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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Jun 02. 2017

그때는 왜 그랬을까

증명사진으로 증명하기

-너의 눈자위는 파래. 그래서 너에게 광기가 있어.

누가 이 말을 내 귀에 흘려 넣었을까.

나는 그 말을 별로 친하지 않는 학급우에게서 들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가물하다. 하지만 지금도 기억하는 걸 보니 그 말이 깨나 인상적이었나보다. 그 말을 한 이는 누구였는지 존재 자체가 기억나지 않는데 말은 남아서 여지껏 나를 지배한다. 가끔씩 내가 거울을 볼때면 눈동자와 눈자위를 유심히 살필 때가 있다. 아마도 그 버릇을 그때 들은 말의 인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을  자신도 모르게 아무렇지 않게 하곤 하지만 누군가는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누군가는 말을 쓰레기 뱉듯이 내 맽는데 상대방은 돌아서 사라지고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지만 상대가 흘려놓은 말의 쓰레기는 악취를 풍기며 평생을 따라 다닌다.

 이상하게도 좋은 향기도 오래 남긴 하지만 그건 아주 특별한 경우고 거의 태반은 악취만 남는다.

 좋은 향기는 짧고

악취는 더럽게 길게 간다. 씻어내고 방향제로 덮어도 이상하게 악취는 오래간다.

 너의 눈자위가 파래. 그건 광기야.

이 말은 내 인생에 악취 비슷하게 남아있다. 신탁처럼 .. 그래서 때로 두렵기 조차하다. 미칠 것 같은 광기가 실제로 도래할 것 같은 느낌에 휩싸일 때 정말, 미치는 건 아닌가..하는...

누가 거짓말이야 그건. 해도 그 말은 예민했던 시기에 이미 나의 정신을 압도해 버렸다.

 열 아홉 살때 나는무척 예민했던 거 같다. 그 때는 대학을 포기하고 낙오자가 된 기분이었다. 친구들이  다음 단계의 허들을 넘을 때 나는 허들에 걸려 넘어져 땅바닥에서 무릎을 움켜잡고 있어야했다.

 누구나 넘을 수 있는 허들을 나만 못 넘은 느낌이라서 그것이 내게 자아의 멘탈 붕괴로 이어진 것 같다.

 재수를 했어도 이상하게 꼬이면서 스스로 그 길을  벗어났을 때 학업운이 더럽게 없던 때였다.

 아니, 나의 의지 장애가 문제 였을 것이다. 끝까지 버티고 그냥 하고 싶은대로 밀어 붙였으면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많이 망설이고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병이었다.

  자신이 특별한 재능으로 승부할 것이 아니면 남들 유치원 갈 때 유치원하고 학교 갈 때 학교 가고 그렇게 사회의 틀에 잘 순응하는 것이 오히려  자신에게 맞는 길을 선택하기가 수월해질 수 있다.

 누군가는 연어처럼 거슬러 가며 자신의 비늘을 떨구고 옆구리 살이 터지는 걸 알면서도 물살과 바위를 몸지랄치면서 거슬러간다. 못 거슬러서 그 자리에 죽도라도 그 도전을 멈추지 않는 특별한 어종이 있기는 하지만 대다수 물고기는 그냥 순리대로 흐르는 대로 산다.

 자신이 연어족인지 그냥 어족인지를 구별하는 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한다.

이런 식으로 자기 고집이 강한 사람이 있다. 이런 사람 유형은 조직이든 조직 아닌 곳이든  거스르는 기질이 있는 것이다.

  한 번 대박을 치면 화끈하게 쳐주실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 놈의 고집 때문에 온 몸의 영광의 상처는  결국 너덜거리는 패배로 인생 막장에서 막장을 치뤄야 한다.

 나는 그때 왜 그랬을까.

항상, 지나고 보면 자신이 자신을 이해할 수 없을 때가 많은 거 같다. 그때는 분명 옳다고 생각한 선택이 어느 지점에서 왜곡되기 시작해서 옳은 지 그른 지 경계선이 모호해진다.

 나에는 흉칙한 증명 사진이 한 장 있다. 19살 겨울방학 때 짝은 사진인데 머리는 가위로 맹구머리처럼 짧게 잘라서 그야말로 맹구 팔푼이처럼 보이는 얼굴이 되었다.

  그 어느날 부터 뜨개질로 뜬 녹색모자를 쓰고 밥을 먹고 잠을 자고 한시도 모자를 벗지 않고 쓰고 있자 아버지는 밥상 머리에서도 모자를 쓰고 있냐며 핀잔을 주셨다.

중2였던 여동생이 큭큭 웃으며 말할까 라는 눈짓을 내게 보냈을 때 나는 눈알을 힘있게 굴렸다.

눈알에서 보이지 않는 레이저를 쏘았음에도 여동생은 자꾸 빈틈을 보이며 큭큭 웃어댔다.

 옆에서 뭔가를 눈치챘다는 듯 나에게 음험한 눈빛을 날리는 남동생이  아버지의 얼굴을 한 번 쓰윽 쳐다보더니 툭 던지듯 말했다.

-누나 머리 빡빡

어, 저 놈이,

-야, 무슨 말이야. 니가 뭘 알아?

-맞잖아 누나, 척 봐도 알겠네. 누나는 그러고도 남잖아.

-정말이냐?

아버지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에게 물었다.

침묵

-맞아요. 아버지. 언니 머리카락 잘랐어요.

아버지의 말씀

-가지 가지 하는구나.

엄마는 옆에서 쏘우쿨하게

-모자 벗어 봐

-그래 언니, 이제 다 알아버렸으니까 모자 벗구 생활해.

나는 속으로 잘 된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래, 이참에 답답한 모자로부터 해방해야겠다.

나는 거침없는 속도로 모자를 벗었다. 멀끔히 밥숟가락을 들고 있던 아버지와 동생들은 갑자기 내 머리를 보자마자 다같이 약속이라도 한 듯 합창으로 박장대소했다.

-햐  도대체 네 머릿속에 뭐가 들어 앉았냐? 졸업식도 얼마 안남았는데 어쩔라고

-졸업식 그냥 모자 쓰고 가면 돼지 뭘 그래.

나는 퉁명하게 내 뱉고는 밥숟가락을 열심히 운전했다.

그리고 그 이후부터 집안에서는 모자로부터 해방되었다.


이후  나는 모자를 쓰고 졸업식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모자를 쓰고 한복을 입고 나타난 나에게 대해 별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호기심 가득한 옆짝만이 물었다.

-모자는 왜 썼어?

-응, 그냥. 추워서.

나는 졸업식 때 찍은 사진의 필름을 사진관에 맡기고 며칠 후 인화된 사진을 찾기 위해 사진관에 들렸다.

-어, 학생 왔군.

나는 사진을 받고 그것을 넘겨 보았다. 오빠와 나란히 찍은 사진이 제법 잘나왔다. 한복을 입고 모자를 썼는데 어색하지는 않았다. 다만 튈 뿐.

-학생, 오늘도 모자를 썼네. 졸업 사진에도 모자를 썼던데.

무슨 사연있나?

-사연요? 있죠?

-모자 벗으면 안 될일  있어?

-뭐... 안될 일은 없지만, 그냥은 안되구요. 아저씨가 공짜로 사진 찍어주시면서 보시면 되잖아요.

사진관 아저씨는 털털 웃으며 그래라 했다.

나는 괜한 짓을 하는 건가 싶었지만 기념 사진도 괜찮겠다 싶어 증명사진 찍는 의자에 앉았다. 사진관 아저씨는 나의 제안에 호기심과 흥미를 느꼈는지 아주 의욕적으로 사진 찍을 준비를 했다.  조명이 환하게 켜지고 눈이 부셨다.

-찍는다. 모자 벗어라.

나는 성큼 모자를 벗었다. 그리고 모자를 손에 움켜잡았다.

아저씨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맹랑한 얘가 다 있구나.

나는 환한 조명에 오로지 눈을 감고 싶었다.

빨리 조명의 불빛이 꺼지길 기도하며 눈부심에 눈살을 찡그렸다.

-빨리 찍으세요.

-알았다.

그리고 펑!

그리고 나에게 공짜로 남겨진 흑백 증명사진 한 장.

그 사진을 보관하다가 어느 날 내 개인 앨범에서 그 사진을 보고 너무 내 모습이 못생기고 추해보여서 얼굴에다 검은 안경을 그려 넣었다. 그리고  버리기에는 좀 아까운 기억 같아서 그 추한  증명사진은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증명 사진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처음으로 머리를 삭발한  열아홉 살의 나는 그때 당시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한순간 불현듯 일어난 광기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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