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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Sep 28. 2016

고구마 케이크의 비애

과유불급

이틀 저녁 무렵 아들은 고구마케이크를 들고 들어왔다.

생일에 케이크가 등장하지 않으면 이벤트가 꽝이라고 생각하는 아들은 케이크를 모셔왔다.

아들은 고구마케이크라면서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는 맛일 거라고 장담하면서 케이크를 식탁에 올려놓았다.

 치즈케이크 딸기 케이크 쵸코케이크 ᆢ계피맛까지 섭렵한 우리들은 잔뜩 기대했다.

케이크는 2만원대며 그야말로 고구마 케이크 명칭에 걸맞는 주자였다.  군고구마 땟깔을 연상케하는 겨자빛 케이크는 나는 고구마랍니다 속삭이며 우리에게 촛불을 붙여주길 재촉했다.


작년 대비에 비해 딸과 나는 아들의 생일에 시종 미안해하며ㅡ케이크를 모셔온 주체가 아들이었으므로ㅡ조심스러웠다. 케이크를 선물해 주지못한 미안함에 그저 아들이 자진 이벤트를 여는 것에 과한 액션을 취했다.

ㅡ우와 맛있겠다. 역시~

엄지를 치켜 올리며 생일노래를 씬나게 불러댔다.

 아른거리는 촛불의 차분함이 박수 바람과 아들의 입바람에 사라지고 형광불빛에 노란 고구마 케이크가 노출되었다.


초를 뽑자마자 케이크는 과감하게 컷팅되었다.

예전에 우리는 치즈케이크를 먹다가 맛이 없어 냉장고가 먹도록 방치한 적이있었다. 냉장고도 결국 뱉어낸 케이크는 음식물 쓰레기통이 삼켰다.

노란 치즈케이크와 노란 고구마케이크는 오버랩되었다.

우리는 케이크의 단면을 보고 순간 경악했다.

 

케이크의 본맛은 빵임에도 빵은 거의 없고 대부분이 고구마 덩어리였다. 주객이 전도 되었다.

한 스푼 먹어 본 맛은 그야말로 고구마 으깬 죽맛이였다.

고구마 자체는 맛있지만 고구마만 먹기에 고구마의 숨막히는 목졸림 혓바닥을 말려버리는 느낌은 지울수가 없었다. 커피를 두 잔째 마셔도 고구마의 질척거림이 혓바닥을 둔감하게 했으며 고구마의 진격에 우리들은 포크질 세 번을 도전하고

그것도 고구마를 발려 내고 얇은 층의 빵맛만 겨우 맛보고 고구마 덩어리를 포기했다.


고구마를 좋아하지만 고구마가 케이크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되는 것인데 ᆢ

알다시피 고구마는 목이 많이 메이는 음식이다.

고구마가 좋다해도 한 개 이상 먹기에는 질린다.뭐 사람에 따라서 다를 수도 있겠지만 우리는 고구마 케이크에 금방  질렸다.

그것은 마치 만두피는 얇고속이 너무 많은 것과 같고 지나친 앙꼬로 빵맛을 느낄 수 없는 것처럼 조화롭지 못했다.

치즈케이크도 지나친 치즈맛에 빵인지 치즈덩어리인지 몰랐던 것처럼 말이다.

새로운 케이크를 만들고 퓨전하는 것도 좋지만

주객이 전도되어선 오히려 고구마도 버리고 케이크도 버리는 것이다.

 케이크 빵이 7이고 고구마가 3으로 조화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을 버리는 것에 있지 않고 조화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체계에 참신한 창조는 발전하고 확장되지만,

기존의 것을  완전히 버리거나 도외시 하는 것은 고구마 케이크 같이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오히려 아무런 제 역활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존의 질서를 조율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

새로운 것과 기존의 것을 아우르며 진화해 나가는 것이 어떤 것인가.

나는 변화 속에서 조율과 조화의 문제를 생각해본다.

케이크 빵을 없애고 고구마케이크는 진정한 케이크의 승자가 될 수 없다. 그것은 단지 고구마 덩어리일 뿐이다.

기존의 질서와 지식을 버리고 새로운 창조만을 구할 수 없다.














실패의 후린 맛을 겪었던 케이크 트라우마 탓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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