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간 45분의 비행

새벽 5:55분의 공유

by 밴쿠버이작가
5:55 오오오.




어렸을 때 뉴질랜드란 나라에 살았었다.


뉴질랜드는 블핑 제니 때문에 더 유명해진 거 같은 나의 작은 생각. 나도 그렇게 수수하게 거기서 학교를 나왔다. 1990년 끝자락 유학 중이었던 장작 12시간이라는 비행을 어떻게 버텼지? 싶다. 지금처럼 좌석 해드 뒤편에 장착된 대단한 스크린과 미디어 셀렉도 없던 아주 예전 비행기에서 그 긴 시간을 뭘 하며 버텼는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지금은 남편 애들 나면 나란히 앉아 오는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지만 없던 비행기 멀미란게 생겨버렸다.


작고 직사각형의 꺼칠한 그 베개를
어떻게 놔도 도저히 불편해 미쳐버리는 줄 알았고
랜딩 45분 정도 남기곤
내 생에 처음 느껴보는 답답함에
로켓처럼 그 자리에서 어딘가로
발사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겨우 랜딩 해 가방 찾는 레일까지 한참을 걸어가 우린 대화 없이 각자 할 일을 한다.


남편은 컨베이어 벨트 앞으로 사람들 사일 비 짓고 들어가 다크가 턱까지 내려온 흑빛 얼굴로 짐을 하나씩 찾아 끌어다 놓고, 난 애들과 한쪽에 서서 짐을 쌓아 올릴 카트 두 개를 몰아놓고 기다렸다. 그런데 잠시 얼굴을 다른 곳으로 향한 찰나에 누군가 카트 하나를 가져가 버렸다.


어이가 없어서 정말.

중1이 되어가는 아들은 나에게 기리기리 난리다.

왜 놓쳤냐고.


그렇게 두 번째 어이가 없었다.


아들에게 미친 거 아니야 라는 레이저를 쏘며

“If you are not gonna solve it together

don’t complain “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간단하게 그대가 해결할 거 아니라면 조용히 있으란

말이다. 누구든 잠이 부족하면 예민하다 느낀다.


오후 6시 반 비행으로 밤을 꼬박 새며 영화 다음 영화 밥 그리고 더 영화시청만 아들은 극도로 피곤 하단 증거다.


그중 모든 걸 중립으로 지키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엄마라 읽는다.
내가 중립을 지켜야 애들이 잘 큰 건지,
원래 중립을 지켜야 지혜로운 건지.
에라이


어쨌든, 그렇게 캐나다에 다시 돌아오니..


아, 우리 가족은 3.5년 만에 5주를 한국에서 보내고 돌아왔다.


어쨌든, 그렇게 캐나다에 다시 돌아오니 깨끗한 것 좋아하는 남편은 8개의 여행가방 밑에 붙어있는 바퀴 4개,

8x4=24. 스물네게의 바퀴를 다 닦아 거실로 들여다

놓아주었고, 난 개구리 다리로 주저 앉아 주방용품, 음식, 애들 옷, 내 옷, 선물 등등으로 나누기 시작했다.

이것도 대화 없이 이뤄진다.




살짝 어수선한 나의 집.


젤 그리웠던 에스프레소 머신,

닦아 놓고 간 정수기,

떠나기 전까지 손에 들었다 놨다

가져갈까 말까 고민했던 애들 여벌 운동복,

내 니트, 크로스 백이 한쪽에 보였다.


역시 안 가져가길 잘했어.
가서도 못 입은 옷들이 몇 개였나
3박 여행에 속옷 4개는 기본인 나.




두가지의 미션


한국 일정 중 두 가지의 미션을 품고 갔었는데

첫번짼 100세가 되신 할머니 뵙고 오기,

두 번째 엄마아빠의 이사다.

이 이야기도 따로 해볼 거다. 내일 할까..

어쨌든 그 두 가지 일을 다 이루고,

캐나다로 돌아온 거다.


다 닦아논 가방을 쫙 쫙 펼쳐논 남편 덕에, 난 개구리 다리로 이것저것 분리해 제자리 넣고 대충 치즈 토스트로 끼니 때우고 자기 전에 피자 한판 시켜 먹었다. 꾸역꾸역 저녁 11시까지 버티다 눈꺼풀 내 힘으로 못 치켜세울 때쯤 잠이 들었고 새벽 4시 50쯤 잠이 깨버렸다.


잠은 왜 깨서..
이럴땐 수면 12시간 쉽게 넘기는
남편 너님이 부럽네..




점심메뉴


당장 오늘 애들 학교 보내야 그들도 시차적응이 쉬울 거 같아 날 밝으면 쌀 애들 점심메뉴부터 걱정이다. 아, 캐나다에선 아직 엄마들이 일일이 학교 점심을 싼다. 그 고민 사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애써 신경 쓰지 않으려 했던 것들을 하나씩 다시 들춰보게 된다. 2026 다시 시작하는 애들 학원비, 학교에서 온 이메일들, 그리고 다시 시작될 점심 도시락 메뉴. 그 수많은 메일 사이에서 머리 한구석에선 ‘냉동에 새우튀김하고 빵 구워서 버터 발라 몇 쪽 보내야겠다’ 생각하던 찰나 극적인 이멜 하나를 발견했다.


*우리 학교에는 매 학기 시작 1주일 전까지, PAC이라 불리는 학부모 단체(일명 녹생어머니)가 동네 식당에서 고른 10-12가지 메뉴 중 주 1회 점심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 개학 전 미리 결제만 해 두면 매주 수요일, Hot Lunch(따듯한 점심)가 별도로 제공된다.


그 정신없던 한국 일정 속에서도 이 결제를 잊지 않고 해둔 나 자신을 오늘만큼은 진심으로 칭찬하고 시다. 어쨌든 오늘, 두 아이에게 따근 하고 신선한 점심이 제공된다는 이메일을 확인한 것이다. 그쯤, 아마 잠이 확 달아난 거 같다. 도파민 과다 분비인가. 옆에서 자는 남편 내 핸드폰 불빛에깰까 뒤돌아 어깨 말려 가며 한 시간정도 핸드폰을 하다 보니 다시 자긴 글렀다 싶어 훌쩍 흘러 주방에 앉아 English Breakfast Tea 한잔 내려 브런치를 키니 5:55 오오오의 시간이다. 오~다 정말. 오~.




NOW


한국의 일정 다시 캐나다로 복귀.

8개의 짐 속에 들었던 물건들, 한국에서의 만남,

부모님의 이사, 다시 시작된 이민자의 삶,

뻔한 식사 메뉴, 단조로운 베이식, 인종, 동선,

오해, 비행기의 스크린, 2번의 식사 그리고 침묵.

이 모든걸 9시간 45분 비행만 타고 오고가면

느끼게 되는 감정들이라니 알면서도 놀랍다.


생생할 때 앞으로 요 며칠 적어 놓고 싶다.

내일 올릴 산타의 이야기도 한번 더 정리해야 하니

시차적응이 왠지 두렵지 않다 싶을 거 같다


지니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