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어지면 삐뚤어진 데로
눈을 감아도 보이는 걸 어떡하라고!
예를 들어, 일상으로 바빴던 며칠 내버려 뒀던 아이패드가 날 주시하고 있는 느낌이 들 때 라든가, 아침 먹다 들러붙은 반숙 노른자가 주방 워크탑이라던가, 에스프레소 머신에서 스파우트에 묻혀있는 추출한 우유 찌꺼기라던가 그런 것들 말이다. 캐나다 돌아온 지 5일째가 지나니 집안 곳곳에서 날 주시하는 것들이 늘어 버렸다. 드라이기에 들어있는 먼지, 세면대에 고여있는 석회의 핑크빛 고인 물, 그 옆에 물기 조금 머금고 있는 매직 스펀지, 샤워실 유리문에 낀 때, 한 달 비워 쌓인 잔잔한 먼지들 등등. 한국에서 시간이 지나간 만큼 같은 공간인 캐나다에서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가 버렸나 보다. 그렇게 보면 A군이 열심히 산다고 그의 시계가 빨리 돌아가는 것도, B군이 게을리 산다고 그의 삶이 0.5배 느리게 가는 것도 아닌 건 팩트다. 양과 질의 문제랄까. 기다려주길 원하는 일은 늘 제시간이 맞춰 딱딱 굴러오고, 흘러가버렸으면 좋겠단 일들은 늘 나 몰래 옆 허벅지에 들러붙은 밥풀 같다.
우리 집은 계란 요릴 잘해 먹는데 익혀먹고, 스크랜불, 계란장조림, 오믈렛 그 정도. 개인적으론 계란요리는 오일이 중요하다 생각해 스프레이형 아보카도 오일, 포도씨유 아니면 올리브유를 사용한다. 한국 가기 전부터 똑 떨어진 올리브유 때문에 사러 가야지 가야지 하다 그냥 출국해 버린 거다.
My plates are full. (이미 할 일이 넘친단 말)
한국 여행 다녀와서 하자.
그렇게 다 놓고 돌아오니 왠지 올리브유 없이 계란요릴 하기가 싫다. 한국 돌아온 지 3일째 되던 날. 둘째 오후 수업 라이드 중 동네 유기농 슈퍼 Pomme (불어로 사과란 뜻)에 들렸다. Pomme은 기본적으로 가격도 높지만 디피도 제품도 일반슈퍼보단 고퀄이고 오는 사람만 오는 것 같다. 난 메인 장을 여기서 보진 않고, 올리브 오일이나 가끔 빵, 요구르트를 구매하러 가끔 들른다. 여긴 올리브 오일 종류도 다양하고 제품마다 돌아가며 세일가격 때릴 때가 있어 그것도 기대가 된다. 그날은 거기서 고른 새로운 올리브유 한 갤 와인 한 병들듯 멋지게 들고 나왔다. 냉압착한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올리이 이제 내 주방에 앉아 있다. 귀여운 놈.
이제 어떤 계란 요리도 난 문제없어 후훗
아이들이 배고프다 말하면 뭐 대충 단백질 한 해개에 야채 한두 가지에 밥이던 파스타던 해주면 되지만 남편이 배고프다 그러면 머리 뒷부분에서 빠직하는 느낌을 받는다. 아직 깊게 들어가 나 자신에게 이 신호가 불쾌함인지 걱정인지 물어보진 않았다. 답을 알 거 같아서이다. 어쨌든, 그가 야밤에 배가 고프다고 말하며 낼 아침은 진짜 맛있는 거 먹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그때 알았다. 이 기분은 ‘불편함’이다. 그냥 인간 자체가.. 아니 내 자체가.누가 시키면 하기 싫고, 내가 해주고 싶을 때만 켜지는 기쁨이, 변명 같고- 그냥 난 못됐다. 그래도 완전히 나쁜 마음만 있는 건 아닌 게, 또 난 그다음 날이 되면 난 쭉 나온 입으로 주방 가스를 키며 그가 200% 만족할 음식을 내놓다. 그냥 이렇게 버릇을 들인 내가 다 잘못인 거 같다.
계란도 있겠다 맛있는 올리브유도 있고, 베이컨, 아보카도 그리고 Pomme에서 사 온 Fruit & Grain Breakfast Bun. 블루베리가 박힌 홀밀 동그랗고 씨디 사이즈 만한 납장한(안이 비었음) 빵도 있으니 머리가 휙휙 돌아간다.. 흠.. 얇게 썰은 양파도 들어가면 개운하겠어. 피클도. 이번에 Pomme에서 사온게 적당한 당도와 시큼함이 있으니깐 추가, 계란은 반숙에 저염버터도 통으로 썰어 그 안에 넣어버리면 맛나겠고, 공항에서 돌아오며 주문해 놓은 베이컨과 아보카도가 빛을 볼 시기다. 블루베리에 빵을 갈라 고소한 버터를 썰어 넣고 연기 나는 빵 사이에서 녹을 동안 프라이 반숙계란 넣고 영국소금 살짝 엄지검지로 으깨 뿌려 으깨지 않은 아보카도는 1/4일, 베이컨 1.5개를 쑤셔 넣은 뒤 양파슬라이스도 몇 개 쑤셔 넣는다. 이 모양을 보니 애들 장난감 중 방귀장난하는 파우치처럼 생긴 모양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올라온다. 아직도 뜨거워 샌드위치에서 열기가 슬슬 올라온다. 또 맛있다고 맛이 가겠구먼-
어서 와서 먹어~
아이들과 남편이 허겁지겁 반숙계란 국물 뚝뚝 흘리며 먹는 걸 보니 나도 크게 한입 물어 커피 한잔이랑 맛나게 먹으며 모두에게 말했다.
난 이 샌드위치를 ‘못난이 샌드위치라고 부를 거야
한국에 있는 동안 엄마에게 의지한 나의 주방 생활에 다시 On이라는 버튼이 켜진 거 같다. 붉은빛 뛴 사이렌 같달까. 귀찮은데 또 다들 먹고 쑥쑥 자라는 거 보면 안 할 수 없고, 또, 뭐, 맛도 있고. 매일 매달 하나씩 쌓인 이놈의 주부 스킬. 내 친한 지인이 했던 말에 나도 피식했다.
아니 내가 왜 된장 찌개 잘 끌렸다고 칭찬을 받아야 하나구!
칭찬받을 일은 아니지만 또 단점을 콕 집어 이야기하는 것도 용납은 어렵다. 주부 주방 놀이. 늘 하던 짓인 걸 어쩌나 싶다. 어디서 맞교환도 안 되는 나의 스킬. 오늘은 주방에서 어떤 물건도 날 째려보지 않는 거 같다. 가족을 만족시킨 결과일까, 그냥 셀프 만족 같기도 하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 아닌 일, 배부르면 그냥 다 행복하다.
지니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