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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계인 Feb 03. 2024

[영화] <어나더 라운드> 리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A: 불안의 개념을 물으셨죠? 키르케고르는 불안을 '실패'라는 관념에 대한 인간의 대응이라고 했어요.

B: 그보다 더 중요한 건?

A: 과거의 실패요. 타인과 삶을 사랑하려면 자신의 실패 가능성을 받아들여야 해요.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영화다.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이 등장인물들이 술을 마시며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모습으로 수미상관을 이룬다. 또한, 내부적으로도 주인공들이 '인간은 혈중 알콜 농도가 0.05%가 부족한 채로 태어난다'라는 엉뚱한 가설을 검증해 보기로 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목인 '어나더 라운드'가 술 한 잔 더 돌리라는 의미라고 하니 이 영화는 술에 정말 진심인 영화다.



 이 영화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드라마 <미생>의 독백 장면이었다. 현실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서는 술이든 시든 덕이든 무언가에 취해야만 한다는 그 나지막한 낭송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받았다. 이 영화에서도 그런 맥락에서 술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현실의 무게는 우리 어깨를 짓누르고 우리 존재를 다른 곳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런 역동성의 부재는 자기 존재를 잃어버리도록 만든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에서 술은 현실의 대비적 개념으로 활용된다. 꿈, 열정 그리고 안정과 대비되는 실패와 도전 등이 그것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가? 이 영화가 핵심적으로 던지는 질문이다. 극 중에, 주인공인 역사 교사가 학생들에게 퀴즈를 던지는 장면이 나온다. 정치인들의 프로필을 던져주고 어떤 후보를 찍을지 묻는 것이었다. 

 '중증 질병을 앓고 있고 목적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하며 사생활적으로는 외도 이력까지 있는 첫 번째 후보, 마찬가지로 다양한 질병을 앓고 술과 담배를 즐기며 남들과 협동할 줄 모르는 두 번째 후보, 마지막으로 앞의 후보들과 다르게 음주나 흡연을 하지 않으며 여자를 존중하고 동물 애호가기까지 한 세 번째 후보가 있다. 당신은 누구를 찍을 것인가?' 이 질문에 당연히 학생들은 세 번째 후보를 뽑겠다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 질문에는 트릭이 있다. 교사는 각 후보가 누구인지를 말해주는데 각 후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윈스턴 처칠 그리고 아돌프 히틀러다. 이 질문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 결국 세상은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이성과 통제욕을 내려놓고 삶에 몸을 맡기는 것도 필요하다 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도전이란 자신의 토대를 일시적으로 잃는 것이고 도전하지 않는 것은 자신을 잃는 것이다.

영화 <어나더 라운드> 中


 영화가 도전을 강조하는 것에 걸맞게, 구조가 마치 실험 과정과 닮아 있다. 인물들은 '적정한 알콜은 자신감과 창의성에 도움이 된다'라는 가설을 세운 후, 알콜 농도를 바꾸어 가며 실험을 거듭한다. 호기심으로 시도한 도전이 좋은 결과가 나오자 최적의 알콜 도수를 찾겠다는 의지로 이어진다. 이런 과정을 보고 있자면 큰 사고로 이어질까 위태롭고 실제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그것을 문제시하지 않는다. 물론, 영화처럼 술 먹고 일상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은 극단적이지만 우리 삶은 실패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인간 존재는 부조리하고 무엇이든 시도해 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오히려 안정, 규범, 현실을 이유로 새로운 시도와 실패를 외면할 때 삶의 활력을 잃는 것이 아닐까?


  최근 내가 하고 있던 고민들과 맞닿는 지점들이 많은 영화였다. 나 또한 삶, 관계, 커리어적인 부분에서 내가 통제하고자 하는 욕심이 강한 사람이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맞지 않으면 그것을 외면하고자 노력했다. 술을 좋아하지 않은 이유도 내가 내 이성을 놓칠 수 있다는 것도 크다. 하지만 인생을 돌아보면 내 인생에서 내가 선택한 것이 얼마나 되나 싶다. 내가 지금 회사 그리고 전주에 있는 것도 선택의 영역이 아니었다. 내가 내년에 이 회사에 있을까 하는 것도 모르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 안의 불안감을 외면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게 전부다. 


 이동진 평론가 님의 문장이 떠오르는 영화였다.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

https://youtu.be/JCZcFFKS-Qk?si=Eb3PrGS_GftXREiK


취하라. 항상 취해 있어야 한다. 

모든 게 거기에 있다. 그것이 유일한 문제다. 
당신의 어깨를 무너지게 하여 당신을 땅 쪽으로 꼬부라지게 하는 가증스러운 시간의 무게를 느끼지 않기 위해서 당신은 쉴 새 없이 취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엇에 취한다? 술이든 시든 덕이든 그 어느 것이든 당신 마음대로다. 그러나 어쨌든 취해라. 
그리고 때때로 궁궐의 계단 위에서, 도랑가의 초록색 풀 위에서, 혹은 당신 방의 음울한 고독 가운데서 당신이 깨어나게 되고, 취기가 감소되거나 사라져버리거든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 슬퍼하는 모든 것, 달려가는 모든 것, 노래하는 모든 것, 말하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인가를. 그러면 바람도 물결도 별도 새도 시계도 당신에게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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