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부들 1-5-1

방문자들

by 황은화


1막 5장 (1부)

방문자들

황금마차 사무실.


낚싯대 정비하는 탁.

한가로이 테니스공 공중으로 던졌다 받았다 하며 소일하고 있는 척.

그러다가 공을 탁에게 던지고 탁이 공을 받고 다시 척에게 던진다.

두 사람 대화하며 공을 주고받는다.


탁형, 우리 꼭 마부들 같지 않아요?


뭔 소리?


어렸을 때 제주도에 가족끼리 여행을 갔거든요. 제가 아홉 살 때였을 거예요. 도깨비길이라고 알아요?


까꾸로 가는 길.


까꾸로~ 거기서 차가 퍼져버렸어요.


차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아빠랑 엄마가 막 싸우기 시작하는 거예요. AS 차량 올 때까지 한참 기다려야 할 거 같고, 부부싸움 끝날 기미도 안 보이고 뭐 자주 보던 풍경이라 신경도 안 썼죠. 들판 구경 다녔어요. 나비 따라, 방아깨비 따라 놀았죠. 그러다가 들판에서 쓰러진 말을 본 거예요. 처음에는 그게 살았어요. 힘겹게 숨을 쉬고 있더라고요.


척이 죽은 말처럼 숨을 천천히 쉰다.


땅에 뜨거운 콧김이 새겨졌어요. 호기심도 호기심인데 말이 나에게 와달라고 하는 거 같았어요. 무서웠지만 다가갔죠. 조심스레 다가가서 만져주는데 커다란 눈물 한 방울을 떨어뜨리더니 천천히 숨이 잦아들었어요. 몸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죽었던 거죠. 한 순 간 몸이 축 늘어져버리더라고요. 한동안 그 옆에 우두커니 있었어요. 시간이 멈춘 거 같았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저 멀리서 말 주인이 나타났어요. 마부요. 체구가 큰 남자인데, 스키니 가죽 바지에 가죽 재킷을 입고 목걸이와 반지를 주렁주렁 매달고요. 여자처럼 머리칼이 긴 아저씨였어요. 말 주인이 분명한데 이상하게 저승사자같이 보이기도 했어요.


(웃으며) 저승사자?


그래서 도망갔어요. 무서웠거든요. 형님! 이 짓 하기 전까지 제가 본 시체는 그게 전부에요.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그때는 제가 군대에서 사단 동계 훈련 중 사고가 나서 어수선했거든요. 재수 없게 총기 오발 사고가 있었어요. 그래서 어머님 돌아가신 소식을 늦게 전달받았어요. 빌어먹을! 너무 늦었죠. 화장 전에 못 갔어요. 병신 같은 소대장, 중대장 놈들. 그래서 엄마 죽은 모습은 몰라요. 이 일 하면서 익숙해져 시체 봐도 아무 감정도 없지만 전 시체가 꼭 말 같아요. 축 늘어진 말! (사이) 탁형, 우리들도 마부 같지 않아요?!


모르겠다.


길을 잃은 말을 다른 곳으로 보내주는 사람! (사이) 형님 말마따나 유별나거나 별난 사람들이 아니라 무리에서 잠시 떨어져 나왔다가 길을 잃은 짐승들의 죽음을 치우는 사람.


말(馬)은 아름답지.


말은 아름답죠. 인간도 원래 아름답잖아요. 벗은 인간은 아름답잖아요.


벗은 인간?! 아름다운 사람은 죽어도 아름답고 추한 사람은 죽어서는 더 추악하지.


때밀이하셨다 하셨죠?


시체공시소. 이 새끼야! 툭하면 때밀이래.


또 발끈한다. 저 표정 재밌단 말이야.


재미는, 육시랄! 시체공시소 장례지도사. 알았냐?


네네. 장례지도사.


누군가 사무실 문에 노크한다.

문밖에 어떤 남자가 와 있다.


누구세요?


남자 여기가 황금마차 맞나요?


맞습니다. 그런데요?


남자 안녕하세요!


안녕 못한데요~


남자 저…….


무슨 일이시죠?


남자 두 달 전에 장기태 선생님 집을 정리하셨다고 들어서 왔습니다. 구청에서 여기에 가보라고 해서요.


구청에서요? 그럼 전화를 먼저 하시지.


남자 근처 지나는 길이라 직접 말씀드리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장기태가 누구요? 이름만 말하면 우리는 몰라요.


남자 그분은 국가유공자이십니다.


(조용한 목소리로 탁을 향해) 국가유공자? (본래 목소리 톤으로 문을 향해) 몰라요!


밖에서 사무실로 들어오던 꾹이 찾아온 손님에게 아는 척을 한다.


국가유공자?!! 기억납니다. 기억나요.


꾹이 문을 열고 들어온다. 찾아온 남자도 자연스레 들어오게 된다.

척이 인상을 쓰고 꾹을 째려본다. 꾹은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남자 안녕하세요~ 장기태 선생님 집을 정리하셨다고요?


저희는 시체만 처리해서 시체가 국가유공자인지 뭔지 모릅니다. 저 새끼가 뭘 좀 아나본데 저 친구한테 물어봐요.


아 왜요? 두 달 전에 그 집, 아무것도 없는 그 쓰레기 집. 기억 안 나세요?


생각해 보니 국가유공자 집에 간 적 있는 거 같소.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소?


남자 꼭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분 손자신가?


아닙니다. 장기태 선생님 친구분의 손자입니다.


가족도 아니시고 더더군다나 두 달도 지나 도움 될 일이 없을 거요.


남자 그게…… 장기태 선생님이 저희에게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저희 할머니에게 남기신 게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자 혹시 현장에서 뭘 발견하지는 않으셨나요?


참 나, 우리를 뭘로 보고! 저희는요, 돈 받고 유품 치우는 사람들이지 도둑들 아닙니다. (구시렁거리는 말투로) 일도 힘들어 죽겠구만. 별게 다 와서…….


남자 오해 마십시오.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딱 그 말인데 뭔 오해?


남자 그래도 혹시 몰라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혹 그 집에서 뭘 보지는 않으셨는지 해서요.


뭘 말이요? 뭘?


저희는 유품만 처리합니다.


남자 오해가 없으셨음 합니다.


우리한테 찾아올 게 아니라 그 집 찾아가서 뒤져 보면 될 거 아니오.


남자 집에 가 보긴 했습니다.


그럼 된 거지,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난리야.


남자 저희 할머니에게는 너무 중요한 거라 꼭 한번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혹시 발견한 게 있으신지 해서요. 죄송합니다.


시간 낭비 마시고 가요 가. 우리도 바쁜 사람들이니까.


남자 그런데 혹시라도 말이죠. 혹시라도 뭐 기억이 나시거나 물건에 대해 아시면 (명함 내밀며) 연락을 부탁드립니다.


한국말 못 알아들어??


척이 남자에게 달려들자 꾹이 막아선다.


무쟈게 중요한가 보네요, 이러시는 거 보니까. 집문서? 땅문서? 아님 보석 같은 거예요?


남자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위선 떨기는, 그 집 아무것도 없었어. 그 노인 비참하게 살다 비참하게 죽었어요. 살았을 때 연락이라도 하지. 암만 가족이 아니어도, 내가 뭐 이런 말까진 할 건 아닌데 죽은 사람한테 뭐 받을 생각이나 하지 말고 반성들이나 하셔. 뒈지고 나서 물건 찾아 가려는 건 대체 뭔 심보야? 도둑은 되레 그쪽인데 알지도 못하면서 남 도둑 취급이나 하고 씨발. 어이없으려니까…….


남자 결례를 범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남자, 돌아서다가 물건 하나에 시선을 준다. 책상 위에 스노볼을 집어 든다.


남자 이거 혹시?


야!


남자가 다시 스노볼을 내려놓는데 척이 화를 참지 못한다. 남자의 멱살을 잡는다.


미쳤어? 왜 남의 물건에 손을 대?!


탁과 꾹이 척을 말린다. 두 사람을 떼어내려고 하는데 척이 쉽게 손을 놓지 않는다. 강제로 떼어내다가 네 사람이 모두 넘어지게 된다. 공교롭게도 척의 바지 주머니에 있던 진주목걸이가 깨져서 구슬들이 흩어진다. 순간, 멍해진 척. 놀란 남자가 바닥에 떨어진 진주알들을 줍는데 탁이 말린다.


됐소. 가 보쇼. 우리도 결례를 한 것 같네.


남자 저 때문에…….


아니오. 가시는 게 낫겠소.


남자가 목례를 하고 사무실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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