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는 내가 대학생 때부터 정말 좋아하던 작가였다.
1999년 여름부터 나는 하루키의 소설책은 모조리 다 읽겠다는 심정으로 당시 도서관에 파묻혀 살았다.
하루키와 더불어서 여러 일본작가들의 소설, 수필을 참 많이 읽던 때 역시 이 때였다.
처음에는 하루키를, 무라카미류, 히라노게이치로 등 마음이 가는대로 읽었고
이후에는 아쿠다가와 상 수상작들을 찾으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책을 읽어도 리뷰를 잘하지 않는 편인데,
하루키 책이 오랜만에 나와서 리뷰를 한다.
음...
이번에 나온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은
기존의 책들과의 유사성을 가지는 측면이 있다.
의식의 흐름과 에피소드 구성에 있어서도 과거와 현재의 시점
그리고 과거와 어느 판타지의 시점을 오가다가 결국은 한 점에서 만난다.
이 책은 처음 읽었을 때에는 풋풋한 연애소설로 진행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다가
불현듯 가상 속의 공간이 현실이 되어 있질 않나.
나중에는 가상의 공간이 현실인지, 현실 속에 있는 내가 진짜인지
헷갈리는 어느 시점이 온다.
주인공과 그림자라는 존재가
나와 분신으로 이야기되지만, 주객이 전도된 건 아닌가 라는 착각이 드는 시점도 있다.
일본 작가 특유의 아이디어들이 녹아있는 것도 흥미롭다
역시 일본하면 망자, 판타지, 풋풋함이 섞여야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책은 무려 766페이지나 된다.
그러나 책 문장이 간결하고 짧게 구성돼 있어서 생각보다 빨리 읽는다.
나도 추석 때 천천히 보려고 펼쳤다가 순식간에 다 읽었으니 말이다.
가운데 몇몇 괜찮은 문장을 소개한다.
너는 여름풀 위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침묵 속에서 푸른 땅꺼미의 전조가 둘을 감싸기 시작한다.
네 옆에 앉자 왠지 신기한 기분이 든다.
마치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실이
너의 몸과 나의 마음을 촘촘히 엮어가는 것 같다.
네 눈꺼풀이 한번 깜빡일 때도,
입술이 희미하게 떨릴 때도 내 마음은 출렁인다.
소년 소녀였던 주인공과 여자가 나누었던 도시의 벽과 그 공간에 대한 부분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 문장이 그 공간에 갈 수 있다는 일종의 복선이었다.
"어떻게 하면 그곳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냥 원하면 돼.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원한다는 건,
그렇데 간단한 일이 아니야
시간이 걸릴 지도 몰라.
그 사이 많은 것을 버려야 할지도 몰라.
너에게 소중한 것을.
그래도 포기하지마.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주인공이 40대 중반에 어느 산골의 도서관 관장으로 가게 되는데
그 때 맞이한 첫 겨울의 추위에 대한 묘사 부분이다.
추위를 묘사한 부분에서도 새로움에 대한 주인공의 태도를 볼 수 있다.
마치 도시의 벽 안에 들어가 있는 주인공이
자기 자신을 발견했을 때
"들어왔구나" 라고 무덤덤했던 것 처럼.
개인적으로 클라이막스 대목이 바로 여기라고 본다.
일종의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도서관에서 만난 한 소년이 건넨
편지를 받고 그 내용물을 열기 전의 긴장감이 고스란히 녹아있었다.
그리고 그 편지를 열었을 때 주인공 - 소년 - 도시의 벽이
다시 연결되는 지점이라 매우 흥미롭다.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대단한 스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지만,
전체 서사에서 극히 일부 묘사이기 때문에
또 괜찮을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좌우간..
오랜만에 하루키.. 봐서 반가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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