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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몽 Jun 06. 2017

콩나물의 갱생

잭에게  보내는 세 번째 수다

잭, 오늘은 내가 좀 수다스럽더라도 그러려니 해주길 바래.  새가 창문 근처에서 심하게 짖어댈 때가 있는 것처럼 오늘은 내가 그런 새가 된 기분이야.  사실 새의 기분은 난 몰라. 그렇다는 거지. 가끔  동네 개들도 한 밤중에 느닷없이 서로 주고 받듯이 짖어댈 때가 있어. 일종의 그런 기류가 나한테 흐르고 있는 게 아닐까?
여자 셋이 만나면 접시가 깨어진다고 한다든가. 아줌마 수다 뭐 이런 말도 있지.
저번에  내가 키웠던 콩나물 말이지 두 개의 작은 화분에 키웠잖아. 그거 하나는 정말 콩나물  국 끓여 먹었어. 햐~그 화장솜에 뿌리를 얼마나 독하게 내렸는지 엉키고 설켜서 뿌리 부분은 그냥 아웃해야 했어. 뿌리가 여리고 가늘잖아 그런데 그 생명력이 얼마나 끈질긴지 정리가 안돼. 콩 뿌리는 화장솜을 죽기 살기로 붙들고 있는 것 같았어. 좀 마음이 아프긴 했지만, 난 맛을 봐야했어. 결과물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었는데 좀 잔인한 생각이 들긴 하지만 내가 겨울 동안 그리고 지금도 먹고 있는 다른 식물들을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거지. 하지만 손수 기른 걸 생각하면 좀 마음이 아프더라. 맛은 어땠냐고?
음... 맛은 개인적이라도 뭐라고 말하긴 그렇지만 일단 인간의 입장에서 내 입은 별로였어. 아삭하기보다 약간 질긴 콩나물이었어. 그리고 뿌리가 통통하지도 않았어. 대량으로 잘 길러진 콩나물과는 달랐고, 아마도 그건 콩 자체가 콩나물용 콩이 아니라서 그런 걸지도 몰라. 어쨌든 하나 남은 화분의 콩은 그냥 통째로 뽑아서 유리병에 꽂아 뒀지. 그런데 물만 먹고 이렇게


자랐어. 그리고 계속 자라고 있고.

콩나물 하나가 싱크대에 떨어져 있어서 그냥 버리기에는 좀 너무했나 싶어 그걸 그냥 창가 미니 화분에 쿡 꽂아 두었는데 요렇게 자랐어.

나무 젖가락 높이 만큼 옆에서 키재기 하는 저게 콩나물이야.  

잭, 콩이 깨어나니 무섭게 자라네. 냉장고에 있는 콩은 조용히 죽은 듯 살아있어. 꼭 죽은 거 같이 있어. 그런데 저렇게 녹색 잎들을 마구 토해낸다. 저 무한한 기적과 능력이 저 콩안에 프로그램 되어 있다니 놀랍지 않아?

 콩이나 인간이나 존재하는 그 자체는 놀라운 기적같아. 그 성장의 프로그램은 언제 어떻게 환경의 조건만 가능하면 그 본성을 드러내고 자신의 참모습을 펼치네.

 인간의 영혼은 씨앗과 같은 걸까?

조용히 숨죽이고 있다가 인간의 몸을 통해 프로그램을 드러내는 걸까?

콩의 목적은 뭘까?

콩이 무슨 마음으로 저렇게 녹색 잎을 키울까?

키워지는 걸까? 아니면 스스로 키우는 걸까?

 

단호박 먹은 다음에 호박씨 안버리고 두 개 그냥 심었다. 그런데 작은 화분에 뿌리를 내리고 호박 잎을 내 보이더라고.  요즘 나는 씨앗을 화분에 심고 그것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아주 신기해 하고 있어. 그냥 당연한 게 당연한 것이 아닌 어떤 신기한 이 지구의 현상에 대해 잠시 멍해진다.

 며칠 전에는 산딸기를 사먹었는데 믹서기로 돌렸는데 씨앗은 안갈리고 남더라고. 그냥 주스용 칼날이지만 씨앗의 단단함을 보고 놀랐지 뭐야. 난  그 산딸기 씨앗도 버릴 수 없었어. 왜냐면 그것도 죽은 게 아니라 땅속에 심으면  언제든 산딸기 나무가 된다는 거잖아. 그래서 잘 말려서 보관했지. 가방에 씨앗들을 들고 다닐 거야. 그리고 산이나 공터에 뿌려 줄 생각이야.

 산딸기 씨앗도 작은 화분에 심어봤어. 싹이 나올지 안 나올지 나도 몰라. 하지만 일단 심어봤어.

 씨앗의 꿈은 열매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일 테지. 자신의 분신을 만들어내려는 운동을 하려는 거잖아. 인간의 삶이란 것도 자연의 일부인데 결국 자신의 분신을 남겨두려는 운동을 하다가 생을 마감하고

 남겨진 자식.. 후손... 이렇게 영생토록 이어지는 거겠지...

요즘 결혼 안하고 저출산하고 이러는 거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현상이라고 생각하면 될까?

후손이 없어진다....? 자신의  DNA의 영속성은?

끊어지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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