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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Oct 25. 2023

과거의 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당부할게요. 상처받는 거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여러 활동을 하다 보면, 내가 '상대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우리 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도 분명히 상처를 받는 일이 생길 거예요. 그리고 '우리 편'에게서 받는 상처가 훨씬 더 아플 수도 있어요. 많이 힘들겠지만, 그 상처로 인해서 도망가지 말고, 그것에 대해 꼭 주변 사람들과 용기를 내서 함께 터놓고 이야기하고 자신의 경험으로 간직하세요. 상처를 준 사람은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서 성찰하지 않아요. 하지만 상처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자꾸 되새김질을 하고 자신이 왜 상처받았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해야 하잖아요. 아프니까, 그래서 희망은 항상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게 있어요. 진짜예요.

- <아픔이 길이 되려면>, 김승섭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고 예전에 내가 썼던 글 중에 올릴 만한 글이 있는지 훑어보게 됐다. 그런데 읽어보면서 느낀 점은 나란 사람이 어떤 하나의 결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구체적인 양상은 다르지만 여전히 내가 원하는 것과 사회가 요구하는 것 사이에서 어떤 균형점을 잡을 것인가와 인간관계에서 나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마치 내가 예전에 썼던 글들이 지금의 나를 응원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같이 싸워주고 공감해 주는 느낌이랄까?



 고등학교 시절 남겼던 시다. 문학에 문외한이었던(지금도 그렇다) 내가 무슨 용기로 교내 문학 공모전에 응모했다. 어떤 마음으로 시를 쓰고 이런 내용의 시를 썼을까? 그때도 아마 내면의 상처와 불안정을 누군가에게 어떤 방식으로라도 토로하고 싶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내 안의 가시가 나를 찌를 거 같은 느낌이랄까?

(쓰다 보니 <가시나무>라는 노래와 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일부러 베끼려고 베낀 건 아닙니다... 이후에 읽어보고 약간 수정하는 과정에서 영향받은 거 같긴 하다.)


나는 다시 이 시를 꺼내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2019년의 내가 이 시를 꺼내들었고 나는 그 글을 다시 꺼내들었다. 서투르고 무지하기까지 했던 나지만 무언가 든든한 느낌이 들었다. 정말 힘들어하고 상처도 많았던 그 시절을 무사히 잘 지나쳐왔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그 시절을 이겨내고자 썼던 글들은 지금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응원이 됐다. 그렇게 생각하니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우던 시간들을 조금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한다. 이젠 그 시간을 제외하고는 날 설명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예전에 좋아하는 형에게 물은 적이 있다. "형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는 늙어서도 반성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나이가 들면 반성하고 부정해야 하는 것들의 양이 많아지니 그것이 힘든 일이라 덧붙였다. 내겐 아직도 그 답변을 가슴에 갖고 살아간다. 나는 또 실수하고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아파할 것이다. 그리고, 나를 성찰하고 내 일부를 부정할 것이다. 치열하고 힘든 과정이다. 하지만 그 과정이 다시 양분이 될 것이다... 어제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오늘을 만들고자 노력할 테니 말이다.


고등학교의 시간은 '2019년의 나'를 위한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또 2023년의 나를 지지하는 토대가 되었다. 아마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로 이어질 것이다. 난 이 글을 보며 또 힘을 얻을 미래의 나를 그려본다.


조금은 덜 외로운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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