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 빼고, 몇 달 전부터 예약됐던 가족여행에 간 친구 빼고, 어제 갑자기 다친 친구 빼고 나니 4명 친구 중 참석자가 오로지 나뿐이다. 선글라스도 챙겨 나왔지만 차마 실내에서 쓸 용기까진 나지 않더라. ‘어머 쟤는 친구도 없나 봐’ 소리 듣는 것보다 쌍꺼풀 수술한 지 얼마 안 된 사람으로 오해받는 게 더 두려웠던 것 같다. 난 자연미인이니까.
“여기, 자리 있나요?” 맨 끝 테이블에 한 자리가 비어 보여 자리를 잡는다. 여자 혼자 결혼식장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우선 옆자리 여사님들에게서 훅훅 질문 공격이 들어왔다. 홀로 온 신부 친구는 가장 만만해 보이는 탓일까. 처음 본 사람들이 집중포화를 퍼부었다. “몇 살이에요?” 그들은 신부 쪽 하객일까, 신랑 쪽일까. 내가 앉은 곳이 신부 쪽이라고 신부 하객일 거란 안일한 추측은 결혼식 맨 끝 테이블에서 통용될 수 없다. 그런데 도대체 누구 나이를 말하는 거지? “저는 32살이고, 신부는 31….” “어머머, 신부가 스물대여섯으로밖에 안 보이던데 나이가 많네!” 진실을 말했지만 뭔가 실수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신부는 뭐하는 처자야?” 신랑 쪽에서 오셔서 아주 제대로 취재하실 생각이신가 보다. “신부는 일해요.” 역시 아차, 싶다. 그냥 회사라고 하지 말고 외국계 기업이라고 표현할 걸 그랬나. 얼마나 들어가기 어려운 회사인지 혀를 내둘러줬어야 했나.
“신랑은 뭐하고?” 잠시 전화기에 한눈파는 사이 날아온 어퍼컷이 나를 한방 먹였다. 뭐지, 이분들은 신랑 쪽 하객도 아니란 말인가.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성형외과 의사예요.” “진짜? 어머어머 신부 측이 잘 사나 보지?”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제 친구, 예쁘잖아요. 이대 나온 여자예요.” 이만하면 대답이 되었으려나 했더니 그다음부턴 스피드 퀴즈 같은 빠른 문답이 시작됐다. 신랑은 몇 살인지, 둘은 어디서 만났는지. 머뭇거리면 별로 친하지 않나 보다 할 것 같고, 그렇다고 지나치게 넙죽넙죽 잘 대답하면 친구의 신상을 나불대는 것 같고, 이래저래 처신이 곤란하다.
신랑과 신부 입장이 시작되면서 질문이 줄었다. “신부가 이쁘구나. 아주 이쁘네. 저렇게 예쁜데 뭐 돈 없어도 되지. 오호호호.” 박수갈채 속에 불편한 언사들이 계속된다. 축가가 시작되자 여사님들은 내게 시간 때우기용 질문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는 뭐하는 사람이며 어떤 남자와 결혼했는지, 살고 있는 집은 전세인지 자가인지. 꼼짝없이 고해바치자 여사님들이 내린 결론은 내 남편 같은 일을 하는 남자는 처가가 잘살아야 한단다. 내 참. 음식이 식었다. 사람들과 빙 둘러앉아 음식을 먹지만 혼자 먹는 기분 그대로의 맛이다.
결혼 거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한국형 결혼식을 마치고 나와 잔뜩 심사가 뒤틀려 근처 카페를 방황했다. 남편, 미안해. 우리 집이 좀 더 잘살았어야 했나 봐. 나랑 결혼해줘서 고… 고… 고맙다? 집에 가야겠다. 일요일이 다 끝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