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보고 싶다
결혼 15년 차. 지난 추석부터 시가가 아닌 친정으로 명절을 쇠러 가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엄마는 홀로 제사 음식을 준비해 왔다. 해가 갈수록 엄마의 몸집도 키도 말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당뇨약으로 아침을 열고 안약으로 하루를 닫는다. 약 없이는 하루도 버텨내기 힘든 몸이 되어버린 엄마. 그런 엄마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과 달리 현실은 꽉 막혀버린 도로처럼 답답하기만 하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시가에 갈 때는 새벽 4시 알람도 못 들은 척하며 누워있고 싶더니 이번 설에 울리는 새벽 3시 알람에는 눈이 번쩍 뜨이고 마음이 설레었다. 설렘은 잠시뿐 두 번의 코로나와 연이은 감기에 기력이 쇠한 엄마 얼굴을 보니 지난번보다 더 환자에 가까운 모습에 덜컥 겁이 났다. 주위를 지지대 삼지 않으면 홀로 일어서기까지 엄마의 시간은 멈춘 것처럼 보였고, 그 몸으로 삼시세끼 차리며 하루를 버티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일흔을 바라보는 엄마가 그놈의 ‘밥’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알기에 더 가슴이 먹먹하다.
명절만이라도 엄마의 몸을 쉬게 해주고 싶었다. 엄마의 입을 빌려 음식 재료준비를 하고 전을 부쳤다. 손수 만들던 동그랑땡은 냉동제품으로, 깻잎 전은 호박전으로 대체했다. 처음으로 오징어 튀김도 메뉴에서 빠졌다. 줄어든 메뉴 탓에 전 부치기는 금세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나물. 엄마의 입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영역. 결국 엄마의 손을 빌렸다. 시금치, 가지, 도라지, 고사리를 씻고 삶아 엄마의 손맛을 더해 재료에서 음식으로 변모한다. 전 부치기와 나물 준비가 끝났으니 오늘 할 일은 끝.
이른 저녁을 먹고 누운 엄마가 갑자기 외할머니 이야기를 꺼낸다. 한동네에 사는 슈퍼할머니가 외할머니와 동갑인데 아직도 정정하시다며. 올해로 94살이 되셨는데 우리 엄마도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며 눈물을 훔친다. 시어머니 제사상을 준비하니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생각난 모양이다.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고생하는 딸이 안쓰러워 외할머니는 자주 우리 집에 왔다. 외할머니는 올 때마다 엄마 대신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었고 딸이 일터에서 돌아오면 조금이라도 쉴 수 있도록 애썼다. 손녀를 업고서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었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가고 나면 집안은 할머니의 분주함이 곳곳에 남아있었다. 엄마는 할머니가 폭폭 삶아 널어둔 수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았다. 엄마의 향을 찾는 아이처럼 엄마는 한참을 수건을 어루만졌다. 뽀얀 수건을 개키며 엄마는 눈물도 삼켰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알 것 같다. 서로를 향한 미안함이 엄마와 딸 사이에는 존재했을 터. 더 공부시키지 못해 미안하고, 더 잘 살지 못해서 미안하고.
외할머니에 대한 그리움도 잠시 저녁 8시가 넘어가니 엄마는 고단함에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다행이다. 더 깊은 그리움에 빠지기 전에 잠들어서. 꿈에서라도 할머니를 만나 잘살고 있으니 걱정도 하지 말고 미안해하지도 말라고 꼭 전하기를...
엄마 사랑하는 우리 엄마. 아프지 마세요. 나 엄마랑 하고 싶은 일이 아직 너무 많아. 그리워하고 싶지 않아. 엄마를 사랑하고 싶어. 그러니 내 곁에 오래 머물러줘요.
https://brunch.co.kr/magazine/day24365
https://brunch.co.kr/@viviland/95
https://brunch.co.kr/@viviland/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