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엄마사람의 일과 가족이야기: 0의 의미
12월의 중순 건강검진을 하는 날이었다.
마치 서랍속에 오래 묻어왔던 유통기한이 지난 것 같은 카라멜이 이미 녹았는데
깨끗하게 닦아야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
"0하나가 바뀐 다는 것은 생애주기가 크게 변화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상담에서 먹는 음식과 하고 있는 운동을 질문하고 이렇게 말을 이어나갔다.
마흔이 되고 건강검진을 하면 하나씩 무언가 불쑥 나온다는 말을 주변에서 여러번 들어서 그런지 괜한 걱정부터 앞섰다. 전날 금식 부터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들었다. 아무래도 부고의 소식이 들려오기도 하고 그게 나와 정말로 가까웠던 사람인 경우가 생기면서 그런 것 같다.
전날 티맵으로 셋팅해놓은 주소를 보고 운전대를 잡는다. 오전 6시 50분경의 공기는 꽤나 차가웠지만 건강검진을 핑계로 일찍 집을 나서는 것이 썪 피곤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왜 이렇게 이불안에서 나오기가 힘든건지. 버퍼링 시간만 10분 이상 요새는 걸린다.
차에 시동을 켜고 운전대를 잡는다. 그리고 운전 할 때 동반하는 NPR 듣기. 습관이 되어 9년 동안 운전을 할 때, 언제나 틀어놓는 죽마고우 같은 존재다. 활기도 차오르고. 차 안에서만큼은 평소와는 다른 곳에 있는 것 같다라는 생각으로 환기도 시켜주고.
그렇게 30분 즘 운전을 했을까? 도착한 곳은 KMI였다. 그런데, 문득 건강관리협회에 예약을 한 것 같다. 둘은 다른가? 얼른 검색을 해보았다. 다르다. 그러면 예약한 쪽으로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이미 예약한 시간은 오분정도 지나버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화를 AI상담사가 받는다. 에잇. 상담원이 바로 받으면 좋을 것 같은데. 급할 때는 역시나 모든지 뜻대로 안돌아간다. 다행히도 차분히 마음이 먹어졌다. 건강검진이기 때문이었을까? 다시 한번 카톡으로 예약 문자를 보니 건강관리협회였다. 어제 저녁 주소를 검색했을 때, 한달 전에 예약하고 확인한 장소와 다른 것 같았지만 확인을 다시 해보지는 않은 불찰이었다. 일단 머릿속에는 7시까지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실은 간단하지도 않았다. 두부청국장에 못 먹은 낮밥을 위로 채워줬으니까- 9시까지만 물은 마실 수 있고 그 이후로는 금식해야만 한다는 일종의 압박감이 나를 융단으로 둘러버렸다.
"한 번 더 확인해볼껄."
다시 이동할 검진센터를 검색하니 다행히도 1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한숨을 푹 내시고 다시 한번 차가운 운전대를 잡았다. 어느새 날은 밝아있었다. 무사히 검진센터의 주차장에 도착할 수 있었고, 30분 정도 늦었지만 검진대기를 할 수 있었다.
상복부와 갑상선 초음파를 찍었다. 시력과 청력 검사도 하고 혈압도 쟀다. 혈압이 보통보다 조금 높은 수치인것 같다고 재측정도 했다. 다행히도 정상범위로 나왔다. 지금까지 혈압을 재면서 정상범위가 아닌 적은 없었는데 역시 0이라는 변화는 그냥 있는게 아니었나보다. 그리고 위내시경 촬영. 그런데 목에 국소마취를 한단다. 갑작스러웠지만 매콤한 마취제는 내 목 속으로 스프링쿨러처럼 분사되었다.
"좀 머금고 계셔야해요."
말을 잘듣는 강아지가 된다.
"이제 삼키셔도 좋습니다."
꿀꺽. 삼켰다. 목이 마취되는 느낌이 차오른다. 썪 기분이 좋지는 않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싶었다.
"아, 잘 하시고 계세요."
내시경이 목 속으로 들어가고 장기를 후벼파는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까지 이런 장기소리는 나지 않았는데 정말 바뀐 0이 중요한건지. 난생 처음듣는 장기들의 소리. 눈에서는 눈물이 입에서는 침이 줄줄 나오는 것이 느껴진다.
"검사 끝났습니다. 휴지로 닦으시면 되세요."
침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옆 머리카락에 흥건히 다 젖어버렸다. 이렇게 많이 나온건 또 처음이다. 내 침이지만 참 더럽다. 눈물도 닦아본다. 슬프지도 않고 담담하게 받은 검사지만 눈에서는 눈물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하다.
"괜찮습니다."
위를 보니 다행히도 깨끗하다.
오늘의 하이라이트 위내시경이 끝났으니 조금은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인터넷으로 아이가 엄마의 털슬리퍼를 보더니 신고 싶어해서 주문을 할까 하고 내다볼 여유도 생겼다. 잡지의 기사를 읽으면서 마침 K소설 할리우드 진출 등을 읽어본다.
다양한 초음파 그리고 내시경이 끝이 났다. 인바디로 체지방과 글곤격의 비율을 확인하고 탈의실로 옷을 갈아입으러 간다. 그리고 수납을 하고 마지막 상담을 듣는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간단히 건강을 체크해보자라는 마음가짐. 그리고 건강검진 하는 날은 일에서 벗어나서 쉬는 날이라고 여겼는데 이제는 큰 일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앤트맨이 갑자기 배트맨이 된 것 처럼.
0이라는 변화는 마음가짐부터 다르게 한다.
0은 비움일까 아니면 채움일까.
0이 또 다시 나이에 생기는 날까지 하루 24시간을 의미로 충만하게 살아내보자.
Life should not be a journey to the grave with the intention of arriving safely in a pretty and well preserved body, but rather to skid in broadside in a cloud of smoke, thoroughly used up, totally worn out, and loudly proclaiming "Wow! What a Ride!"
인생은 예쁘고 깔끔한 몸으로 안전하게 묘지로 도착하려는 여정이 아니다. 반대로 완전히 닳아빠지고 지친 몸으로 연기 구름을 슬라이딩 해서 '인생 죽여줬어' 라고 크게 외치는 것이다.
- 헌터 S 톰슨 Hunter S. Thompso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