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과 인정

스코틀랜드 인

by 밴쿠버이작가
넘쳐서 간 유학길이 아니었다.




모래놀이를 하면 두꺼비집을 만들다 몇 갈래로 길을 만들며 홈을 팠었다. 그리고 물통 하나에 가득 부은 물을 시작점부터 부어버리면 베이지색 모래가 갈색으로 물들며 세상 신나게 흘러간다. 내 유학도 그렇게 시작 됐다. 엄마는 엄마의 이유로 난 나대로 아빠는 아빠대로, 할마닌.. 그냥 하자는 대로..


초6 때부터 뉴질핸드 나라에 중고등학교 나오며 한국인, 뉴질랜드인, 호주인, 피지인, 스코틀랜드인, 스리랑카인, 마오리족, 유고슬라비아인, 중국인, 태국인, 대만인, 홍콩인, 일본인 등 학교에서 만났다. 그들의 이름들은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떻게 그렇게 다양할 수 있었지? 싶다. 영국 대학교 때 만났던 인종들보다 훨씬 다양했다. 혼자 유학 왔다는 이유로 주위친구들이 날 잘 챙겨줬는지 그들의 집들도 다 한 번씩 또 더 깊어진 사이는 여러 번 집 초대도 받아 그들의 가족들도 만나고 때론 식사도 여러 번 함께 했었다.


대가족인 스콧트랜드인은 내 인스타툰에도 잠시 나오는데 에이미란 친구였다. “말” 니히히히히히히 우는 그런 말을 좋아했는데 그 친구집은 학교에서 멀리멀리 농장에 살았다. 대 가족으로 살던 그 친구의 집은 갈 때마다 노란색 갈색 적인 안정적이며 북적였다. 큰 나무 가구에 소파엔 블랭킷이 널려있고 곳곳마다 말과 함께 찍은 에이미의 가족사진이 수두록 했고 주방엔 집어먹을 음식이 넘치고 모두가 거리낌 없이 순환하듯 보였다. 가족. 새로운 형태의 자유스러움 이였다.


그녀는 늘 인자한 미소를 뛰고 언제든 뭐든 도와줄 태재로 잔잔한 친구 관계를 유지했고 글씨 또한 꼭꼭 눌러 담은 필기체를 구사했다. 소코트렌드 억양 때문에 늘 혀를 안으로 먹은듯한 영어발음으로 말 한마디 한마디 귀 기울여 듣게 하는 마술 같았다. 또 공부는 얼마나 잘했는지. 바름이 몸에 밴 친구였다.


궁금할까 봐 살짝 이야기하지만, 그 친구는 늦은 결혼 해 아이를 낳고 잘 살더라. 스튜어디스 직업을 갖고 여전히 잔잔한 미소를 뛰며 살고 있다. 학년이 올라가며 나도 한국인들과 가까워지며 서서히 멀어졌지만 늘 마주칠 때마다 같은 미소로 인사해 줬다.


“Hi :)”


밴쿠버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