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in] 소주와 별사탕

평범한 엄마사람의 일과 가족이야기: 크리스마스 야식타임

by 비비들리 vividly

몇일 전, 지하철에서 내려 다시 버스로 환승 했다. 버스에서는 짧은 인문교양 버라이어티쇼가 나왔고 우리의 뇌는 언제나 균형을 추구 한다는 내용이었다. 학창시절, 축구공에 세게 맞았는데 갑자기 실소가 나왔던 일을 수십년이 지나고 나서야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너무 힘들거나 슬퍼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는 점. 기쁘면 반대로 눈물이 나오는 점도 우리 뇌는 균형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올해 크리스마스 트리는 어제 비로소 불이 들어왔다.

창고에 넣어놨을 적에는 오히려 한달이나 앞서 빼고 열심히 정성들여 꾸몄던 것 같은데,

여름이 다되어서야 앞방으로 들어갔고 먼지 예방차원차 대형 비닐을 씌워주던 것이 전부였다.


그러다보니, 크리스마스 트리의 소중함(?)을 못느껴서 였을까. 아니면 어떠한 마음으로 조용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싶어서였을까는 확실하지는 않지만 크리스마스 이브 때, 트리를 거실로 데려오고 말았다. 그것도 어제 저녁을 먹고.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매번 설레였지만, 이번 년도는 설렌다는 감정보다는 덤덤하게 보내자라는 생각이 컸다. 크리스마스 날에는 항상 스테이크와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서 한상 차렸지만 올해는 외식을 선택했다. 키즈카페에서 놀다가 뷔페 가면 좋겠다 라는 공산이었지만, 역시 계획이 너무 없으면 안되었다. 뷔페 대기팀은 100팀이 넘어갔고 그냥 푸드코트로 우리는 발길을 향했다. 예전 같으면 특별해야할 크리스마스 인데 이제는 계획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철이 든것인지 오히려 푸드코트가 더 편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냉장고에 꽉 차 있는 야채들이 나 좀 얼른 꺼내달라고 아우성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이 최근에 물욕이 먹는 거에 몰리는 바람에 커피며 과자며 크리스마스 케이크 이며 먹을 것이 집에 많이 있는데 뷔페에서 많은 음식을 보는 일과 먹는 일이 탐탁치 않은 마음이 컸다. 또한 반짝반짝 빛나는 크리스마스 트리가 예쁘고 아름답지만 분명히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누군가도 있다는 것을 아니까 그냥 더 크리스마스를 덤덤하게 보내고 싶었나보다. 아이들을 먹이고 나 역시 허기짐을 달래고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새 바깥은 연말을 알리는 그믐달이 떠올랐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상하게도 배가 고팠다. 다섯 시 좀 지나서 먹은 이른 저녁 탓인듯 했다.

아이도 배고프다고 밥부터 차려달란다.

역시 점심과 저녁을 동시에 해결하기에 성장기의 아이에겐 아주 부족한 일이 되어버렸다.


하물며 나는 어떠한가?


어제는 건강식으로 먹고 싶다고 적채, 양배추 그리고 당근을 호기롭게 잘라서 메밀면과 먹었는데 결국 너구리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말았다. 아이는 계란후라이. 계란후라이 킬러여서 고맙다.

다양한 색깔의 채소가 몸에 좋다고 하여 드디어 실천합니다! 매콤소스가 함정~
너구리 컵라면 그리고 죄책감 퇴치용 토마토/ 초간편 아이 야식은 밥과 계란 후라이

"엄마, 별사탕 먹어봐요."

교보문고에서 덥썩 잡은 별사탕을 다 작은 쟁반에 풀어헤치더니,

맛을 보란다.


"별사탕 젤리 맛 같아요."

둘은 잠에 들고 둘만 남은 거실에서 오랜만에 소주 한잔이 떠올랐다.

아마 안마신지 8년째다. 결혼하고 나서 소주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가끔 맥주 한캔 정도.

그리고 와인 한두잔 정도였다. 그리고 최근 2년간은 아예 입을 대지 않았다.

그런데 쇠~~~주 라니!!!

"캬~"

생각만해도 이 순간에는 정말로 쉬원할 것 같단 말이지.


시간은 밤 열시를 조금 넘어간다.


"있잖아, 이 시간에는 일단 1차를 마치고 나서 한번 해장을 해주고 2차로 넘어가는 거야. 그리고 3차. 소주 더 마시면 토하는 거지.^^"

갑자기 이상한 술기운이 돌면서 아이에게 옛날꼰날 이야기를 해버리고 있었다.

아이의 별사탕 말에 감흥을 받은 건지 마약에 취한 것처럼 말이다.


"우리 매력이는 나중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아이는 조금 뜸을 들이더니, 말한다.

오 어떤 거지. 엄마 마음은 설렌다.


"엄마, 그런데 거북이는 어디에 살아요?"


요새 매일 묻는 질문. 그러면 물 속과 땅 위에 산다고 한다.

스스로 답을 이야기하는 때도 있지만, 정말로 모르는 아이처럼 다시 묻는다.

나는 다시 답하는 수밖에. 아까 했던 질문은 이미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물 속이랑 땅 위에서 살지요."


아이가 쓸 데 없는 소주 소리에 엄마 한방 먹인건가.

아직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하는 '소주'라는 단어가 생소해서 그랬을까.

아이의 아리송해하는 눈빛이 선명하다.


모두가 잠이 들고 나서 힘겹게 유자차를 탔다.

- 새 유자차 뚜껑 압력 참 셉니다. 가위로 톡톡 몇번 쳐줘야 해요~!!


덤덤하게 보낸 크리스마스의 밤에 아이와 간단한 야식 파티를 마친다. 아이는 잠을 자러 들어가고 혼자 탁자에 남았다.


이상하게도 행복한 기분은 오래 남지 않는다.

아마도 뇌가 균형을 맞추려고 허함을 남기는가 보다.


이봐 균형. 굳이 이럴 땐 안나타나도 되는데...


소주와 별사탕의 주인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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