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독 클린스만 장르 극장골 전문
새벽 4시가 다 되어 잠자리에 들었다. 글쓰기를 하다 늦은 것도 아니고 잠이 안 와 뒤척이다 늦은 것도 아니었다.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한 건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 덕분이었다. 때문이 아니라 덕분인 것은 대한민국이 승리했기에 쓸 수 있는 단어다. 비록 잠을 제대로 못 자 몽롱한 정신으로 간신히 버텨낸 오늘도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며칠 전 아시안컵 16강전이 너무 늦은 시간에 시작해 보지 못했다. 다음날 하이라이트를 보는 데도 어찌나 심장이 쫄깃해지는지 생중계로 못 본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기필코 8강전은 생중계로 보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오늘 새벽 00시 30분 대망의 8강전이 시작되었다. 9년 전 아시안컵 결승 연장전에서 호주에 2-1로 패해서 눈앞에 다가온 승리 컵을 들어 올리지 못했다. 오늘 8강전에 뛰는 대표팀 선수 중 손흥민, 김영권, 김진수 선수는 분명 그날의 울분이 남아있었으리라. 그들의 간절한 소망과 대한민국 국민의 염원을 담아 오늘 반드시 승리하기를 기도하며 TV 화면에 시선을 집중한다. 전반 막판 황인범 선수의 실수로 호주에 실점하고 말았다. 축구 경기에서도 순간의 실수가 승패를 좌우하듯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후회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심판이 휘슬을 불기 전까지 경기는 끝난 게 아니다. 인생도 내가 눈 감는 날까지 끝나지 않는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면 되고 다치면 치료하면 된다.
후반전에도 답답한 양상이 나타났다. 답답한 마음과 불안한 마음으로 집안에 불만이 그득하다. 한숨이 나오고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도 있다. 결국 정규시간이 끝나버렸다. 승리를 향한 간절한 마음은 점점 절망을 향해 가고 있었다. 희망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 역전할 기회는 단 7분. 추가 시간에 기적을 만들어야 한다. 손흥민 선수의 번호도 7번이다. 왠지 느낌이 온다. 그에게 희망을 걸어야 한다. 심판이 휘슬을 불었다.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펼쳐 골대를 향해 찍는다. 페널티킥을 얻었다. 만세 대한민국 만세! 그저 페널티킥을 얻었을 뿐인데 승리의 여신이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콩닥대는 심장 소리가 가슴을 뚫고 바로 귀로 직행한 것처럼 크게 들린다. 가족 모두 손을 부여잡았다. 키커는 우리의 황소 황희찬 선수. 시원하게 왼쪽 골대 상단을 향해 킥을 날렸다. 골인 아니 꼴인!!! 드디어 동점을 만들었다. 남은 시간은 몇십 초.
다시 휘슬이 울린다. 정규 시간 종료를 알리는 동시에 연장전을 알리는 선언이다.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에게 희망이 보인다. 아시안 컵에서 역전이란 이런 거야, 극장골 이란 이런 거라며 대한민국 국민의 심장을 아주 쫄깃하게 만드는 마성이 있는 우리 축구 대표 선수들이다. 시계는 새벽 3시를 넘어가고 있다. 드디어 환호가 터졌다. 이번에는 황희찬 선수가 프리킥 찬스를 얻었다. 이강인 선수와 손흥민 선수가 공 앞에 섰다. 누가 승리의 쐐기 골을 넣을 것인가. 못 넣는다고 단 한 번도 생각지 않은 두 선수. 안 넣으면 안 넣었지. 우리의 쏘니 골문 구석으로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골을 꽂아 버립니다.
대! 한! 민! 국! 짝짝짝 짝짝. 2002년 월드컵 그날의 함성이 그리워지는 새벽. 환호할 수 없어 아쉬운 밤. 층간소음에 자유로울 수 없는 응원. 아쉽다 아쉬워.
마침내 심판이 마지막 휘슬을 불었다. 대한민국이 2-1로 호주에 승리하고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손흥민 선수는 무릎을 꿇고 한참을 엎드려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걸까. 어떤 마음으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건지 그의 속내가 궁금하다. 올바른 인성과 언행으로 모두의 귀감이 되는 선수. 월드클래스의 품격을 보여주는 우리의 쏘니!! 우리는 쏘니 보유국이라 행복합니다.
하물며 축구도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데 우리도 끝까지 한번 살아내 보자. 힘이 들어도 눈물이 흘러도 견뎌내 보자. 견디다 보면, 살다 보면 좋은 날도 오리라. 감정의 너울에 휘청이는 날이 많아도 언젠가 고요한 자신과 마주할 날이 오리라. 수고했어. 오늘도.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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