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마음먹고 연차를 내고 난임 치료를 위해 산부인과에 앉아 있다. 아니 세상에 임신한 여자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는? 요새는 난임 부부가 많은지라 고작 결혼생활 2년 만에 임신 스트레스를 토로해봤자 어디 명함도 내밀지 못한다. 초조해지는 이유는 내 병력 때문이다.
천둥벌거숭이처럼 첫 사회생활 5년을 치열하게 보내고 나니 남은 것은 자궁의 5㎝짜리 혹이었다. 배를 열어 보니 고새 자궁내막증이란 병도 얻었다. 1년 안에 임신과 출산을 권고받고, 의사 선생님을 웨딩플래너 삼아 부랴부랴 결혼도 하고 곧바로 회임 모드에 돌입했건만, 아직도 혼자서 산부인과를 전전하고 있다.
나 혼자 살기 능력은 날이 갈수록 진화했지만 절대 혼자 해낼 수 없는 일이 있다. 그건 바로 아이 갖기다. 매달 착실히 배란유도제를 맞고, 추적 관찰을 하면 뭐하나. 남편과 스케줄이 맞지 않는다면 몸만 축난다. 아이 ‘낳는’ 문제야 차치하고서라도 ‘갖는’ 문제까지는 공동작업 아닌가. 병원은 대기 시간이 긴 게 문제다. 막상 검사니 시술이니는 3분 내지 5분이면 간단하게 끝난다. 기다리는 동안의 마인드 컨트롤이 가장 난코스다. 병원 가는 날이면 운전대를 잡은 순간부터,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혼자 있는 시간이 참 싫다. 대기실 앞에 앉아 있노라면 공부도 아니고 외모도 아니고 연봉도 아닌 생산성의 문제에서 심각한 열등감이 찾아온다.
평일 낮임에도 남편과 함께 온 여자들이 이렇게 많다. 당연한 소리지만 비뇨기과에 따라가는 여자는 없는데 산부인과에 따라오는 남자는 왜 이리 많은가. 혼자 산부인과 대기실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언짢은 기분을 배가시킨다. 산부인과는 혼자 가기에 좋지 않은 장소다. 산부인과를 전문으로 하는 대형 병원일수록 그렇다. 남자 동행 금지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괜히 가자미눈으로 다른 배부른 임산부들을 흘끔흘끔 보다가 결국은 인정하고야 만다. 부러우니 졌다. 물론 아이는 언제고 생길 테다. 그리고 그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또 얼마나 멘탈 붕괴, 자아 파괴의 순간을 맛볼 것인가. 인생은 숙제의 연속이다. 언젠가 육아의 아비규환에 시달리며 죽겠다 싶을 때, 오늘을 기억하겠지.
십 대 땐 대입이, 대학 졸업과 동시엔 취업이 숙제였고, 서른 무렵엔 결혼이 난제였다. 마흔에 빛이 나려면 치열한 삼십 대를 담보해야 한다니 갈수록 태산이다. 게다가 삼십 대 기혼 여성의 과업은 4인 가족의 로망을 이루는 것이라지 않나. 세상의 잣대는 딱히 누가 잡으러 오는 것도 아닌데 참으로 압박스럽다. 그 와중에 다이어트 잊지 말고 성품을 잃지 않고…. 더 황당한 것은 이 모든 과목을 과락 없이 통과해도 남의 눈엔 ‘평범’으로 간주된다는 것. 평범이라는 폭력적인 가치에 대해서, 그 이면의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에 대하여 생각하느라 아랫배가 묵직해질 때쯤 진료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