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이 된 마흔, 나를 사랑하는 방법을 이야기 하다: 부정->감사함
아침부터 부정적인 생각이 몰려올 때, 무조건 감사하는 마음으로 되돌리면 하루가 달라진다는 것을 몸소 체감했습니다.
초여름의 신록이 조금씩 얼굴을 내비치는 4월의 말. 그리고 다가올 가정의 달. 결혼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챙겨야 할 것들이 많아지는 달 5월. ‘5월 너는 너무나 눈부셔, 더는 쳐다볼 수가 없구나’라는 랄라스윗의 <오월>의 노래가사는 ‘5월 너는 너무나 값비싸, 더는 쳐다볼 수가 없구나’라고 바꾸고 싶은 마음마저 듭니다.
첫째 때도 그랬고, 둘째 때도 양가의 육아 도움은 많이 받지를 못했어요. 그런데 이게 약간의 한이 되어 가는 느낌도 드는데요. 왜 그럴까, 오로지 독립적으로 살아온 나인데, 아이를 키우는 일만큼은 누군가의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지지를 간절히도 바라면서 살아가는 날들이 있었습니다.
둘째를 키우면서는 커리어적인 면에서도 고민을 많이 하는 날들이 지속되면서 봄볕이 드는 3월에는 오전에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 이 햇살에 나가서 통역하고 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지요.
차라리 눈이 휘몰아치던 겨울날이 좋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38세 라는 늦깍이로 통번역대학원을 다니고, 커리어를 나름 쌓아갔기 때문이지요. 이젠 시간과 에너지는 모든 것을 하라고 허락해주지 않습니다. 이런 간단한 세상의 진리를 두 아이의 엄마가 되니 절실히 깨닫습니다. 다만 미련이라는 것이 육아 중 ‘화’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그리고 이 ‘화’라는 달궈진 화살은 친정과 시댁 양가를 향하게 되었어요. 헨리 데이비스소로우의 <월든>에서는 사람마다 자신만의 지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그냥 이 울퉁부퉁 큰 자갈 때론 바위가 있는 길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지만, 잘 되지 않았어요. 원망이라는 얼굴로 가슴에 만발하며 억울한 감정까지 들었습니다. 육아가 많이 힘든 탓에 양가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좁디 좁은 내 마음이 싫어지기까지 했어요.
이 난국을 깰 수 있었던 것은 ‘호텔메이드 마인드’처럼 마음가짐의 전환 이었어요. 바로 ‘산후조리사 마인드’입니다. 한여름 7월의 초, 둘째를 낳고 산후조리원에서 집에 돌아왔을 때, 바로 산후조리사와 육아를 함께 했어요.
운이 좋게도 그녀는 친정 엄마와 비슷한 요리솜씨와 센스 있는 살림 방법 그리고 무엇보다도 열심히 부지런하게 사시는 모습이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오전 8시 50분 출근. 원래는 9시인데, 항상 부지런하던 그녀는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치는 7월 장마철에도 어김없이 늦지 않고 똑똑 현관문을 두드렸어요. 그리고 언제나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밝은 얼굴로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덩달아 기분도 좋아졌지요. 약간의 컬이 들어간 어깨 단발에 옷스타일도 긴치마와 자켓으로 젊게 살려고 노력하시는 분이었어요. 맨 처음 그녀가 60을 훌쩍 넘은 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정말 깜짝놀랐어요. 아마도 언제나 활기찬 에너지와 남을 도와주는 마음이 컸기에 동안 외모도 유지 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하자면, 정말 밤을 샐 수 있을지도 몰라요. 갓난쟁이 케어는 말그대로 전문이지요. 둘째지만, 첫째 목욕은 돌 이후부터는 아빠가 전담으로 담당을 했던 탓에 다시 배울 필요가 있었어요. 산후조리원에서 열심히(?) 배우고 나왔지만, 산후조리사가 아기를 깨끗이 정성스레 씻기는 모습을 보며 도제식으로 터특했습니다. 아직까지 아이를 시키는데, 그녀의 흔적은 많이 남았어요. 친정과 시댁의 빈자리를 그녀의 따스한 웃음과 온기가 채워주었어요.
제왕절개 수술 회복이 덜 되어 소파에 누웠다가 뒹굴러야지만 내려올 수 있었던 7월의 더운 날, 난생처음 혈육이 아닌데도 많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김밥 한번 싸야겠어요, 산모님. 원래 한번 씩 다 싸주거든요”
우리 집과의 인연이 이틀 정도 남은 날, 산후조리사는 김밥을 싸주었어요. 당연히 인생최고의 김밥으로 등극했지요. 그 전까지는 소풍 갈 때 친정엄마가 싸 주신 김밥이 언제나 1위였지요. 그만큼 출산이라는 일은 여자의 일생에서 어떤 사건으로도 대체하기 힘든 어마무시한 혁명과 비슷한 일이 아니겠어요?
육아와 요리 뿐만 아니라 정리와 청소도 그녀에게 많이 배웠어요. 뭐랄까. 육아부터 집안일까지 주부로서, 갖춰야 하는 부지런함과 긍정마인드를 그냥 도제식으로 배운 거지요. 오전에는 요리를 하고, 오후에는 육아에 집중하는 식. 때로는 멀티를 해야 하지만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는 것. 실내 좁은 공간의 빨래대에 옷걸이를 활용하여 장마철 옷을 잘 말리는 방법 등 생활의 노하우까지 그녀의 긍정향기는 아직도 코끝을 스칩니다. 산뜻한 초록 민트향이에요.
티셔츠 선택 취향이 비슷해 첫째가 산후조리사 떠난 후에도 빨래건조대에 널어진 연핑크 바탕에 빨간색으로 쓰여진 영어문구가 쓰여진 티셔츠를 보고 ‘어! 할머니 선생님꺼다!라고 합니다. 또 연보라색 티셔츠도 그렇고. 어쩌면 인연이라는 끈이 산후조리사와 산모라는 이름으로 엮어준 게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나약해진 산모를 일으켜 세워주는 산후조리사.
첫째에게는 ‘카워시 할머니’로 추억에 남았어요. 유치원 여름방학을 하면서 카워시를 한창 좋아했던 아이였기 때문에 자동차 장난감을 줄지어 세워놓고 카워시를 시켜주는 역할놀이를 많이 함께 했습니다. 그리고 기저귀 떼기 훈련으로 집안 곳곳 오줌을 분사(?)하는 아이의 성장기에도 함께 해 주셨어요. 정말 감사하고 고귀한 분입니다.
영화 <러브레터>의 한 장면처럼 그녀에게 하고 싶은 질문 한가지가 있어요.
‘오겡끼데스까’
스티븐기즈의 작은습관의 재발견에서는 추상적인 감정 역시 습관화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기목표 예를 들어 살을 빼겠다 까지 가는데 좋은 마음가짐의 습관화는 도움을 준다고 해요, 하루에 감사함과 긍정적인 마음 가지기도 습관화가 가능하다는 거지요.
감사한 마음은 사람 뿐만 아니라 만물에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통번역대학원을 1학년 수학하고 휴학을 했었어요. 그리고 프리랜서 통역사로서 열심히 현장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생활과는 다르게 날마다 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어쩔 땐 주말에도 일을 나가야하는 임의성이 조금은 익숙하지 않았어요.
새로움에 도전한 내 모습이 스스로 자랑스럽기도 했지만 불규칙한 일정은 약간의 우울감을 불러왔지요. 월,화는 현장에서 통역을 하고 수, 목, 금은 일이 비었을 때 찾은 방법은 2시간 무조건 산책하기 였습니다.
아이 등원을 시키고 나서 2시간은 무조건 걸었습니다.
자연이 숨쉬는 동네 하천은 그야말로 최적의 장소였어요. 아침 혼자 집에만 있으면 불현듯 떠오르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걸음과 동시에 사라져만 갑니다.
자연은 계절마다 다른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봄에는 새순으로 얼굴을 내밀어 수줍게 인사했고, 여름에는 신록의 향으로 코에 기분좋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가을에는 수채화 물감으로 그라이데이션을 준양 붉게 물들어가는 나뭇잎 그리고 떨어진 나뭇잎으로 만감이 교차하게 만들었지요. 그리고 겨울에는 뼈만 남은 앙상한 가지로 마흔을 앞둔 사람에게 쉬어가라고 말을 걸었습니다.
새들은 합창을 하며 ‘괜찮아, 다 잘 될꺼야’를 합창하고 있었지요. 이토록 아름다운 합창이라니. 평소에는 알지 못했던 미세한 바람소리며 냇가에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는 비발디 사계의 봄의 소리였어요. 비록 겨울에는 꽁꽁 언 냇가였지만 돌 밑에 숨어 있는 청둥오리들이 때론 반겨주곤 했지요.
‘아! 이게 감사한 마음이구나. 내 마음은 번잡했지만 자연은 언제나 나를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에 따뜻하게 엄마처럼 안아주는구나!’
‘mother of nature’(대자연)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구나 싶었습니다. 정말 자연은 말그대로 엄마의 품 이였습니다. 부정적인 생각, 불안과 우울감을 생각나지 않도록 하는 마력이 있었어요.
불규칙한 스케쥴로 자신도 모르게 우울감이 생긴다면, 자연이 있는- 나무, 꽃, 새, 파란 하늘 등- 그 어느 곳에서든지 한번 집중해서 걸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나를 사랑하는 방법은 내 주위의 것에 감사하는 방법이라는 것도 깨닫게 될 꺼에요.
사진(표지): 사진: Unsplash의 Nick Fe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