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손에선 락스 냄새 왼손에선 퐁퐁냄새

한국여행이 두려운 이유

by 밴쿠버이작가


시차 힘들지?



시간이 지나 다시 내 집에 돌아온 캐나다에서 어색한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아마 하기 싫은 것들이 한 두 개가 아닌가 보다. 돌아오니 비어있는 냉장고부터 채워 넣었다. 우유, 빵, 요구르트, 치즈, 토르티야, 양상추, 양배추, 당근, 양파, 바나나, 딸기, 닭가슴살, 초코 머핀, 계란, 베이컨 그리고 냉동 새우튀김. 기본장 리스트에다 도시락거리 두어 개 추가했다. 장 보러 갈 기운은 남편도 나도 없어 공항에서 집에 오는 택시 안에서 인스타카트라는 앱을 통해 배달을 시켰더니 짐 푸르는 사이 도착해 있었다. 아마 한국의 쿠팡이 날 배려놓은 거 같다.


캐나다로 돌아온지 하루, 이틀 그리고 삼일째다 되니 주방에서 몸 풀기까지 왜 그리 귀찮게만 느껴지는지. 늘 하던 건데 말이다.


어휴, 설거질 언제 다 하냐.
어휴, 파스타? 마늘으깨 또 언제 볶고 앉아 있지..
먹으면 또 주방도 다 정리해야 하는데..
정수기 물, 음쓰, 젓가락 따로 닦기
세척기가 오래돼 얇은 젓가락들은 손설거지 해야한다
아주 가지가지네


귀찮아 지는 내가 한심하다. 늘 하던 건데 말이다. 해외생활이 오래돼서 한국이 그립지 않냐? 아님 해외생활을 오래 해서 한국이 덜 그리운 거야? 난 한국에서 다시 돌아와 내 인생에 다시 복귀하는 이 감정 기분이 너무 고되다. 한국 좋다. 가족도 오랜만에 보고 친구들과 시간도 소중하다. 이젠 10명 만날 사람들에서 5명으로 자연스레 줄여지는 시기니까 말이다. 그런데 뭐.. 만나서 뭐..? 난 다시 돌아가서 이 감정을 추슬러 단조로운 삶으로 다시 집중해야 하는 그 과정이 이미 머릿속에 그려져 신이 나다가도 다시 가라앉히게 된다.




커튼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여긴 제주다. 초등학교 친구들 4인방이 있는데 한 명은 뉴욕에 있고 나 그리고 나머지 두 친구들과 1박 2일 제주도 여행을 계획해 맞이한 아침이다. 늘 4인가족 숙박만 다녔어서 싱글침대 3개가 있는 트리오방은 처음이었다.


코 곤다는 친구는 왼쪽에- 잠은 혼자 자야 한다는 오른쪽에- 그리고 내가 가운데 침대에 누었다. 바스락 거리는 이불을 뒤척이다 보니 커튼사이로 빛이 들어온다. 코 곤다는 친구는 세상 아기처럼 고요히 잤고, 혼자 자야 한단 친구는 미동도 없이 한 자세로 자고 있었다.


그 사이 누운 난, 아침 버릇 때문에 젤 먼저 눈이 떠진 거다. 고요하다. 캐나다만큼은 아니어도 많이 고요했다. 대형창문엔 마사지 노래방 제주흑돼지 인형뽑기 가게들이 보인다. 여긴 제주다. 그래 여긴 제주지. 오늘 저녁 비행기로 다시 서울을 가지만 우리에겐 오후까지의 시간이 있으니 다행이다 싶으며 난 캐나다로 돌아가지. 다시 돌아가면 이런 기분은 한동안 못 느끼겠다 싶어 먼지 많은 호텔 공기를 코로 쑥 들이키며 기억하기로 했다. 제주. 미동 없던 친구의 목소리만 들린다.


지혜야 일어났어?




시차? 빨리 해치워야 하는거야.?


캐나다는 풀 냄새 비 냄새 바람 냄새가 강렬하다. 난 청아한 공기 안에 두 발로 지탱하고 서있는 듯한 기분의 이민자다. 한국을 다녀와 다시 캐나다 삶에 적응하려 노력하는 것도 귀찮아버린 나이 들어가는 엄마다. 악작같이 여기 묶어놓고 저기 매달리고 싫은 소리 듣지 않으려는 삶. 왜..? 굳이.. 객석이 꽉 차 있는 내 무대에 난 더 이상 누구도 내 삶을 드려다 보길 원하지 않는 상태로 바뀌었다. 이 두발이 이젠 어디에 서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기본으로 돌아가던 생활습관대로 16가지의 식품들을 주문에 채워 넣는 일, 시차 적응에 애쓰려 2-3끼 해먹이며 돌아온 다음날 부터 애들은 학교를 보냈다. 그런데 도착한지 4일째인 오늘 늘어질 때로 늘어난 고무줄이 ‘탕’하고 끊어져 버린 거 같다.


난 왜 굳이 피곤한 애들을 보내야 하지?
의무를 다하라고? 교육과 윤리를 배우라고?
그냥 하루 쉬게 두자

했더니, 첫째는 10:30에 둘째는 12시가 다 돼 일어나더니 하루 종일 남매가 덜 투닥거리고 둘이 낄낄거리며 농담 따먹는 컨디션으로 돌아와 버렸다. 버릇. 내 버릇 때문이다. 꽉 막힌 내 버릇.


이건 꼭 해야 해, 그래야 다음에 더 잘하지,
이건 꼭 지켜야 해, 그래야 남들 보기에 좋아.


뭐 그런 맥락에 악보다 선이라고 생각하는 내 윤리랄까. 그래서 오늘 내 오른손에선 한 달 묶인 화장실 닦느라 락스 냄새, 설거지하다 행주 빨고 또 닦고 불리고 다시 퐁퐁 쭉쭉 짜 설거지 한 왼손에선 주방세제 냄새가 난다. 내가 맡은 파트라는 걸 해야 하니깐. 오늘도 쉽지 않다. 한국의 특별한 냄새가 기억나는 것도 아니고, 어떤 음식이 죽도록 다시 먹어보고 싶은 것도 아니고, 한국 여행은 나에게 후폭풍이 강렬한 trip이니 당분간 또 가고 싶지는 않을 거 같다.


지니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