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에 IT 기술이 만나면?
개인적으로 보험에 꽤 관심이 높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보험 가입도 하고 보험에 대한 공부도 하면서 IFP(종합자산관리사)라는 자격증을 땄던 적도 있었습니다. 15년 전의 이야기입니다만, 그 때는 대단한 매력에 빠졌었죠.
그 후 보험에 대해 질려서 한동안 꼴도 보기 싫다고 쳐다보지도 않았다가 최근 보험이 눈부신 변신을 하고 있어서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보험이라는 것은 사실 ‘십시일반’이라는 취지로 발생했죠. 십시일반 (十匙一飯)이란 밥 열 술이 한 그릇이 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요. 여러 사람이 조금씩 힘을 합치면 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는 의미인데요. 보험 역시도 만일에 발생할 미래의 사태,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조금씩 보험료를 내다가 나중에 보험금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의 뉴스는 보험 하면 ‘사기’와 관련된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왔습니다. 사실 보험이라는 취지도 여러 선량한 사람들이 모여 보험금을 축적해 두는 것이지만, 모두가 선량하지는 않죠. 마치 제품을 판매하는 커머스 사업에의 소비자와도 똑같습니다.
불량고객, 블랙컨슈머, 사기를 치는 사람들은 언제나 일정 비율로 존재하죠. 그래서 우리는 해당 비율을 산정해 비용으로 처리하고 보험 역시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나일론 환자가 보험금을 타고 병원에 누워서 가짜 환자 행세를 해도 열은 받았지만 그것 또한 ‘불량률’로 계산합니다. 커머스 산업에서 그러하듯이요.
(출처: 산업일보)
그러나 최근에 보험은 IT 기술과 만나면서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기술은 빅데이터분석,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입니다. 이 기술들이 보험과 만나 다양한 금융 혁신을 이루고 있는데, 이를 업계에서는 인슈어테크(Insurtech)라 합니다.
인슈어테크는 윈윈이었네?
인슈어테크는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입니다. 그렇다면 앞서 이야기한 각종 IT 기술은 보험과 어떤 연관성을 가질까요? 기본적으로 위 기술들을 이용하면 보험 사고 빈도를 줄일 수 있고, 리스크 평가를 좀더 정교하게 해낼 수 있으며, 개인별 맞춤형 컨설팅도 가능하게 됩니다.
(출처: financemagnate)
예를 들어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기술을 이용하면 새로운 상품을 개발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중안 보험은 텐센트 기기로 당뇨병 환자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면서 보험료를 산정하고 그에 맞는 보험상품을 개발했죠. 미국의 랩터스는 셀카를 통해서 나이와 BMI(체질량) 지수를 분석한 후 보험료를 산정하는 상품을 개발했습니다.
또한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하면 맞춤형 마케팅이 가능해 지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이스라엘의 페이여행자 보험은 해외 여행시 다치거나 아팠을 때를 대비해 여행자 보험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원격 의료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보험은 보험의 가입에서부터 원격진료까지 앱 안에서 이루어지면 전세계 75개국에 연결해 21개 언어로 진료를 볼 수 있죠.
사물인터넷 기술도 보험에 있어서 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택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 중 스위스의 취리히 보험은 사물인터넷을 활용한 스마트홈 상품을 출시했는데요. 이 상품은 주택관리를 하면서 발생 가능한 화재, 누수, 동파, 절도 등을 체크해 사전에 리스크를 예방하거나 사후에 빠른 대응을 할 수 있게 해주었죠.
유사하게 미국에서 나온 주택보험 상품도 집의 실내 온도, 일산화탄소 농도량을 측정해 화재 경보를 울리게 하거나 집안 카메라를 통해 사람이 쓰러지는 동작이 감지되면 구급대에 연락하는 등의 상품도 선보였죠.
빅데이터기술, 인공지능, 블록체인 기술이 만나면 안전하게 보험 계약을 할 수 있으며 보험 계약의 자동화, 스마트계약, 프로세스의 자동화를 바탕으로 계약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해당 기술을 이용하면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보험 사기를 탐지하고, 블록체인 기술로 안전하게 보험금 자동 지급도 가능하게 되죠. 기타 인공지능 기술은 고객에게 챗봇으로 응대를 하면서 CS 업무 처리, 민원 고객 예측과 대응도 가능하게 됩니다.
인슈어테크가 발전하면 가장 보험사와 소비자 모두에게 윈윈이 될 수 있습니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리스크 관리, 보험사기 방지, 맞춤형 상품 제안을 통해 보험료를 낮추거나 더 많은 소비자를 가입으로 이끌면서 동시에 사기범죄를 줄일 수 있습니다.
(출처: intelligentinsure)
소비자 입장에서도 모두가 동일하게 내는 보험료에서 나에게 맞는 상품에 가입하고 발생 가능한 사고를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자동차 보험과 마일리지에 따른 최근의 보험 상품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수 년전까지 판매해왔던 자동차 보험은 모두가 똑같은 기준에서 보험료가 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운전 주행 거리에 따라 운전 습관에 따라 보험료를 다르게 산정하게 된 것이죠. 안전운전을 하거나 주행 거리가 짧은 소비자는 보험료를 적게 되니 이득이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이제 인슈어테크는 가야 하는 방향성의 산업이 되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조사 업체 ‘더 비즈니스 리서치 컴퍼니’는 세계 인슈어테크 시장 규모에 대해 2022년 104억4000만 달러에서 올해 134억 9000만 달러로 성장을 예측합니다. 그리고 불과 4년 뒤인 2027년에는 394억 4000만 달러로 약 4배 정도 시장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마케터의 시선
보험산업의 혁신이라 할 수 있는 인슈어테크 분야의 기업들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제 흥미를 가장 끌었던 건 바로 레모네이드 라는 업체였습니다.
(출처: 레모네이드 홈페이지)
2015년에 등장한 이 업체는 모든 보험 절차를 스마트폰 안에서 해결하고 그 프로세스가 놀랍도록 빨라서 주목을 받았습니다. 보험 상품의 선정, 맞춤형 상품의 계약 진행, 계약 관리 및 보험금 청구까지 일사천리로 이루어졌죠.
레모네이드가 유명해진 것은 보험금 계산에 3초밖에 안 걸렸다는 것으로 세계 기록이 알려지면서부터입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앱으로 보험금 청구 신청을 하게 되면 AI 봇이 3초만에 보험금을 산정하고, 소비자에게 3분 내에 보험금 입금까지 완료를 해줍니다.
기존 보험사들의 경우 보험금 청구에서 수령까지 10-15일 이상 소요되는 점을 비교해본다면 혁신적으로 프로세스를 줄인 케이스였습니다.
물론 이렇게 급하게 지급하면 손해가 아니야? 할 수 있겠지만 손해율을 따져봤더니 78% 수준이었습니다. 손해율이란 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급 비율을 의미하며, 손해율이 낮을 수록 보험사의 수익은 높아집니다. 참고로 미국 상위 20개 보험사의 손해율 평균은 82%입니다.
이처럼 인슈어 테크 분야가 눈 부신 발전을 하고 있는데 이면에는 두 가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정보에 대한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국내 문제입니다.
개인정보에 대한 문제는 건강보험에서는 개인의 건강 상태에 따른 보험료를 차등화하는 것이나, 집아 구석구석을 살펴보면서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개인의 사생활 데이터를 긁어가는 부분이 과연 개인정보보호 측면에서 이슈가 없느냐는 겁니다.
더불어 보험사가 자동차 내에서도 민감한 개인 정보를 취득하면서 급제동을 얼마나 했고 과속 브레이크는 얼마나 밟았는지를 체크하면서 보험료를 산정하는 부분에 대해 인디펜던트지에서는 “뒷 좌석에 빅 브라더가 탑승했다”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즉 기술발전이 고도화될 수록 우리의 사생활 영역에서도 모든 감시와 통제, 규제 등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혹은 이를 이용해 빠져나갈 수 없는 선택지를 내미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는 겁니다.
또 다른 하나는 국내 금소법(금융소비자보호법)의 이슈입니다. 2년만인 지난 9월 말에 보험과 관련된 비교, 추천 등의 업무를 규제샌드박스로 지정했지만 인슈어테크는 금소법에 직격탄을 맞고 2년째 성장 엔진이 멈춰있는 상황입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기존의 기득권과 새로운 혁신간의 끊임없는 갈등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의료, 법률, 금융 분야에 있어 혁신이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더디긴 합니다. 아무래도 안전, 보안 등을 고려해서라고는 하지만 실제 모습 중 일부는 기득권의 세력에 의한 압박도 상당히 보입니다.
타다라는 업체가 기존 택시협회와의 갈등 속에 폐업을 했지만 무려 3년이 지나 타다의 비즈니스 행위가 무죄였다는 판결이 났다든가, 법률 서비스앱인 로톡이 설립 8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한국변호사협회와 소송과 갈등을 겪는다는 건 업계에 유명한 사례들입니다. 최근에 보니 로톡은 결국은 비즈니스 행위가 무혐의가 되었지만 사업은 존폐위기에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습니다.
국내에서는 아직 혁신과 관련하여 풀어야 할 이슈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인슈어테크 분야도 남들이 앞서 뛰쳐 나갈 때 우리는 떨어지는 콩고물만 주워야 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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