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행자에 관한 기록

by 청흥

사람의 인생에 좋은 일이 없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좋은 일만 있다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대개는 그 경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자신이 가는 길에 좋은 일이라곤 없다는 것 마저도 인지하지 못할 만큼 천천히 감정이 무뎌져버린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어떤 것에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서야 삶을 돌이켜보고 암울한 인생사에 대한 숙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몇 해를 보냈다.

별것 아닌 것으로 오랜 시간 압박을 받았다. 살던 집은 전셋값을 돌려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집주인은 사라졌고, 나는 내 긴 우울에 추천사를 적어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병에 걸렸다. 친지는 세상과 작별하고, 다니던 회사는 코로나로 영업이 힘들어져 문을 닫았다. 문을 닫은 곳은 회사만이 아니었다. 자주 가던 김치찌개가 맛있는 식당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맛을 아마 평생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틈새에서 나는 점점 무기력해지고 있었다. 좋은 일이라고 해 봤자 아직 내 곁을 떠난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정도의 현상유지밖에 없었고, 의외로 이런 일들에도 깊은 상처를 받지 않는다며 놀랐지만 그저 점점 마음이 돌아가는 틈새에 굵고 가는 모래알이 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게 된 것 뿐이었다. 계속해서 인생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서 했던 일이 좋아지지 않는 것이 제일 힘들었다. 감흥없는 삶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내가 만든 작품에 대한 재미를 앗아갔다. 완성되는 청사진을 그리며 두근거리던 마음이 동요하지를 않았다. 망쳐도, 아예 손조차 대지 않아도 어떤 생각도 들지가 않는다. 좋아서 했던 일이 더이상 좋지 않은 것이 제일 힘들다. 내가 만든 것의 가장 좋아하는 부분을 두세개씩 꼽을 수 있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이정도는 남들도 할 수 있는 것' 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자신이 없어진다.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게 되고, 쌓아온 커리어가 꺼림칙해진다.


아주 어릴 적 나는 모든 별이 하나의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 생각은 지금도 유효한데, 나는 별똥별을 보고 다른 별로 떨어져 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주에서는 서로의 중력에 이끌려 떨어지는 것 밖에는 이동할 방법이 없을 테다. 그렇게 계속해서 떨어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나는 죽어서 별이 된 사람들을 낙행자(落行者)라고 불렀다.


내 인생도 어쩌면 그와 마찬가지다. 세상만사가 오르막길 내리막길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털어내고 일어서려 하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에서 새로운 사고가 생겨나고 어느새 나는 바로 조금 전 '저 아래' 라고 생각한 곳을 딛고 서 있었다. 무뎌진 감정이 떨어지는 느낌마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나는 더 떨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떨어지기만 하는 게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평탄한 길에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반복하며 인생의 앞을 향해 걷는 만큼, 나 역시 수많은 떨어짐을 반복하며 그들과 다를 바 없이 삶의 종착지를 향해 떨어지며 나아갔다. 위에서 보면 다른 사람과 같은 줄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이도록.


돈이 있으면 이런 우울은 사라진다고들 한다. 하지만 나는 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감흥없는 삶은 가격을 치르는 것에도 큰 마음을 쓰지 못한다. 나는 모아둔 돈을 허무하게 날렸다. 그러나 아무 후회도 없다. 바로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몇만원의 과소비에 덜덜 떨었을 텐데 정말 아무 감흥도 들지 않았다. 늘 좋은 말만 하던 인터넷 커뮤니티 계정의 최신 댓글에는 불만만 쌓여 갔다. 자주 가던 식당의 실수가 용서되지 않는다. 수량변경을 요청한 주문품이 그대로 온 것이 너그러이 넘겨지지 않는다. 그동안 좋게 좋게 해결해왔던 것들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짜증이 났다. 비단 내 인생사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인격 역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며 삶이 연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불행은 비교에서 태어나는 것이라는 말도 한다. 나는 이것 역시 동의하지 않게 되었다. 주변을 보지 않고 산다고 해도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파악조차 못하여 그것에 대한 좋음과 나쁨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건 병의 영역에 가깝다. 이것은 진한 도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타고난 장애의 문제일 수도 있다. 어쨌든 자신의 문제를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해도 기구하고 아니고 정도는 가늠할 수 있을 게 아닌가. 점점 좋은 일이 없어져 갈 때 결국 나는 내가 지금 아주 힘든 상황이고, 내가 모르는 사이 성격 역시 완전히 빛이 바랬으며 오래된 경첩처럼 삐그덕 삐그덕 무뎌져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삶에 지쳐 이 별의 중력을 거슬러 다른 별의 대기권으로 들어가기를 꿈꾸는 동안 등허리가 남극에 잠긴 것처럼 욱신거리며 차갑게 굳어 갔다. 낙행자는 이런 기분을 겪으며 살아가는구나. 우울이 깊어질수록 등껍질이라도 달린 것 처럼 몸이 무거워졌다. 그 장수종이 엉금엉금 기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결국 내가 정착할 새로운 행성을 찾는 일은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아 그만두었다.


이 와중에도 나를 기다려 주는 지인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망가져가는, 금이 가고 자꾸 작동이 멈추는 스마트폰 같은 몸을 이끌어 오늘의 응급처치를 한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일상에 지장이 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잘 움직이지 않는 패널을 단련해야 한다. 배터리가 끊기지 않도록 충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야 다음에 닥칠, 다음 불행에 대한 처방전을 받는 데 좀 더 도움이 될 것이 아닌가. 떨어져가며 살 지언정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우주에서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그것이 낙행자의 사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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