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in] 나의 밤

평범한 엄마사람의 일과 가족이야기: 신춘문예 원고 부치기 이브

by 비비들리 vividly

내일 아침 금년도 두번째 신춘문예를 부쳐야 한다.

이윽고 눈은 주말 대설을 앞두고 대설로 내렸고, 범상치 않게 천둥번개까지 쳤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7시 반 전 후로 해서 잠이 들었다. 아마 신랑이 먼저 피곤해서 곯아떨어지니 따라 자는 것 같다. 마치 코고는 소리가 자장가 인 것 마냥 신기하게도 잠이 들었다. 워낙 한파여서 피곤한 것도 있을 것이고 눈이 내려 놀러 나가자고 노래를 부르더니, 금새 잠이 들어버렸다.


아무래도 금일 만보를 걷는 일을 하고 왔기 때문에 내 몸도 말이 아니었나 보다. 아이패드, 휴대용키보드, 연습장, 펜, 텀블러, 파우치 그리고 약간의 초코간식들. 가방이 가볍지는 않았기 때문인지 발목이 요새는 저녁만 되면 삐걱한다. 왠만하면 강아지처럼 눈이 오면 나가서 노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이제 나이는 정말로 못 속이나보다. 장단지부터 무거워지는 저녁이었다. 눈은 이내 그쳐보인다. 쌓여 있는 모습은 참 예쁘지만 햇빛이 비치면 또 녹아버릴 것을, 괜히 내일 일찍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을 걱정해본다.


사람은 이럴 때 정말 간사하다. 날이 좋은- 꽃피는 봄 이라든지 초가을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청명한 가을 하늘이 있는- 날에는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추워지고 굴을 파야 할 때는 괜히 내가 타인을 걱정 하는 것이다. 이번주 금요일도 일찍 오전에 일을 나가야 했을 수도 있었으므로 괜히 안도의 한숨을 쉬어 본다. 역시 간사해.


이제 거의 퇴고만 남았다. 마지막 장면을 간단히 메모한 분을 적을 것이고, 퇴고를 해야 한다. 프린트를 하고 빨간펜을 들고, 나만의 방식으로 가감을 할 것이다. 프린트를 하면 이상하게도 안보였던 부분이 잘 보인다. 모니터로 스크롤을 내리며 볼 때와는 다른 직설적인(?) 느낌이 발생하는 것 같다. 그리고 문법 오류를 다시 수정하고 그렇게 최종본을 뽑고, 부칠 것이다. 작년에는 이 과정을 세 번정도 반복할 심적인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여유까지는 없어 보여 일단 도전하는 것에 의의를 두기로 해본다. 어떻게 보면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다.


결국 이 야밤에 디카페인 커피를 타버렸고- 일부 카페인이 있지만, 다시 자판을 두드리기 위해서는 카페인 맛이 아니면 힘들었기에- 설거지는 뒷전이 되어버렸다.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말한다. 설거지가 우선순위가 되어버리면 글쓰기는 당연히 뒷전이 되어버린다고. 하나의 성취감은 또 다른 하나를 향한 의욕을 앗아가는 것 같기는 하다. 체력이 있는 경우는 분명히 말끔하게 뽀드득 설거지를 하고 이렇게 모니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어도 괜찮을 수는 있지만. 오늘은 아니라고.


다행히도 새로 구입한 조약돌 키보드도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너무나 조용한 새벽에 몽글몽글 소리가 조금 거슬리기도 했다. 초민감자가 되어 가는 것 같아 스스로가 안쓰러웠다. 하지만 적응이 안됐던 것이었나보다. 3일 정도 두드려보니 타건감도 마음에 들고 타자에 리듬이 붙어서 재미있기도 하다. 약간 중독을 유발하는 느낌이랄까. 다른 장소로 가도 키보드가 생각나버리는. 하지만 그렇다고 들고 다니기에는 꽤나 무겁다.


가족 모두가 잠이 들고 혼자 덩그러니 부엌 탁자에 남겨져 있는 건 3개월도 훨씬 더 된 것 같다.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 첫 눈이 온 날밤을 즐겨 보려 한다. 널부러져서 결국 자게 되겠지만 굴을 단단히 파고 싶다.


계획된 일정이 모두 취소된 날에는 덤덤한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덕분에 별마당 도서관에서 트리시 홀의 <뉴욕타임즈 편집장의 글을 잘 쓰는 법>이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어서 열심히 읽었다. 거의 절반 가량 탐독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반짝반짝 별 모양 조명, 트리장식 그리고 곤돌라가 돌아가고 있지만 온전하게 활자에 집중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음처럼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낙심하거나 실망하면 그 대가는 매우 크므로 하루하루 평이하게 덤덤하게 살려고 노력 중이다. 마음 속에서는 부글부글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더라도 큰 숨을 한 번 들이쉬고 주어진 시간에 할 수 있는 것을 하려고 노력해본다. 마음이 다치는 일은 돌이켜보면 내 마음이 다 자초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년에도 눈이 펑펑 온 날 신춘문예를 부쳤는데, 이번에도 그럴 것 같다. 지난 주는 비가 주룩주룩 오더니, 날씨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완결을 하고 퇴고를 하고 어찌어찌 만들어 나간 시간 속에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굴을 한번 파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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