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은 누구게?
이번에 개봉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신작 <괴물>을 보았다. 감독님 작품으로는 <어느 가족> 이후로 두 번째 영화다. 두 작품만 보고 감독의 작품 경향성을 논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인상 깊은 지점이 꽤 있었다. 가령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곳에 관심을 가진다는 점이나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한다는 점 같은 것들이다. 더욱 대단한 점은 사회적 메시지를 던짐에도 감독의 목소리가 영화 전면에 나선다기보다 관조하는 느낌으로 영화를 그려낸다는 점이다. 그 시선에서는 감독의 따뜻함이 배어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예리함이 느껴진다. 이번 영화도 그런 느낌을 주는 영화였다.
※스포주의
'괴물은 누구게?' 이는 극 중 주인공들이 즐기는 보드게임에서 나오는 말이다. 이 게임은 두 사람이 카드를 안 보이게끔 이마에 갖다 댄 채로 누가 괴물카드를 갖고 있는지 찾는 게임이다. 카드 뽑기에 따라 나도 상대도 괴물이 될 수 있다. 이렇게 누가 괴물이 될지 모른 채 괴물을 찾는 플레이어의 모습은 감독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와 맞닿아 있다. 감독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상대가 괴물일까 아니면 당신이 괴물일까?
'괴물'은 영화 전반에서도 중요한 의미로 사용된다. 극 중 인물들은 각자의 이해관계로 서로 충돌하게 되는데 그 갈등이 고조될 때 상대에게 괴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즉, 상대에 대한 혐오와 멸시를 드러내는 표현으로써 사용되는 것이다. 물론 그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근거를 가진다. 선생님이 유흥주점에 다닌다는 소문이 돈다는 점이나 소중한 사람을 잃었음에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점이 그것이다. 게다가 그 상대로 인해 내가 곤경에 빠지게 됐다는 생각도 그런 마음을 격화시킨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물들은 상대를 같은 인간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닌 괴물로 규정하는 것을 택한다.
영화는 같은 사건을 각 인물들의 시점으로 바꿔가면서 보여주는 형식을 사용한다. 이를 통해 그 인물의 행동과 판단이 나름 합리적임을 보여주고 나아가서는 관객들이 한 인물의 마음에 동조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이후에 그 상대방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그도 그만의 입장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게 주요 인물들의 입장을 모두 보고 나서야 우리는 다른 이에 대한 평가들이 합리적이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사실 괴물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두 각기의 맥락과 복잡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한 것이다.
영화는 또한 사회적 편견에 대해서도 밀접하게 다루고 있다. 영화 속 인물들은 상대를 괴물 혹은 악마로 규정할 때 그의 소수자성을 이용한다. 성적 지향, 가족 문제 그리고 잘못된 소문 등 상대의 약점을 거리낌 없이 건드리며 아픔을 준다. 내가 아프다는 점과 상대가 문제가 있다는 점은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된다. 하지만 이는 앞에서 말했던 지점과 맞닿는데, 인간은 모두 약점과 소수자성을 지닌다. 그리고 우리가 느끼고 보고 있는 것이 그 인간의 전부는 아니다. 우리가 이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그 인간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와의 관계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함이다. 이 영화를 곱씹다 보면 사실은 괴물이라 규정당하는 이들이 괴물이 아니라 누군가를 괴물로 규정하고자 하는 이들이 진짜 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으로 든 고민은 어른으로서의 역할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 '무기노 미나토'의 고뇌를 중심으로 흘러간다. 어린 나이의 그는 학교 친구 '요리'에게 끌리는 자신의 마음 때문에 크게 흔들린다. 그를 방해하는 것은 동성을 좋아해선 안 되고 정상가족을 꾸렸으면 한다는 어른들의 말이다. 그리고 좋아하는 친구 '요리'가 또래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점도 그를 망설이게 한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미나토는 초반에 자신의 마음을 억누르고자 애쓰고 심지어는 '요리'를 괴롭히는 데 동참한다. 그러나 그럴수록 그는 크게 삐뚤어진다. 물론, 어른들이 그런 말을 했던 것은 그가 행복하고 안정적인 삶을 살기를 바라는 선한 의도에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와 멀어지게 만든다. 그런 점에서 어른들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나 두 아이가 자유롭게 뛰노는 마지막 장면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바람직하다 이야기하는 가치와 사회적 기준은 정말 그들을 위한 것일까? 나의 판단과 가치관을 돌아보게 하는 영화였다.
몇몇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걸 행복이라고 하지 않아
영화는 여러 사람들의 관점에서 바라보게끔 하다가 나로 돌아오게 만든다. '내가 괴물인 건 아닐까?' 나 또한 누군가를 쉽게 평가하고 단정한 적이 있었다. 특히 내가 힘들고 여유가 없을 때는 그랬다. 또한 이 영화에서 소문이나 타인의 평가에 대해서도 고민하도록 만드는데 돌아보면 나도 그것에 쉽게 휩쓸린 순간이 많았다. 영화는 분명 잔잔하게 흘러가는데 오히려 그것이 노골적인 비판보다 더 예리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것이 감독이 노린 바라 생각한다. '나도 괴물이 될 수 있어.' 하는 마음은 우리를 겸허하고 다른 이를 조금 더 이해하고자 노력하게 만든다. 그런 마음을 스스로 들게끔 만든다는 점에서 분명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 최고 영화 중 하나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