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다락방 Jan 25. 2024

오늘은 파업이다

다짐을 했는데...

오늘은 파업이다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 그런 날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다. 눈을 뜨면 엄마로서 아내로서 반려인으로서 해야 할 몫이 늘 나에게 주어진다. 

  엄마로서 해야 할 일은 방학한 아이들 삼시 세끼를 챙기고 학원 스케줄에 맞춰 울리는 알람 시계를 계속 체크해가며 아이들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더불어 밥 먹어라, 정리해라, 숙제해라 같은 잔소리는 덤이다. 왜 아이들은 한 번 부르면 못 알아들을까? 아니 두 번, 세 번 아니 백번 한 이야기를 왜 또 하게 만들까? 내 아이들이지만 진심으로 이해가 불가능한 생명체인 것 같다. 가끔은 못 듣는 게 아니라 일부러 안 들으려고 하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가기도 한다. 엄마의 역할에 집중하다 보면 성악설로 나의 무게중심이 점점 이동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도 모르는 자아가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아이들과 나 사이를 갈라놓기 일쑤다. 불같이 화를 내고 괴성을 지르는 모습에 아이들도 나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다. 


  무거운 정적에 휩싸인 집안을 다시 평화로운 분위기로 바꾸는 사람은 남편이다. 그는 부모님보다 나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며 누구보다 내 감정을 존중하는 사람이며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 중 한 명이다. 엄마 역할에 힘겨워할 때마다 그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내 편이 되어주었고 때로는 나에게 휴식을 선물해 주기도 했으며 가끔은 내가 생각지 못한 해결책을 주기도 했다. 물론 티격태격 싸울 때도 있다. 세상에 안 싸우는 부부는 없다고 생각한다. 많이 싸우거나 덜 싸우거나 둘 중 하나이지. 안 싸우는 부부를 만나 본 일도 들어본 일도 없다. 고로 세상 모든 부부는 싸우며 산다고 믿고 싶다. 


  나는 남편에게 어떤 아내일까? 결혼 14년 동안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을 배웅한 적이 있었던가? 문득 아내의 역할이 궁금해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더니 가장 먼저 아래 내용이 나타났다. 

-남편의 마음을 지켜주는 일, 세상의 공격에서 언약의 배우자를 보호하는 역할이 아내의 역할임을 알게 되었다-라는 문장이었다.    나는 제대로 된 아내의 역할을 못 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남편의 마음을 지켜준 일도 세상의 공격으로부터 남편을 보호한 일도 선명하게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필 아무것도 하기 싫은 오늘 같은 날 나는 왜 아내의 역할을 검색한 걸까? 남편한테 미안한 마음만 자꾸 쌓이는 걸 보니 나는 분명 좋은 아내는 아니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채운다. 그저 아내의 역할을 떠올렸을 뿐인데 또 성악설이 슬며시 고개를 내미는 것 같다.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에라 모르겠다, 오늘은 파업이다. 엄마 역할은 배달 음식으로 채우고 학원은 알아서 가라고 하고 아내 역할은 죄책감으로 물들기 전에 생각을 멈추기로 했다. 몸도 생각도 마음도 파업을 선언했다. 오롯이 나만 생각하는 그런 하루를 보내리라 다짐했다. 오늘만큼은 마음껏 책도 읽고 커피도 마시고 창밖 풍경도 바라보며 온전한 나와 마주하리라!! 그런데 강아지가 자꾸 나를 잡아당긴다. 내 발밑에서 나만 쳐다보고 있다. 밥 달라고. 너를 어쩌면 좋니? 너에게만은 파업 선언을 못 하겠구나. 파업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구나.



글다락방의 글 더 둘러보기

https://brunch.co.kr/magazine/zzuny

https://brunch.co.kr/@viviland/86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다시 설렐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