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과 옷 같은 마감재가 입혀지기 전 뼈와 혈관처럼 집 전체를 순환하는 것이 전기다. 실수가 용납되기 어려운 공정이라는 점에서 배관 설비와도 비슷하다. 목공이 들어오기 전에 기초 작업에 들어가는 전기 기술자가 누락하는 부분이라도 있을라치면 가벽과 마감재를 모두 뜯어내고 재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그러기란 정말 쉽지 않다.)
이 때문에 인테리어를 총괄하는 입장에서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전기 배선 작업만을 위한 설계 도면을 별도로 준비하는 것이다. 전기 기술자에게 공정 지시를 할 때 잘 그려진 도면 한 장만 있으면 충분하다. 도면은 각 방마다 설치될 조명과 스위치, 콘센트의 위치와 종류 등 정보를 세심히 담고 있으면 된다.
아래 도면을 보자. 한 장의 도면이지만 전기 기구와 관련된 모든 정보가 담겨있다. 여기서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면, 지시 정보가 더 디테일하면 좋다. 예를 들어서 거실에 콘센트를 총 3개 설치할 예정이라면, 각 벽을 기준으로 좌측에서 몇 밀리미터(mm), 바닥에서부터 위쪽으로 몇 밀리미터 떨어진 곳에 설치하라고 정확한 위치를 지정해주면 된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콘센트와 스위치, 조명 위치를 대강 대강 설치하는 기술자도 많다. 기술자의 임무는 주문 받은 자재를 설치하는 것이지, 아름답게 설치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천정 조명 역시 도면 상에서 위치를 정확히 잡아줄수록 최종 작업의 완성도가 올라간다.
전기 작업에서 특히 우리 현장과 같이 오래된 아파트를 리모델링할 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예전의 생활방식이라면 감당하지 못했을 전기 용량의 전선을 따로 빼줘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전기 기술자분과의 협의 끝에 인덕션용 전선과 에어컨용 전선을 별도로 분리하고 이를 제어하는 누전차단기를 새로 만들어 넣기로 했다. 만약 이 작업을 하지 않았다면 인덕션을 켜면 조명이 나간다거나, 에어컨을 동시에 돌리지 못한다거나 하는 끔찍한 불편을 겪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 현장처럼 별도의 가벽 없이 콘크리트 벽에 벽지로만 마감되어 있는 집은 전선의 경로나 콘센트 스위치 등이 모두 노출돼 있다. 전선을 빼두는 작업이 끝나면, 후공정인 목공 기술자에게 석고 가벽을 설치한 후 가벽 밖으로 전선을 빼달라고 주문해두면 된다. 그러면 전선은 가벽 밑으로 매설돼 깔끔하게 마감된다.
전기 배선 작업이 끝난 현장. 콘크리트 골조 밖으로 전선이 튀어나와 있다. 이후 들어오는 목공팀이 가벽을 세워 전선을 보이지 않게 매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