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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Aug 08. 2016

삭발의 이유

모르는게 죄

모르는 게 죄가 되는 줄 오십줄에 서자 알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하여 그동안 몰랐던 것을 모두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모르는 게 죄인 걸 알았다는 것이다.

알게 되었다는 수준도 겨우 눈치정도다.

어림하여 눈치로 때려잡을라 말라 하는 수준이다.

 모르면 병이고 모르면 사망이다.

그런데 나는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누군가 안다고 하는 말들을 믿어 왔고 그것을 안다는 지식으로 묶었다.

굴비처럼 주렁주렁 엮어서 남의 앎이 나의 전부인양 천장에 매달아 놓고 쩝쩝 입맛을 다시며 짠맛을 흠감했다.

진짜 굴비인지 플라스틱 가짜 굴비인지 뭐시기인지 저시기인지 나의 눈은 똑바로 박혀 있었던가ᆢ

오늘 정보 다르고 내일 정보 다른 정보홍수 위에 둥둥 떠다니는 종이배같은 나ᆢ

일단 나는 모르는 걸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몰라서 죄송합니다.

알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렇게 시작하기로 마음 먹고 나니 나의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죄인인듯 또다른 무게감이 엄습했다.

모름의 무게감이다.

최근 나는 두 번째 삭발을 강행했다.

그것은 나에 의한 나를 위한 나만의 강령이었다.

내가 모름을 선언 하고 공부라는 명찰을 다는 순간 내안의 모순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모순들은 제각각 권세를 얻어 마치 살아있는 괴물 같았다.

나는 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그런데 내 안에는 거칠고 억센 괴물같은 것이 함께 있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내가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자 하는 마음의 크기만한 괴물이 딱 붙어 있었다.

어느날 별것도 아닌데  불꽃이 날아든 것처럼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리고 짜증을 내고 소리지르고 폭발을 했다.

나는 그때  마음의 눈으로 보았다.

성냄 내 안의 화의 형상을 느꼈다. 이것은 화의 에너지구나 라고

어떤 이유로 화가 났는가는 크게 중요치 않다 화의 에너지를 불러오는 것은 어떤 이유라도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유를 붙이면 붙일수록 화의 에너지는 거창하게 그럴듯하게 명분화해서 제 에너지를 드러낸다.

화는 그렇게  화라는 에너지 덩어리였다.

그것을 노력하여 없앤다는 것은 절대로 ᆢ네버ᆢ없애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기쁨이란 것도 에너지 자체다.

어떤 이유라는 것을 붙인다해도 그것은 순수한 에너지라는 사실이다.

목화토금수라는 오행을 공부하면서 나는 글자만  외우고 있었던 것이다.

목은 성냄. 화는 기쁨. 토는근심. 금은 슬픔.

수는 놀람

이런 키워드를 그저 암기만 했었지 실제 우리 몸과 마음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드러나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국자가 국맛을 모르듯 말이다.

내몸에 있는 것도 못찾다니ᆢ

나는 목이 강한 사주다.

그래서 목의 에너지가 강하다. 목은 성냄의 에너지다.

나의 인성 문제가 어쩌고 하기 이전에 나의 본질 에너지 비율이 성냄의 에너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동안 나의 모자람을 탓하고 나를 다스리려고 노력했음에도 어느 누구도 당신의 에너지 덩어리가 성냄이라고 말해준 사람은 없었다.아마도 일찍 알았더라면 나를 덜 괴롭혔을까ᆢ자책감이나 답답함

지금은  어떤 것으로 화가 날 때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단지 이유고 나는 화의 에너지를 보고 있어ᆢ이건 화의 에너지일 뿐이야 ᆢ연구하고 깊이 파고 들여다봐도 시커먼 괴물인 성냄이라는 에너지를 너는 보는 것이야

문제 해결은 아니겠지 ᆢ

상황은 더 나아지진 않을거야ᆢ

그냥 성냄이라는 에너지만 설칠거야 그리고 모든 것을 파괴하겠지ᆢ결코 좋지 않아ᆢ라고 나는 그 성냄의 에너지를 바라본다.

어느때는 그것도 잘 안될때도 있다 그때는 내가 나를 바라보는 것을 놓쳤을 때  목의 에너지 성냄의 에너지에게  내가 잡혀 먹혔을 때다ᆢ웃기게도 내가 약해지면 오행의 에너지가 나인양 나 자체인양 행세한다.

 그래서 곧 성냄이 내자체가 된듯해진다.

그러나 결코 성냄의 에너지 목은 나자체는 아니다.

나는 그 오행을 조절하는 조절자이다.

관찰자이다.

이 위치 이 노릇을 잊을 때 오행의 요소가 주인노릇을 하려든다.

화내고 근심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고  기뻐하고ᆢ

나는 내 안의 괴물 즉 에너지를 보았고 그것이 가장 극렬하게 광분하였을 때 두 번째 삭발을 행했다.

머리카락은 3센티 자라있었다.

길게 길러 우아하게 올림머리 하려했던 나의 계획은 수정되었다.

3센티는 클리퍼로 잘려나갔고 나는 다시 까까머리가 되었다.

웃기게도 성냄의 괴물이 한 순간 침묵처럼 사라졌다.

그 야수는 자기의 본 넝쿨 장미꽃나무 숲으로 사라져 잠시 몸을 숨기고 지금은  장미꽃잎을 내게 날리며 그 향기로 내속의 벨을 부르고 있는지 모른다.

목은 성냄이며 그것은 야수이며 야수는 사람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넝쿨 장미꽃나무에 숨어 산다.

내안의 것도 못찾으면서 무슨 도통공부냐 라는 증산도 도전의 태모님 편 말씀이 오버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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