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에게 보내는 관찰편지
2017년 5월 26일
잭, 콩나물 키우기를 한 후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르게 바쁘게 갔네. 물을 줬냐고?
물, 가끔 줬지. 플라스틱 화분통에 화장솜을 깔고 과자 포장통에 스폰지 깔고 그 위에 통을 올려놨지.
물을 자주 안줘도 빨아들일 수 있는 구조를 해놨지. 이틀 지나니까 싹이 쬐금 나오더라. 그런데 왜 발아가 어떤 건 빠르고 늦는지 모르겠다. 요이땅 시작한 날은 같은데 말이지. 싹이 나오는 빠르기가 다 달라. 오늘 보니 어떤 놈은 팍 자랐어. 나 콩나물 등급이요! 소리치는 거 같다니까. 일찍 그렇게 자라나오면 제일 먼저 뜨거운 냄비 속으로 들어가는 건 알까?
인간도 말이지. 너무 빨리 꽃 피우면 그만큼 빨리 먹히는 법이라고. 너무 늦은 놈은 어떻게 될까. 아마 도태되어서 쓰레통으로 갈 수 밖에 없어.
그런데 그 쓰레통에 갈 수 밖에 없는 콩도 다른 환경을 준다면 싹이 나올까? 나올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공을 많이 드려야 할 듯해.
사회라는 콩나물 시루에서는 조직의 질서와 규범이 존재하는 건 확실해. 모두 같이 올라야 콩나물의 용도로서 제대로 굴러가는 거겠지. 뭐, 적용하기 나름이겠지만.
성장이라는 건 때에 맞게끔 되어지면 다같이 성장해야지. 너무 빨라도 너무 늦어도 안되는 거 같구.
물 공급만 정성 들여 해주면 때가 되면 다같이 콩나물 되는 이치를 보자면, 콩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 물공급하는 나의 정성도 만만치 않겠지.
잭, 요즘 너는 아무 소식이 없더라. 모험을 그만 두고 집에 쳐박혀 두문불출인거야?
동화속에 갇혀서 꿈만 꾸는 거야?
좋은 꿈 많이 꿔라. 꿈이란 씨앗과 같아서 언제 어느 때 발아가 시작될 지 모르지.
오월 날씨 어제 오늘 바람이 장난 아니였어. 바닷 바람 같더라고. 동해 겨울 바닷가처럼 봄바람이 그렇더라.
낮에는 한여름처럼 더웠는데
저녁에는 온도차이가 많이 나서 후덜덜 했다고.
세상에나. 온도차이가 겨우 몇도 인데 얼어버릴 것 같았어.
인간의 몸이 예민해. 걸어다니는 온도계라고.
우린 참 여려. 콩만도 못한 기분이 들때가 있더라고.
살아있다는 게 말이지. 보이지 않는 신의 손에 의해 돌보아진다고 생각해봤어. 내가 콩나물을 키우듯, 저 나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질서가 나를 키우고 있는 게 아닐까하고... 그런데 죽이잖아. 신이 인간을 잡아 먹으려고...신이 살찌려고 신이 영양공급 받으려고...
내가 저 콩나물 길러서 먹으려고 하듯이 말야... 그런 자연의 질서가 있는 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