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은 낯선 외로움으로 채워졌다
끼익.
엄마가 울부짖었다. 도로에는 덤프트럭이 멈춰있었고 피가 흥건했다. 그곳을 더는 쳐다볼 수가 없었다. 어디선가 구급차가 나타났고 엄마와 아빠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두고 구급차를 타고 떠났다. 동네 어른들이 “어여 집에 가서 기다려.”라고 했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계절이 여름과 가을 어디쯤이었는지. 아마 가을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논두렁이 노란색으로 일렁였던 기억이 있다. 갈색으로 물든 메뚜기가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사고가 난 도로에서 우리 집까지는 일곱 살 아이 걸음으로 10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그날 나는 집으로 곧장 갈 수가 없었다. 늘 걷던 길이 아니라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둑길을 따라 걸었다. 너무나 익숙한 이 동네가, 이 시간이 낯설었다. 한없이 걷고 또 걸었다. 무심코 걷다가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보이는 우리 집을 이정표 삼아 그 주위를 또 맴돌았다. 집으로 갈 수 있는 수많은 길이 있었지만 불 꺼진 집에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귀에서는 계속 끼익, 끼익 소리가 났다. 어둠이 내리자 끼익 소리 대신 귀뚜라미 울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우리 집에도 불이 켜졌다. 정신없이 뛰어갔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낯선 신발이 가득했다. 엄마 아빠는 보이지 않았고 친척 어른들이 계셨다.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귀를 쫑긋 세웠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끝내 듣지 못한 채 나는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았지만, 여전히 우리 집에는 친척 어른만 계셨다. 아무도 나에게 관심이 없었다. 모두 전화기만 쳐다보고 있었다.
몇 날 며칠 논두렁길을 걸었다. 뛰어갔다가 천천히 걸었다가 힘들면 앉았다가 속도를 조절해 가며 집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걷다가 무심코 사고가 난 도로를 쳐다보았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차들이 쌩쌩 달렸다. 다시 귀에서 끼익 소리가 들렸다. 집으로 도망쳤다. 이번에는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택했다. 다행이었다. 집에 도착하니 끼익 소리가 더는 나지 않았다.
며칠 뒤 핼쑥한 부모님 얼굴을 볼 수 있었지만, 언니는 돌아오지 않았다. 언니는 병원에 오래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매일 하던 일이 없어졌다. 언니가 학교 다녀오는 시간에 맞춰 나는 늘 언니 마중을 나갔다. 언니가 매고 있는 가방이 부러워서 집에 올 때면 꼭 내가 매고 가겠다고 떼를 썼다. 가방을 메고 잡기 놀이도 하고 소꿉놀이도 하다가 늦게 집에 들어가 엄마한테 혼이 나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늘 즐거웠다. 그런데 더는 이 길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즐거움은 낯선 외로움으로 채워졌다. 수십 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던 그 논두렁이 선명히 떠오른다. 끼익 소리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