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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Nov 27. 2023

드디어 퇴사의 방아쇠를 당겼다.

퇴사록 1편

 퇴사하기로 했다. 


 사실은 퇴사라는 카드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건 올 2월부터다. 다닌 지 얼마 안 된 시점부터 본능적으로 이 회사가 나와 맞지 않는다는 걸 느꼈던 거 같다. 하지만 입사 3개월 만에 바로 퇴사를 결정할 수는 없었다. 사회적 시선에서 본다면 충분히 좋은 회사고 나 또한 이곳에 취업하기 위해 정말 노력했기에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리고 입사하자마자 사무실에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혼란스럽고 구성원들 모두가 날이 서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내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는 생가도 들었다. 그래서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렇게 입사 1년이 다가오는 시점까지 버틴 현재 내 결론은 퇴사다. 돌아보면 올 한 해는 내게 회사에 적응하기보다는 내가 일과 직장을 대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찾는 시간이었다. 오히려 회사를 판단하는 기준과 내가 떠나야 할 이유가 명확해지고 디테일해졌다. 그래서 나는 그 결정의 맥락과 구조를 남겨보고자 이렇게 글을 쓰게 됐다.


오늘 글은 자문자답 형식으로 글을 전개해보려 한다.


① 지금 다니는 회사는 어떤 곳인가?

 금융 대기업에 다니고 있다. 금융업이다 보니 급여 수준은 높은 편이고 정년 보장도 꽤 되는 편이다. 물질적인 측면이나 안정성 측면에서는 퇴사를 마음먹은 내가 보기에도 높은 점수를 줄 만하다. 나는 여기서 영업점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럼 회사를 왜 그만두려 하는가?


잔 돌리기도 몰라? 귀하게 자랐네.
그렇게 열심히 하지 마. 위화감 들잖아. 적당히 해

 결국 조직문화, 제도, 시스템이 문제였다. 성장과 발전을 추구하지 않는 조직문화, 조직원들의 능력을 최우선 기준으로 삼지 않는 인사제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적절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시스템이 문제다. 내가 인용한 말들은 모두 회사에서 들은 말들이다. 이에 더해 무수한 성희롱 발언, 갑질 발언을 들었다. 나는 이런 문제가 개인의 인성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들을 해도 되게끔 만든 분위기나 문화가 더욱 문제라 생각한다. 성희롱 발언을 한 사람들이 징계를 받고도 높은 곳에 올라가고 심지어는 실제 폭행을 한 사람이 자기 라인으로 요직에 올랐다. 나는 이런 것들을 보며 이곳에 오래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가적으로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거나 정당한 보상체계를 주지 못하니 점점 모두가 뻣뻣해진다. 더 나은 방법을 굳이 찾지 않으며 자기의 안위를 지킬 방법만 고민한다. 예를 들면 내가 아는 사람이 노력해 사무실 실적을 높여 표창이 나왔는데 그 표창은 평소 일을 안 하던 과장의 몫이 됐다. 그 과장이 곧 승진 타이밍이라는 점과 책임자와 그 과장의 관계가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결정들이 쌓여 구성원들은 더 이상 노력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바로 정치질과 라인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인사 원칙이다. 우리 회사 인사팀은 현장경험을 이유로 구성원 모두가 영업소에서 2년 간 일해야 한다는 정책을 세웠다. 그리고 나는 입사하자마자 영업소로 왔다. 물론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에 나와 함께 내려온 과장이 올라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높은 직급들의 원성이 높다는 이유였다. 나는 여기서 또 현타를 느꼈다. 내가 원칙에 순응한 것은 다른 사람도 나처럼 희생한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원칙이 무너지고 권력이나 라인으로 이 부담이 결정되는 것이라면 나는 이것을 수용할 생각이 없다. 그냥 이것은 정글인 것이다. 


 과연 안정성은 좋기만 한 것일까? 경제학은 모든 것에 기회비용이 따른다고 말한다. 나는 안정성은 조직을 고이게 만들고 사람을 제자리에 서게끔 한다 생각한다. 올해 나는 내가 안정성보다 성장과 개선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만두려 한다.


 그럼 3년을 다녀보는 건 어때 혹은 본사 경험을 해보는 건 어때?

 이 말은 보통 3년이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나 내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나온 말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앞서 말한 사례들로 어느 정도 답을 얻었다 생각하고 굳이 낮은 확률에 내 젊음을 투자할 생각은 없다.


 부모님의 반응은 어때?

 물론 사회적 시선도 좋고 안정적인 회사니까 계속 다녔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큰 거 같다. 하지만 내가 완고하게 내 행복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고 부모님께 손 안 벌리겠다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존중해 주시고 퇴사 타이밍만 조금 안정적으로 가져가달라 부탁하셨다. 나 스스로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이 어려워 허락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는데 이번 가족여행 때 퇴사 관련해 진중한 대화를 하면서 조금 더 내가 커진 거 같다.


 부모님께 말씀드렸던 내용이 나는 커리어와 가족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한다면 나는 내 커리어와 자유를 택하겠다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장남, 어머니는 장녀인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부모님께서 많은 것들을 짊어지시는 걸 봤고 나도 그것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런 부모님과 내가 안쓰러웠기 때문에 이 사슬을 끊어내고자 다른 사람을 위해 내 인생을 희생할 일은 없다고 이야기했다. 부모님께는 충격이 될 수 있는 말이지만 올해 회사생활로 나는 그렇게 결론 내렸다.



 나는 어찌어찌 이렇게 퇴사를 결정했다. 그러면 이제 문제는 퇴사를 언제 하고 다음 회사는 어떤 곳으로 정할 것인가다. 이 질문들은 차차 다음 글로 써나가 볼 생각이다. 많이 불안하고 이게 맞나 싶기도 하지만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생각한다. 자기 길을 걸어 나가고 있는 많은 분들을 떠올리며 파이팅 해본다.


 마무리는 차승원 님의 대사입니다! 환경의 중요성을 잘 말씀해주신 거 같아서...

https://youtu.be/aw3HWq1OPC4?si=JdjJQxRcRzedJXp7&t=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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