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비브르사비 Aug 26. 2020

온 힘을 다해 고흐를 기억하는 곳, 아를

한 화가의 고단한 삶을 도시 전체가 기억한다는 것

걷는 길마다 쨍한 햇살이 눈부시다. 프로방스를 여행하던 한 화가가 고단한 그의 삶을 누이고자 잠시 머무른 이 작은 마을은 그가 머물던 1888년처럼 여전히 북적거린다. 


온 도시가 그의 흔적으로 가득한 곳. 

어딘가 익숙한 풍경에 묘한 기시감까지 느끼게 하는 곳, 바로 아를이다.    



빈센트 반 고흐, 비극적인 그의 삶과 재능에 한 번쯤 매료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렬한 터치와 황금빛 색채의 <해바라기>와 <노란 집>, 그리고 <아를의 별이 빛나는 밤>까지. 고흐를 대표하는 걸작들이 아를에서 탄생했다. 남프랑스의 작은 도시, 아를이 이토록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순전히 그의 덕분이다.


아를은 2000년 전 로마 시대부터 번성했던 도시이다. 로마 제국 내 지리 군사적 요지로 원형경기장과 고대극장이 도심 가운데에 자리해 있으며, 원형경기장은 최대 2만 명까지 수용 가능했다고 한다. 현재는 투우를 포함한 행사 공간으로 활용 중이며, 경기장 내 계단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면 아를 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고대와 중세 문화가 혼재된 이곳 아를은 198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재산으로 지정됐다.

 


고흐는 이곳에 몰려든 수많은 관중을 그렸다.


고대 로마식 공동묘지인 알리스캉(Les Alyscamps)에도 고흐의 흔적이 있었다. 4세기부터 유명인을 위한 공동묘지로 사용됐다던 이곳은 사람의 숨결보다는 시간의 무게가 더 느껴지는 장소이다. 고요한 가로수길 사이로 걷다 보면 좌우로 그림자를 늘어뜨린 석관이 보인다. 먼 거리는 아니지만 쓸쓸해지는 마음에 걷다 쉬다를 반복한다. 길 끝에 위치한 예배당은 고독하고도 아름다웠다.



외로운 마음으로 그림에 몰두하다

“테오에게. 이번 주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 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아를을 찾은 이들이라면 꼭 한 번쯤 들름 직한 곳, 바로 반 고흐 카페이다. 노란 외벽과 해바라기, 고흐의 그림으로 장식된 카페가 눈길을 끈다. 고흐를 사랑해 이곳에 왔음직한 사람들이 한낮의 더위를 피해 밤의 카페에서 목을 축인다. 아를은 작은 도시이다. 3시간 정도면 도보로 전부 둘러볼 수 있을 정도로 고흐와 관련된 장소는 알리스캉을 제외하고 대부분 시내 중심에 몰려있다.


밤의 카페 테라스(Terrasse du café le soir), 1888년



가장 어두운 밤도 언젠가 끝나고 해가 떠오를 것이다

에스파스 반 고흐(L’espace Van Gogh)는 고흐가 치료를 받았던 정신병원으로 그의 그림을 토대로 건물과 정원을 복구해 전시공간으로 활용 중이다. 잘 가꿔진 화려한 정원이 노란색 외벽과 어우러진다. 오늘도 수많은 미술 애호가들이 카페와 에스파스 반 고흐 주변에서 손을 바삐 움직이며 그림을 그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과로와 신경병, 극심한 경제난, 그리고 고갱과의 갈등. ‘화가 공동체’라는 꿈과 희망을 품고 정착했던 고흐는 현실 앞에 좌절한다. 고갱과 다툰 끝에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자른 일화는 고립된 생활 속에서 극으로 치달은 그의 상황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는 붓을 놓지 않았다. 고흐는 아를에서만 200여 점의 그림을 완성했으며, 노란색과 파란색을 기본으로 한 원색의 선명한 색감과 강렬한 터치를 완성했다. 그는 아를에 고작 2년 머물렀을 뿐이지만 아를의 모든 것을 화폭에 담았다.




100년이 지난 지금, 아를 사람들은 그의 그림을 도시 곳곳에 세워 그를 기억한다. 숨은그림찾기를 하듯 아를의 골목을 거닐며 반 고흐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일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