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할까보다 어떤 사람으로 일할까가 더 중요하다

by vivir

일을 하다 보면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바깥을 보게 된다.


어떤 일을 맡게 될지, 어떤 프로젝트에 들어갈지,

어디에서 더 많이 배울 수 있을지, 어떤 자리가 더 중요한 경험이 될지.

그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처음에는 누구나 역할의 크기와 기회의 방향이 크게 보인다.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얼마나 인정받고 있는지, 얼마나 빨리 성장하고 있는지.

그런 것들이 나를 설명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나도 그랬다.


중요한 일을 맡게 될 때마다, 그것이 곧 성장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이 있었다.

더 큰 프로젝트를 맡고, 더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더 많은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면 내가 더 나아지고 있다고 느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다른 질문이 남기 시작했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보다,

나는 이 일을 하며 어떤 사람으로 변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처음부터 잘 보이지 않는다.

일이 바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책임져야 할 결과가 있고,

맞춰야 할 일정이 있으니 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늘 뒤로 밀린다.


하지만 일을 오래 하다 보면 결국 알게 된다.

프로젝트는 끝나고, 역할은 바뀌고, 조직의 구조도 달라진다.

그런데 그 시간을 지나며 내 안에 남은 태도와 기준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일을 지나며 더 넓어진다.

사람을 보는 눈이 깊어지고,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단단해지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기준이 생긴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일을 지나며 점점 좁아진다.

책임은 커졌는데 마음은 예민해지고, 경험은 쌓였는데 사람을 믿는 힘은 줄어들고,

성과는 냈지만 안쪽에서는 자꾸 마른다.


같은 일을 해도 사람은 다르게 남는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역할보다 사람의 결을 더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을 했는지도 중요하지만, 그 일을 하며 어떤 사람이 되었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역할로 자신을 설명한다.


나는 어떤 일을 맡고 있다.

나는 어느 위치에 있다.

나는 어떤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다.

나는 이런 성과를 냈다.


이런 말들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사람을 다 설명할 수 없다.


역할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인정은 줄어들 수도 있고, 자리는 이동할 수도 있다.

어제까지 중요했던 일이 내일은 다른 사람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때 내가 나를 오직 역할로만 설명해왔다면, 역할이 흔들릴 때 나 자신도 함께 흔들린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힘을 내는 사람인가.

어떤 순간에 쉽게 지치는가.

무엇을 할 때 살아 있는 감각이 생기고, 무엇을 할 때 겉으로는 잘해도 안쪽은 빨리 마르는가.

나는 사람을 먼저 보는 편인가, 구조를 먼저 보는 편인가.

자유가 주어졌을 때 더 단단해지는 사람인가, 아니면 기준 없이 흔들리는 사람인가.


이런 질문들은 거창한 자기분석이 아니다.

오히려 일을 오래 하기 위해 필요한 아주 현실적인 질문이다.


나를 모르면, 남의 속도에 쉽게 흔들린다.

나를 모르면, 남의 자리가 더 커 보인다.

나를 모르면, 내가 살아나는 일과 나를 소모시키는 일을 구분하지 못한다.


나는 이 차이를 자주 보았다.


어떤 사람은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더 불안해졌고,

어떤 사람은 조용한 자리에서도 자기 몫을 분명히 해냈다.

어떤 사람은 더 큰 역할을 맡고도 계속 자신을 증명하려 했고,

어떤 사람은 크지 않아 보이는 역할 안에서도 공동체에 꼭 필요한 기준을 남겼다.


그 차이는 단순히 능력의 차이만은 아니었다.

자신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무엇을 지키며 일하고 싶은가,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때 가장 자기다운가의 차이이기도 했다.


자기 자신을 조금 더 아는 사람은 선택도 다르게 한다.


겉으로 좋아 보이는 역할이 정말 나를 넓게 만드는지,

지금의 인정이 나를 더 단단하게 하는지 아니면 더 불안하게 하는지,

이 일이 나를 성장시키는지 아니면 조용히 마르게 하는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가 더 나아지는지 아니면 점점 나를 잃는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조금 느리게 선택할 수는 있어도 덜 흔들린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만 보지 않고, 그 일이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함께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자기 자신을 조금 아는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의 다름도 덜 위협적으로 느낀다.


내 방식만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빠르게 배우고, 누군가는 천천히 깊어진다.

누군가는 말하면서 정리하고, 누군가는 혼자 생각한 뒤에야 자기 힘을 낸다.

누군가는 앞에서 방향을 잡고, 누군가는 뒤에서 흐름을 안정시킨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알게 되면,

다른 사람도 각자의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쉬워진다.

좋은 공동체는 결국 그런 다름을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자아실현이라는 말도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 말은 꼭 화려한 성공이나 눈에 띄는 성취를 뜻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을 통과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정확히 알게 되는 것.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조금 더 선명해지는 것.

어떤 방식으로 사람과 공동체 안에 기여할 때 가장 나다운지 깨닫게 되는 것.


그럴 때 일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더 분명하게 만드는 시간이 된다.


우리가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더 큰 역할을 빨리 갖는 일이 아니라,

그 역할을 지나며 어떤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지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역할은 바뀔 수 있지만, 그 시간을 통과하며 만들어진 사람의 결은 오래 남는다.


결국 커리어는 역할의 목록이 아니라, 그 시간을 지나며 내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의 기록에 더 가깝다.


무엇을 할까보다 어떤 사람으로 일할까가 더 중요하다.

나는 자신을 모른 채 커지는 사람보다, 자신을 이해하며 자라는 사람이 더 오래, 더 건강하게 간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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