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엄마사람의 일과 가족이야기: 정강이는 다쳤지만 서글프지 않아
한해의 마지막 12월이 왔지만 12월이 왔다는 것을 체감하는 일은 언제나 달력을 보는 순간이다. 계절의 변화를 느낄 새도 없이 하루하루는 빠르게만 흘러가기 때문이다.
몇일 전, 창문 밖으로 비치는 앙상한 나뭇가지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분명히 푸른 나무 잎사귀가 있었고 나름의 열매도 있었을 것이었다. 울긋불긋 단풍을 본지가 그리 오래 지나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앙상한 가지만이 남아있었다. 나뭇잎이 다 떨어지고 남은 꽤나 많은 나무 그루들 사이로 땅 위에는 수북하게 나뭇잎이 쌓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제는 오랜만에 아이 둘을 데리고 동네 산책을 했다. 새벽같이 출근해야 하는 시기가 있었지만 한철이라 조금은 느긋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막상 느긋한 마음은 때로는 불안감도 주고, 그냥 원래대로 사는 것이 마음 편한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도 드는 나날들이다.
2시간 정도 까페에서 준비하고 있는 일의 기획서를 어느 정도 완성했으므로 성취감이 나름 있었던 것일까? 오랜만에 아이 둘을 데리고 동네마실 가는 길이 꽤나 좋았다. 한창 혼자만 육아를 해야할 때는 주5일 내내 오로지 온 몸으로 감수해야만 했던 일이므로 토요일 아침만 되면-신랑이 출근을 할 때도 있었으므로- 우울감이 몰려왔다. 도랑에 누군가 나를 가두어놓고 문을 잠근 느낌이 있었다. 분명히.
그렇게 힘들었던 시간은 에어컨을 끄면 금새 녹아버리고 마는 여름날의 팥빙수가 되었고, 지금은 어쩌다 한번 둘을 데리고 마실을 간다. 나름 여기에는 중대한 이유가 있다.
첫째가 한 달전부터는 혼자만 엄마나 아빠랑 나가고 싶어하는 경향이 생겼다. 다행히도 주 1회는 모두 함께 움직이길 원한다. 그 외 시간은 엄마나 아빠와 단둘이 나가는 것을 선호한다. 데이트는 한 사람과 해야한다는 어떤 철칙같다고나 할까.
"재롱이랑 같이 나갈까?"
"아니오, 동생은 집에 있을 거에요."
라고 이야기하고 나서는
"잘 다녀올게. 말 잘듣고 있어."
라로 손까지 흔들면서 나간다.
여섯 살 밖에 되지 않은 아이도 새로운 가족 다이나믹스에 스트레스가 있었나보다. 본인에게 집중되던 사랑이 아무래도 분산 될 수 밖에 없으니까. 하물며 다 큰 어른도 언제나 사랑에 목마르니까.
약간 도파민이 폭파를 한 건지 아이의 킥보드를 따라가면서 유모차를 힘껏 밀었다. 9월에 5K 유모차런을 한 이유로 자신감이 붙은 건지 연습 한번 안하고 나간 10K를 완주해서 그런건지 알 수 없는 흥분감이 내 몸을 휘감았다. 기온은 떨어졌지만 가슴 속에서 활활 타오르는 근자감 같은 것이 정말로 있었다. 그렇게 열심히 첫째를 잡으려고 뛰었는데 갑자기 낮은 턱에 유모차가 걸려서 직각으로 거의 솟아버렸다.
"어이쿠."
지나가시던 할머니는 괜찮은지 보셨다.
다행히도 그 이상으로 유모차는 튕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정말 턱이 좀 만 더 높았다면 그리고 가속도가 더 붙었었더라면 위험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직각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나의 정강이가 강타당했다. 우씨. 하지만 분명히 몇 달전이였다면 서러웠을 나의 감정은 사라졌다. 다행히도. 정강이가 아프기가 무섭게 아이를 따라가야 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기까지 아픔은 없었다.
4시간 이상 잠을 연속으로 이룬 날은 2년 동안 손을 꼽는다. 오늘도 새벽 1시 반정도에 눈이 떠졌고 추운 날씨 덕에 침상에서 혼자 뒹굴다가 아이의 얼굴을 보다가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샤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야 겠다는 의욕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강이가 아프다. 잊고 있었던 정강이 부상이 수면 위로 조금이나마 올라 올 수 있는 시간은 새벽인가 보다. 멍이 들고 부어올랐다. 다행히 피멍까지는 아니지만 꽤나 부어서 아프다. 이만하기 다행히다 싶다.
카프카는 앙상한 나무 사이에 없었다. 초록잎에 가리어진 어딘가에 카프가가 있을 거라고 믿었나보다. 베낭을 메고 홀연히 혼자 숲 속으로 떠난 15살의 소년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카프카는 언제부터인가 내가 찾아 헤매는 어떤 자아 같았다. 스물이든 마흔이든 예순이든 누구나 마음속에는 카프카를 찾으려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비록 사연은 다를 지언정 깊은 산 속에서 의연히 있을 줄 알았던 카프카가 없음을 알고 하염없이 마음이 저몄다.
그런데 정강이를 다친 어제는 내가 누구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하지만 그대로 남을 수밖에 없는 필연의 일이 있다. 한 해를 보내는 12월의 산중턱. 카프카를 찾아가는 삶의 여정 속에서 조금이나마 카프카를 만나고 왔다면 더없이 기쁜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바로 모래 폭풍의 의미인거야."
-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