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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브르사비 Nov 30. 2020

프랑스 재봉쇄 전날, 사람들은 동네 서점에 줄을 섰다

오늘 하루 몇 번이나 행복하다고 느끼셨나요?

나는 행복이 학습의 결과라는 말을 믿는다. 작은 행복이 모이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는 굳이 공들여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하루 동안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우연히 느낀 행복에 감사해하던 사람이었다.


늘 같은 일과 속에서 행복을 느끼는 세포가 모두 없어진 건 아닐까 걱정하던 직장생활 11년 차, 나는 갑작스레 프랑스로 오게 되었고, 서른 중반이 지나서야 이국땅에서 ‘행복을 느끼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프랑스인들이 흔히 말하는 것 중 ‘La Joie de Vivre(일상의 기쁨)’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쉽게 풀자면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줄임말), 직역하자면 삶의 즐거움, 일상의 기쁨이라는 뜻이다. 이 표현은 17세기의 성직자 프랑수아 페늘롱(François Fénelon)이 처음으로 사용했는데 19세기 소설가 에밀 졸라(Émile Zola)의 <La Joie de Vivre>라는 제목의 소설이 유명해지면서 일반인들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프랑스인들은 ‘행복 찾기’에 꽤 적극적이다.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하나요?”라는 질문에 한참을 머뭇거려야 하는 나와 달리 그들의 답변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공원에서 반나절을 보내거나 카페에 앉아 친구들과 하염없이 수다를 떠는 것, 좋아하는 책을 읽고 가족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저녁을 먹는 일, 이런 것들 것 바로 그들이 말하는 행복이었다. 쉽게 감동하고 작은 것에도 기꺼이 행복해하는 그들의 삶의 태도가 마음에 잔잔한 파도를 일으킨다.


그래서인지 큰돈을 소비하며 얻는 행복감은 아직도 프랑스에서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프랑스 혁명 같은 역사적 요인도 있을 터이고,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 탓도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대부분의 사람이 가족과 함께하는 삶, 일과 후 좋아하는 일을 하는 소소한 행복에 초점을 맞춘 채 살아가며,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 던진다. 다만 미국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젊은 세대는 가치관이 좀 다르고, 기성세대 또한 내심 물질적인 것을 동경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힌트를 얻는다. 행복의 역치를 낮추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가장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몇 가지 요소를 기억해두고 그 순간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 행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봉쇄 기간 ‘프랑스인들의 행복을 위한 노력’를 실감하게 된 사건이 몇 가지 있다. 봉쇄 전날, 인파가 몰린 곳은 역시 슈퍼와 약국이었지만, 놀랍게도 사람들은 동네 서점에 길게 줄을 섰다. 필수 상점만 문을 열라는 정부 지침에 따라 서점과 도서관, 박물관 등은 모두 문을 닫을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남편 또한 다섯 권의 책을 사 들고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로 귀가했다. 이제 책 걱정은 없겠다며.



또 다른 사건은 첫 번째 봉쇄 기간 동안 건너편 아파트 맨 위 층에 사는 젊은이들의 공개 댄스 시간이었다. 지금이야 비교적 자유롭게 장을 보고 산책도 하지만, 첫 봉쇄 때는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주변에 넘쳐날 정도로 집에 꼼짝없이 갇혀있어야 했던 생활이었다. 봉쇄 한 달이 채 안 됐을 무렵이었다. 저녁 8시, 의료진을 위한 박수가 멈추자 한집에 사는 젊은이 셋이 갑자기 음악을 틀고 발코니에서 똑같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율동이라 불러도 될 만큼 다소 단조롭지만 동작이 큰 체조 같은 춤이었는데, 박자 한 번 틀리지 않고 세 사람은 한 곡이 끝날 때까지 춤을 췄다. 음악이 끝나자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을 흔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더 기막힌 것은 그 다음날이었다. 박수를 치러 발코니로 나온 사람들이 젊은이들의 율동에 맞춰 따라추기 시작한 것이다. 어르신도, 아이도, 젊은 부부도. 그야말로 발코니에 나온 사람 모두가. 그 후로도 하루도 빠짐없이 봉쇄가 해제될 때까지 이 이상하고도 귀여운 ‘5분간의 댄스’는 계속됐고 그때마다 나는 이유 없이 행복했다.



마지막으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파리의 서점, 세익스피어 앤 컴퍼니가 코로나 이후 경영난 악화로 폐업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에서 온라인 주문이 밀려들어 위기를 넘겼다는 뉴스이다.


동네마다 작은 서점이 많은 파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요즘 파리의 책벌레들은 동네 서점을 살리기 위해 대형 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는 대신 이 사이트(https://www.parislibrairies.fr)를 통해 동네 서점에서 책을 구입하고 직접 찾으러 가고 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공간, 추억이 담겨있는 공간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그들의 마음에 감동하는 순간이다.

 


갓 구운 바게트를 사서 버터가 녹는 걸 지켜보는 순간
이른 아침 조깅을 마친 남편의 발소리를 침대에서 듣는 것
소소한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
늦은 오후 공원에 앉아 사람들을 보는 시간
중고 LP를 사서 질릴 때까지 듣는 일
발코니에 서서 해가 지는 것을 보는 저녁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빼곡하게 적어본다. 대부분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제 행복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만들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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