…….
남자 결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남자, 돌아서다가 물건 하나에 시선을 준다. 책상 위에 스노볼을 집어 든다.
남자 이거 혹시?
척 야!
남자가 다시 스노볼을 내려놓는데 척이 화를 참지 못한다. 남자의 멱살을 잡는다.
척 미쳤어?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
탁과 꾹이 척을 말린다. 두 사람을 떼어내려고 하는데 척이 쉽게 손을 놓지 않는다. 강제로 떼어내다가 네 사람이 모두 넘어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척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진주목걸이가 깨져서 구슬들이 흩어진다. 순간, 멍해진 척. 놀란 남자가 바닥에 떨어진 진주알들을 줍는데 탁이 말린다.
탁 됐소. 가 보쇼. 우리도 결례를 한 것 같네.
남자 저 때문에…….
탁 아니오. 가시는 게 낫겠소.
남자가 목례를 하고 사무실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