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들어주는 것, 그리고 현실적인 조언
2015.11.xx 00:00am
오래된 친구에게서 잠깐 산책 할 수 있겠냐는 카톡이 왔다. 이미 몇주전 이 시간쯤 날 부르는 널 늦었다며 돌려보낸적 있었기에, 이번에는 어머니께 xx이가 집앞에 왔다며 심각한 일이 있는 것같다고 말씀드리고 너와 내 집의 중간쯤에 있는 놀이터로 향했다.
네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없었다.
만나자마자 여느때처럼 대학교생활이 힘들다 투덜대던 네게, 난 평소처럼 '힘들면 자퇴하던가'라는 말을 던지며 자퇴 안할거면 참고 다니란 말을 덧붙였다. 그런 나에게 오랜친구는, 너만 그렇게 말한다며 그래서 너랑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가 대화를 멈춘지 5분쯤 흘렀을까
넌 대뜸 낮은 목소리로 자신이 겪는 일들을 수면위로 떠올렸다.
"정아, 너 우리 아버지 서울에 치료 받으러간거 알지?"
"응 간경화라고 저번달에 니가 말했잖아. 아저씨 건강은 좀 어때?"
"간암 4기래."
순간 턱. 숨이 막혔다. 그리곤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올려다본 네 표정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내가 상상 할 수도, 위로 할 수도 없는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겠지.
난 괜찮을거라는 그 흔하고 막연한 위로 한마디 꺼낼 수 없었다. 그 어떠한 세상의 좋은 따뜻한 말로도 널 위로 할 수 없음을 알기에 내가 고작 꺼낸 말은
"아주머니는? 어떠셔?"
"엄마? 충격이 큰 가봐. 많이 안좋아.
아버지 서울가고 내가 아버지 대신 일을 하고 있었는데 거래처 사장님이 날 김사장 이렇게 부르더라?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세상의 모든 짐을 내가 다 짊어진 느낌이었어. 난 고작 24살인데 말야"
"야.. 집에 우환이 들었을 때 제일 무서운게 누군줄 아냐? 친척이야. '친'한'척'하는 사람들.
그러니 약한 소리하지말고 정신차리고 네 엄마, 너네집 재산 니가 지켜. 아줌마 가정주부 셔서 충격이 다른사람보다 클거야.
그리고 아버지 일 왜 너가해? 형은?"
"형 취직했다고 했었잖아. xx에서 일하는데 신입사원 퇴근이 새벽 1시래. 토일요일도 없고 점심때 화장실에서 쪽잠 잔다더라. 서울에서 부산은 절대 못 와."
평범한 집안에서 자라 이때까지 평범하기만 했던 나는, 아버진 건물사업을 하시고 어머니는 가정주부 였던 널, 고등학교 때 철없이 잠깐 부러워했었다.
넌 늘 하고싶은것 사고싶은것은 다 샀으며,
난 사고싶은것 7~8개중 꼭 필요한것 하나만 말하는 아이였다.
내가 사전기능만 되는 샤프 전자사전을 가지고 있을때, DMB가 되는 웅진 전자사전을 가진 네가 잠깐.. 아니 사실 그건 많이 부러웠다.
이렇게 내가 한때 부러워 할정도로 행복하던 넌데.
왜 하필 네가 가장 행복할때 가장 커다란 시련이 찾아왔을까..
너는 이 상황이 꿈 같다고 말했다. 이 모든 상황을 말할 사람이 없어서 날 불렀다고 말하며 자신의 짐을 나에게 나눠 준것같아 미안하다고 되뇌었다.
나는 네가 짐을 준다고 내가 받을 사람으로 보이냐며 괜찮다고 가볍게 말했지만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들어주는 것과 멋없는 현실적인 말 밖엔 해줄 수 있는게 없다. 난 아직 좋은친구 되긴 멀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