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야구에 빠진 순간은 언제인가요?
요즘 즐겨 듣는 팟캐스트 <정희진의 공부>에서 인생을 감당한다는 것을 주제로 영화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야구 영화인 <머니볼>의 한 장면이 거론됐다. 바로 한 야구선수가 공이 자신에게로 오는 것이 가장 두렵다 고백하는 장면이다. 이는 그의 포지션이 1루임을 감안한다면 더욱 아이러니하게 느껴진다. 야구에서 가장 빈번하게 벌어지는 아웃 방식이 1루로 던져 아웃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자신의 직업적 소명이자 일상 자체가 두려움의 대상임을 의미한다. 질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 이에게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머니볼>은 야구영화로 보면 좋은 영화는 아니다. 등장인물 정보, 좋은 성적의 원동력, 트레이드 시점 등 고증 측면에서는 빈틈이 많다. 그래서 빌리 빈 미화 영화라는 비판을 받곤 한다. 하지만 나는 그 점이 이 영화의 가치를 낮춘다 생각하지 않는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숫자를 이용한 구단 경영방식이 옳았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개인이 현실의 악조건 하에서도 자신의 신념과 방식으로 싸워나가는 처절한 과정을 그린 영화라 생각한다. 내용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돈을 많이 쓰지 않는 야구 구단의 단장을 맡은 주인공이 몇십 배 돈을 더 쓰는 빅마켓 구단들과 경쟁하는 이야기다. 변화나 과정이 아닌 결과로만 평가받는 스포츠 산업이기에 이런 투쟁은 더욱 눈길을 끈다.
이를 의도했기에 결말도 팀 20연승이나 포스트시즌 탈락 장면이 아니다. 영화는 빌리 빈이 빅마켓 구단인 보스턴 레드삭스에 단장직 제의를 받고 고뇌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배치했다. 도전과 안정 중 선택을 고민하는 그에게 그와 변화를 함께 시도했던 피터 브랜드는 한 마이너리그 선수 영상을 보여준다. 그 영상은 한 선수가 자신이 홈런을 쳤음에도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자신이 아웃될까 걱정하며 1루를 사수하고자 우스꽝스럽게 넘어지는 영상이었다. 자신이 홈런을 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조차 못 하고 공이 어디로 가는지 바라볼 만한 여유도 없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에게는 한 타석에 들어서 공을 치고 1루를 사수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므로 그 타석은 자신이 정해놓은 한계를 깨는 순간인 것이었고 그것을 상대팀 선수들도 함 축하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장면인데 빌리 빈은 그 장면을 보고 "이래서 야구를 사랑할 수밖에 없지"라고 말한다.
당신은 야구를 왜 사랑하는가? 혹자는 시즌 최종전의 승리, 즉 우승이 전부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승의 영광도 끝이 있고 결국 잊힐 것이다. 그리고 그런 논리 하에서는 우승하지 못한 팀과 그 팀의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우리를 붙잡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자신이 홈런을 칠 거라 생각조차 못 한 선수가 홈런을 치며 한계를 넘어서는 그 순간이 우리를 울리고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빌리 빈이 악조건 하에서도 자신의 전략을 믿고 그것을 통해 결국에는 변화를 이루어내고 마는 모습이 우리를 울리듯 말이다.
야구는 흔히 인생에 많이 비유된다. <머니볼> 속 메시지도 우리 삶에서 던지는 고민들과 많이 닮아있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우리 인간은 언젠가 패배하고 죽을 것이기에 결과라는 측면에서는 무의미하다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자체로 우리를 떨리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순간들이 있다. 그 과정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삶의 의미가 되곤 한다. 나 또한 올해 그것을 찾는 것이 목표다. 나는 이후의 삶을 어떤 신념과 가치관으로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이 내가 갈 길을 결정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