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기가 바쁘게 움직였다. 달걀흰자는 철망 사이를 들락거리고, ‘착착, 착착’ 소리가 부엌에 퍼지면 일요일 아침이 시작됐다. 핸드블렌더가 없던 시절, 엄마는 흰자가 뿔처럼 솟을 때까지 팔을 쉼 없이 저었다. 투명했던 흰자는 금세 눈송이처럼 부풀어 그릇을 가득 채웠다. 엄마는 그릇을 살짝 기울여 보더니, 거품이 흘러내리지 않는 걸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궈진 팬 위에 기름이 돌고, 반죽을 부었다. '치익’ 소리와 함께 반죽은 천천히 부풀어 올랐다. 동글동글 기포가 톡톡 터지다 이내 노릇노릇한 옷을 입었다. 엄마는 입술을 앙다문 채 뒤집개를 들고 숨을 고르며 조심스레 빵을 뒤집었다. 다섯 식구의 아침이 팬 위에서 차근차근 익어가고 있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계란빵은 도마 위에서 여덟 조각으로 나뉘었다.
“가족은 다섯인데 왜 여덟 조각이야?”
순식간에 세 남매의 눈치 싸움이 시작되었다.
“두 조각씩 먹자!”
“너 벌써 두 개째잖아!”
손이 빠른 오빠가 승자가 됐고, 엄마는 마지막 한 조각을 반으로 잘라 내밀었다.
“그만 싸우고 먹기나 해.”
계란빵은 몽글몽글했다. 식감이 혀끝을 간질였다. 은은하게 퍼지는 단맛과 따뜻함에, 조금 전까지의 투정이 머쓱했다. 내 어린 날의 부드러운 한 조각 빵은 가장 든든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일요일 아침의 소란이 끝나면, 엄마는 목욕 바구니를 챙겼다. 목욕탕 유리문을 밀고 들어선 엄마는 아는 분들과 인사를 나눴고, 우리는 뒤따라 고개를 숙였다. 혹시 친구라도 만날까 싶어, 수건으로 몸을 반쯤 가려보기도 했다.
탕 안은 김이 자욱했고, 목소리는 수증기처럼 퍼졌다. 우리는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비누 거품을 내고 물을 끼얹었다. 뜨끈한 온탕에 몸을 담그면 절로 감탄이 나왔다. “아, 좋다.” 어린 몸이라고 피곤이 없을 리 없었다. 턱까지 물에 잠기면, 일주일 내내 분주했던 팔과 다리가 사르르 풀렸다. 몸이 충분히 불으면 엄마 차례였다. 초록 타월을 손에 끼고 우리를 불러 세웠다.
“돌아봐.”
“만세.”
팔을 들고 천장을 올려다보면, 물방울이 천 개쯤 매달려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한 손으로 내 어깨를 단단히 잡고, 다른 손으로는 등을 박박 밀었다. 새 때수건이 등장하는 날이면 긴장이 흘렀다. 사포 같은 면이 등을 훑을 때마다 등 위로 분홍빛 도로가 생겨났다. 다행히 피가 난 적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매번 비상사태였다. 가끔 엄마가 함께 목욕탕에 못 가는 날엔 내 손에 돈을 쥐여주며 말했다.
“이모한테 머리 감겨달라 하고, 다 끝나면 우유 사 먹어.”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을 주머니에 넣고 골목길을 걸었다. 나는 바깥쪽, 동생은 안쪽. 엄마 대신 앞장서는 내가 괜히 어른 같았다. 큰길에 들어서자, 롯데리아 간판이 보였다. 아직 문은 닫혀 있지만 유리창 너머 부엌은 이미 바빴다. 그 시절 햄버거는 아무 날이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시험을 잘 봤거나, 달리기를 1등 했거나, 소풍 같은 날에만 허락됐다. 하지만 오늘은, 내가 이유를 만들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동생에게 속삭이자, 눈이 번쩍였다. 아직 냄새도 안 났는데 입에 침부터 고였다. 목욕탕에 도착해 초록색 때수건을 끼고 엄마 흉내를 냈다.
“움직이지 마. 박박 밀어야 돼.”
말은 엄숙했지만, 손길은 장난스러웠다. 간지럽다며 몸을 비트는 동생을 붙잡고 한참 놀았다. 때를 미는 건지 노는 건지 헷갈릴 즈음, 내가 말했다.
“우리 그냥 갈까?”
"응, 언니"
동생은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듯 씩 웃었다. 서둘러 머리를 말리고 롯데리아로 향했다. 엄마가 준 돈으로 햄버거를 사도 될까, 계산을 마치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찜찜해졌다. 하지만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무는 순간, 그런 생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몰래 먹는다는 사실이 맛을 더했는지, 들킬까 하는 스릴이 입맛을 깨웠는지, 아무튼 그날의 햄버거는 지금껏 먹은 어떤 것보다도 특별했다.
햄버거를 다 먹고도 일요일은 끝나지 않았다. 문구점 앞에서 뽑기 반지를 얻고, 방방 위에서 온몸이 다 젖을 때까지 뛰었다. 동네 친구들을 만나 골목마다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었다. 그제야 밀린 숙제와, 우리를 찾고 있을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는 서로를 슬쩍 밀치며, 골목을 가르며 달렸다.
마흔의 일요일은 조용하다. 목욕탕에 끌려갈 일도 없고, 햄버거가 먹고 싶으면 배달앱을 켜면 된다. 어느 일요일 저녁, 산책을 하다 놀이터 앞을 지나쳤다. 아이들이 소리 높여 웃고 있었다. 발걸음을 멈췄다. 꺄르르 터져 나오는 웃음에 내 어린 날의 일요일이 겹쳤다. 목욕탕 천장에 매달린 물방울, 들키지 않고 먹었던 햄버거의 짜릿함, 엄마 손의 초록색 장갑, 문구점 앞 뽑기 기계, 방방 위에서 뛰던 발. 오래된 필름 속 장면들이 수증기처럼 피어올랐다.
이 아이들도 언젠가 오늘을 기억할까. 햇살 끝에서, 바람 곁에서 불쑥 떠오를까. 돌아갈 수 없기에 기억은 더 빛난다. 발걸음을 떼며 지금의 일요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