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행

엄마와의 여행, 절망 편

by 시원







방콕은 내가 오래 사랑한 도시다. 차들이 엉켜 있는 도로, 좁은 골목마다 튀어나오는 국수 냄새, 번쩍이는 쇼핑몰 옆에서 버티는 노점, 나무 그늘 밑에 숨은 듯한 카페, 해 질 무렵 연분홍빛으로 뒤덮이는 하늘. 내가 사랑하는 풍경을 언젠가 엄마에게도 보여주고 싶었다. 공항에 들어서자, 커피 향과 향수 냄새가 섞여 흘러왔다. 카트 바퀴가 덜컥거리고, 안내 방송은 쉴 새 없이 이어졌다. 길게 줄 선 사람들, 뛰어가는 사람들,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까지. 그 소란스러움이 이상하게 설레었다. 나는 엄마 손을 잡고 비행기에 올랐다.

“어머, 이런 노을은 흔치 않네. 곱다, 고와. 내가 딸 덕에 호강한다.”
“엄마, 딸이라고 다 같은 딸이 아니야. 나 같은 딸은 또 없어.”
엄마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 딸을 누가 키웠나 몰라.”


6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착륙했다. 공항을 빠져나와 택시 승강장으로 향했다. 문이 열리자마자 꾹꾹 눌린 듯한 공기가 확 밀려왔다. 7월의 방콕, 비는 오지 않아도 우기 특유의 습도가 몸에 달라붙었다. 묵직한 열기와 함께, 어딘가 이국적인 냄새가 스며들었다. 나는 그 공기를 들이마시며 ‘아, 드디어 방콕이구나’ 싶었다.


호텔 로비는 엄마의 기분을 좌우하는 첫 관문이다. 층고가 높고 바닥이 반질반질 윤이 나야 엄마는 고개를 끄덕인다. 몇 번의 가족 여행으로 그 공식을 익혔다. 호텔에 들어선 엄마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게 보였다.


이튿날 아침, 조식으로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됐다. 방콕의 아침 기온은 이미 33도였지만 엄마는 뜨거운 커피를 주문했다. 이 더위에 뜨거운 커피냐고 핀잔을 주는 내게 더우니까 뜨거운 걸 마셔야 한다고 화답했다. 이열치열의 민족답게, 엄마는 뜨거움엔 뜨거움으로 맞서려나 보다. 크루아상을 한 입 베더니, 곧장 고기국수를 들이켰다. 엄마의 방식은 늘 예상을 비켜 갔다.

“이렇게 먹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을걸?” 하고 혀를 차도, 엄마는 대꾸도 없이 한 입 더 먹고는 태연했다. 그리고 한번 먹어보라며, 은근슬쩍 권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못 이기는 척 젓가락을 들었다. 어라, 신기하네. 크루아상의 느끼함이, 국물 한입에 말끔히 정리됐다. 이게 어째서 맛있는 걸까. 엄마의 창의력에 작은 환호를 보냈다.


이틀째 밤, 맥주를 마시고 잘 준비를 마친 우리는 침대에 나란히 누웠다. 집에선 꺼내지 못했던 말들이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어릴 적, 제주 시골에서 자란 엄마는 건넌 마을 큰댁 제사에 다녀오던 길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매끈한 도로나 인도가 없어서 큰 나무들이 빼곡한 숲길을 걸어야 했단다. 늦은 밤 제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새까만 숲이 무서워 달리곤 했는데, 둥근 달이 따라오는 듯해 더 세차게 달렸다고 했다. 숲길 위 달이 무서워 달리던 엄마의 이야기는 어쩐지 귀여운 동화 속 주인공 같았다. 말들이 찰랑찰랑 넘칠 때, 마치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근 기분이었다. 그 밤만큼은, 여행이란 ‘떠남’이 아니라, 미뤄뒀던 말들을 채워 넣는 일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시간은 늘 같은 얼굴로 흐르지 않았다.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예상치 못한 틈이 불쑥불쑥 드러났다. 신발을 벗는 방식, 가방을 놓는 위치, 물건을 정리하는 습관 같은 사소한 것들이 눈에 밟혔다. 생활 리듬도 정반대였다. 나는 밤을 길게 쓰고 싶었고, 엄마는 새벽을 먼저 열고 싶어 했다. 게다가 엄마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같은 질문을 반복했다. 어디로 가는지, 몇 시인지, 얼마나 걸리는지.

사흘째 아침, 엄마가 부지런히 침구를 털고 화장실을 오가는 소리에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올렸다. 아침 5시, 해보다 부지런한 엄마와, 해보다 게으른 나였다. 그날은 기대가 컸다. 방콕의 소문난 로컬 국숫집, TV에도 나왔던 그 집으로 향했다.


“사람 진짜 많지? 한 그릇에 이천 원 정도야. 완전 현지 느낌이지?”

괜히 들뜬 마음에 말을 쏟아냈다. 잠시 후, 바삭하게 튀긴 고기와 국수가 담긴 커다란 그릇이 테이블에 올라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향신료 냄새가 코끝에 맴돌았다. 나는 젓가락을 들고 엄마를 바라봤다. 엄마는 조심스레 한 입을 먹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좀 이상한데? 냄새나는 것 같기도 하고 짜고….”

뭐, 맛이란 게 그런 거지. 아무리 소문난 집이라도 내 입맛에 안 맞으면 그만이다. 그렇게 나를 다독였지만 내 젓가락은 끝내 허공에서 길을 잃었다.

오후에는 짜뚜짝 주말 시장으로 향했다. 비좁은 골목 사이로 셔츠, 가방, 원피스, 기념품들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고 한 걸음마다 누군가의 어깨와 부딪혔다. 시끌벅적한 소리와 향신료 냄새, 후끈한 공기가 밀려왔지만,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가게에서 엄마는 원피스를 들며 내 눈치를 살폈는데, 그걸 본 나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다른 가게에서 내가 가방을 들어 보이자, 이번엔 엄마가 얼굴을 찌푸렸다. 엄마가 고른 건 내 눈에 차지 않았고, 내가 집어 든 건 엄마 눈에 못마땅했다. 서로의 선택마다 말 대신 표정이 오가는 사이, 내 의욕도 자신감도 서서히 빠져나갔다. 태양 아래 얼음이 녹듯 기대도 인내심도 흘러내렸다. 내가 그리던 우리의 여행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우기의 방콕은 서울보다 더 뜨겁고, 더 끈적였다. 묵직한 습도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마음 탓이었을까. 공기만이 아니라 기분까지 눅눅해졌다. 여행의 마지막 밤, 우리는 방콕을 떠났다. 새벽 비행기의 고요함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차마 꺼내지 못한 감정이 우리 사이에 조용히 끼어 있었던 걸까. 고요해진 각자의 창밖만 바라봤다. 아침 5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그날 엄마의 제주행 비행기표를 당일로 끊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필 다음 날이 내 생일이라, 엄마는 하루 더 우리 집에 머물렀다.


집에 도착한 뒤, 옷을 갈아입은 엄마는 소파에 앉았고 나는 부엌 어딘가에 서 있었다. 무슨 말이 먼저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 사소한 이야기였는데, 기어이 방아쇠가 당겨졌다. 엄마는 그저 딸만 믿고 따라온 여행인데, 내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게 섭섭했다고 했다. 음식이 맛없으면 맛없다고 말하거나 인상을 쓰는 건 자연스러운 거라고. 엄마의 입맛과 취향을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가만히 듣다 보니,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솔직하게 말하라던 나의 주문이 부메랑처럼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내가 판 무덤에 들어가고 있었다.


어쩐지 마음이 뻐근했다. 엄마에게도 이번 여행은 큰 기대였을 것이다. 그래서 딸이 뭐든 척척 해주길 바랐겠지. 나는 그런 기대 속에서,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알아봐 주기만을 바랐고 정작 엄마를 배려하진 못했다.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엇갈린 채 여행은 끝났다.


다음 날 아침 5시, 캐리어 여닫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이어서 캐리어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 알면서도 혹시나 싶어 방문을 열자, 엄마가 캐리어를 끌며 집을 나서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이불 속에 몸을 파묻었다. 이윽고 ‘띠리릭’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떠난 걸까.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짧았다.


“택시 탔어. 그냥 집에 갈래.”

이미 떠난 택시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소파에 앉아 현관문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 갇혀 마음을 내밀기보다 방패부터 들었다. 가까이 있음에도 손끝은 자꾸 허공만 더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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