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안 좋은 탓에 참으로 삐딱해졌다. 이 독기로 어디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나간다면 독설로 안티 100만을 양성할 수 있을 것도 같다. 끙끙 앓느라 주말을 홀딱 보내고 내일 출근이라니. 서프라이즈랍시고 나 몰래 상경한 남편도 하나도 반갑지 않고 걸리적거리기만 했다. 오래간만에 자신이 왔건만 잠만 잔다고 볼멘소리를 하는 것도 미웠다.
지난번에 왔을 때 세탁기에 넣어둔 양말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고 찾는다. 축구 보는데 냉장고에 맥주 있다고 좋단다. 남편, 넌 때맞춰 집에서 세탁기 돌려 빨래 널어주고 제때 장 봐와서 냉장고 채워놓는, 돈도 벌어오고 집안일도 해주는 마누라가 있어서 참 좋겠다. 화장실에 휴지 끊이지 않게 제때 갈아두고 마룻바닥에 머리카락 없애려고 매일 스카치테이프로 바닥을 찍고 다니며 치우는 아내가 있어서 정말 좋겠다.
가장 황당한 것은 이 모든 일들은 표시가 하나도 안 난다는 점이다. 나는 내 남편이 부러울 때가 있다. 나 같은 아내가 있어서.
회사에서 사사건건 비교 대상이 된 남자 동기가 있었다. 결혼도 엇비슷한 시기에 하느라 준비로 한창 분주할 때 결혼 너만 하느냐는 눈총을 받았는데 매우 억울했다. 남자 결혼 준비와 여자 결혼 준비가 어디 같을 수 있나. 내 남편만 해도 한 일이라고는 결혼식장에 제때 맞춰 입장해준 것밖에 없다. 동기와 나는 시작부터 평등하지 않았다. 애라도 낳고 내가 커진 엉덩이로 복직한다면 그 차이는 더 커질 게 분명하다. 그는 좋겠다. 집에 가면 아내가 있어서. 난 눈 씻고 찾아봐야 (집에 들어오지도 않는) 남편밖에 없다.
내가 혼자 사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남편 없이 혼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나에겐 아내가 없다는 게 포인트다.
더 정확히는 엄마가 없다는 거다. 결혼 직후 사실 나는 급격한 우울증세를 겪은 일이 있다. 그때 수소문 끝에 음악치료 비슷한 최면을 받으러 갔다. 음악은 조금씩 과거로의 여행을 이끌더니 마침내 엄마 자궁으로까지 들어가고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인 엄마의 어린 시절까지 보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티브이에서 이런 부류의 체험을 접할 때는 다 짜고 치는 게 아닌가 했었는데 내가 해보니 눈물까지 펑펑 쏟아내고 있었다. 여하간 분석 결과는 이러했다. 내가 겪고 있는 심리적 불안은 남편의 부재에서 오는 멘붕이 아니라 엄마의 부재와 오히려 더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것이 처음이라는 간단하고도 부끄러운 사실을. 원인을 알고 나니 그 뒤로는 마음이 한결 나아지긴 했다. 그동안 남편에게 겨누었던 비난의 화살도 거둘 수 있었다.
한 집안에 한 주부. 우리 모두는 아내가 필요한가 보다. 세상 모든 여자들에게도 아내가 필요하다. 너는 매일 삼시 세끼 밥 차려내지도 않으면서, 빽빽 울어대는 애도 아직 없으면서 벌써부터 죽는소리를 하느냐 하실 인생의 선배 언니님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혼자 사는 여자들도 가끔 미치도록 천사 같은 아내, 상냥한 아내, 우렁각시가 갖고 싶다. 다음 생엔 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