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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야 May 29. 2023

나의 지긋지긋한 교직은 한 줌도 내어줄 수 없다

수필

  

  교대 동기 형 한 명이 교직을 떠났다는 소식을 친구에게 전해 들었다. 가업을 물려받았다고 했던가, 워낙 서글서글하고 단단한 형이었던 기억이 나서 걱정은 하지 않았다. 학교 밖에서 좋은 일이 많길, 잠깐 바랐을 뿐.


  인터넷에서도 자주 보게 되는 교사들의 이야기이다. 의원면직을 결심하거나, 의원면직 전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묻거나, 실제로 행해서 떠나거나. 하는 그런 글들. 부러워하는 분들도 있고, 속상해하는 분들도 있고, 안녕을 빌기도 하고, 나처럼 바라만 보는 사람도 있으리라.


  그렇다. 우리의 직업은 지긋지긋하다. 교사 한 명이 대개 스무 명 남짓, 많으면 서른 명이 넘는 학생들을 한꺼번에 만난다.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말, 행동, 감정들을 3월부터 2월까지,  400시간 가까이 마주해야만 한다.

  학생들만 만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어린 학생들이 가정에서 (습관적으로) 들어온 말, 학습한 행동, 억지로 감당해야 했던 상처, 물려받은 기대, 즉 학생의 보호소인지 폐허인지 헷갈리는 가족들 그 자체를 한꺼번에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구질구질해지고, 볼품없어지고, 찔리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많아봤자 만 12살 아이들 사이에서! 나는 이미 진즉에 학교 밖 타인의 이해는 바라지 않게 되었다. 열두 살 배기 아이한테 말로 날카롭게 베이고 병원에 가게 된 교사를 이해해 줄 사람은 많지 않다. 가끔 동정하거나, 시류에 휩쓸리는 척 요즘 아이들이 별나죠? 하면 다행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사의 그 상처는 방학으로 값을 넘치게 치렀지 않느냐, 하고 처음 보는 교사에게도 흥정을 요구한다. 에라이~

나는 이해받고자 남들 앞에서 아파하기를 진작에 관두었다.


  그럼에도 나는 왜인지, 이 끔찍한 교직을 스스로 그만두기에 격한 거부감을 느꼈다. 나는 밀려오는 감정을 먼저 느끼고, 그 이유는 알지 못했다.


  학생에게 육두문자 욕을 듣고, 학부모가 전화상으로 고함을 치고, 관리자가 학부모에게 사과를 종용하고, 또 학부모의 전화가 새벽까지 열두 번 울려도, 상담이 필요한 아이의 상담을 거부하는 상담교사를 만나고도, 나의 아픈 선배들이 버티지 못하고 병휴직, 휴직 등을 하더라도, 나의 머저리 같은 선배들이 범법을 저질러 뉴스에 등장해도, 학부모와 이익단체가 법 개정 제안을 곡해하고, 아동학대 처벌법이라는 무고와 증오에 휩싸인 악법을 신성히 수호하려 핏발을 세워도, 나는 그대로 있다.


  내어주는 것은 죽기보다 싫다.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은 오롯이 나의 것이 아니다. 부모님께 물려받은 기대, 그리고 그 정도면 적당히 해낼 수 있겠지, 모험보다 안정적인 수입을 택한 나의 계산, 내향적이지만 그럼에도 사람에 관심이 많은 나의 성향, 교육과정만 준수하면 마음대로 수업을 구성할 수 있는 매력적인 자율성. 이런 온갖 것들이 지금 교사로서의 나를 만들었다. 그러자 타인의 비명 같은 절규를 듣게 되는 것이다.

- 너는 못해. 니 직업은 끔찍해. 다른 좋은 것들을 놔두고 왜? 애들 엉덩이나 닦아주는 이깟 일, 나 같으면 안 해. 때려치우지도 못하는 겁쟁이.


  따라가려 했다. 남들의 말에 따라 내 직업을 내어주려 했다. 실제로 그것이 틀린 선택은 아니다. 세상에 틀린 선택이란 거의 드물고, 그저 각자의 특별한 선택만 있을 뿐이니까. 그렇지만 나는 끝내 내어주지 않았다.


  나의 이 직업은 지긋지긋하고 끔찍하다. 당장 일도 내 수업을 지루해하며 하품하거나 쪽지를 주고받는 학생들도 있을 테고, 언제든 학부모가 화가 잔뜩 나서 민원을 넣을 테고, 날 고깝게 보는 동료 교사가 날 선 한마디를 할 지도, 아니면 그것을 회피하고자 내가 내 자신을 미리 구겨버릴지도. 나의 직업은 행복하지 않다.


  그런들 뭐 어쩔 텐가. 나는 그래도 끝까지 지킬 테다. 내 수업에 질려도 나는 끝까지 수업을 해낼 테고, 내가 불친절하다고 민원을 받아도 나는 나쁜 말을 하는 학생들을 멈춰 세우고 지도할 테다. 교사노조에 가입하여 목소리를 내겠다. 날 선 말로 찌르는 당신들을 이 악물고 사랑할지언정, 나는 내가 학교에서 가진 그 모든 것을 타인이 털 끝 하나 건드리게 두지는 않겠다.


  내가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둔다면, 그 이유는 그저 나 한 사람뿐이다. 다른 누구도 이 자리만큼은 한 발짝도 내어줄 수 없다. 누가 뭐래도 교직은 내가 기꺼이 내 하루 8시간을 줄만한, 고통스럽지만 나만의 삶이니까.

  이리도 지겹고, 불안하고, 알아주는 타인 하나 없는 나의 일, 나의 일터.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내 마음만큼은 누구도 뺏을 수 없으니까.


  당신이 나 혼자만의 이 다짐을 보고 어떤 생각이 들지 모르겠다. 어떤 생각을 해도 괜찮다. 동참해도 좋고, 무시할 수도 있고, 비웃거나 욕지거리를 하며 떠나려는 마음을 굳힐 수도 있겠다. 나는 알 길이 없다.


  다만 당신이 나처럼 나의 것은 조금이라도 뺏기기 싫어한다면, 누가 뭐라 해도 내 삶은 내 결정으로 정하고 싶다면, 그저 이 글이 어느 쪽이든 당신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되길.


  좋은 일이 더 많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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