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장된 열등감

나는 매달 구찌 지갑을 하나씩 날리고 있어.`

by genie

'난 매달 구찌 지갑 하나씩 사서 바닥에 뿌리고 있다?'


명품 매장으로 가면 진열장 안에 구찌 지갑이 다소곳하게 누워있다. 직원이 장갑을 끼고 지갑을 하나씩 꺼내 보여준다. 나는 구경만하고 매장을 나온다. 나는 이미 구찌지갑을 매달 사고 있으니까. 구찌 지갑은 60~부터 시작한단다.


오피스텔 거주비 월 65만원 / 관리비 10만원.


나는 매달 구찌지갑을 월세와 맞바꾼다. 만져본 적 없는 명품 지갑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심정이란. 속이 쓰리다.


봉급에 비해 왜 이렇게 비싼 곳에서 사냐고 묻는다면 '집이 없어서요.' '하루만에 집을 구하려면 어떻게 해야해요?'라고 답하고 싶다. 내게는 집을 매매를 할 현금도, 전세 대출을 받을 시간도 없었다. 양심없는 발령청. 하루만에 발령지를 알려주고 내일 당장 출근하라고 한다. 힘 없는 신입이 거기서 '저기요 죄송한데요..' 라고 말할 짬이 있을까? 그냥 까라면 까라고 '네'하고 답한 뒤 다음 날 새벽차로 부모님과 함께 상경했다. 부모님은 집을 알아보셨고, 나는 출근을 했다. (근데 며칠 더 여유가 있더라도 서울에 전세를 구할 수 있었을까? 글쎄)


돈의 크기는 인생의 시작점과 같다. 돈이 많을 수록 시작점이 훨씬 앞선다. '인생 길'은 '돈 길'이다. 그걸 어떻게 걸어나가냐는 사람마다 다르고 활용도도 천차만별이지만 무튼 돈이 많으면 시작점도 다르다. 깔린 길의 소재도 다르다. 흙 길과 돈으로 시멘트를 쫙 바른 고속도로 중에 어떤 길이 속도가 더 빠를까?


시키는 공부를 했고, 공부를 했더니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갈 수 있었다. 내 노력의 댓가로 서울로 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서울의 인프라에 적응이 되었다. 별 의심 없이 고향이 아닌 서울로 시험을 쳤다. 고향보다 컷트라인이 높다보니 시간도 노력도 배로 들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너무 허망하다. 앞만보고 달렸더니 오히려 더 뒤쳐져 있다. 고향에서 살았다면 월세도 안나갔을텐데, 조금 더 여유롭게 살았을 텐데. 벌써 아파트 구하고 하고싶은것도 더 여유롭게 할 수 있었겠지. 세계여행도 조금 편하게 갈 수 있었겠다. 대학원도 스스로 등록할 수 있었겠네. 나는 뭣 때문에 여기에 올라와서 '개고생'을 하고 있는가.


서울에 오면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많다. 그러나 시골뜨기가 서울로 올라오면 그 기회를 구입할 돈이 없다.


서울의 인프라를 누리기 위해 올라와 있다고 하기엔 '기회비용'이 너무나도 컸다. 그 기회비용이 커질 수록 서울에 집이 있는 동료, 친구들에 대한 열등감도 커져갔다. 월급을 보며 '작고 소중한 월급'이라며 우울해하는 동료들을 보며 실소가 터진다. '너희 집은 그래서 몇 년 사이에 몇 억이 오른거니?'


슬픈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이 고민은 고향에 있는 친구들에게마저 '공감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고향 친구들은 묻는다. '그러기에 왜 거기 올라가서 개고생하고있니, 뭐 하러 욕심을 부려서 되도않는 서울살이를 하니'라고 말이다. 그 친구들에게는 그 세상이 '전부' 고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니까.


그 말에 시원하게 답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처량하다. 나는 정 맞는 돌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다. 열등감을 넘어 열패감이 극에 달한다. 고향 친구는 자신이 하는 말이 맞다는 표정을 지으며 들고있는 구찌백을 만지작 거린다. 나는 친구의 구찌백을 친구의 얼굴에 던져버리는 상상을 한다. '너 잘났다.'


이대로 살 수는 없다 싶어 서울에 있는 공무원 임대 아파트를 알아봤다. 월세를 줄이든 전세로 갈아타든 뭐든 해야 했다. 공무원 아파트 청약 점수를 맞춰본다. 유일하게 있는 청약 감점요소에 '단독세대 거주'가 있다. 욕이 나온다. 결혼도 안하고 부양가족도 없는 사람은 어디 들이대지도 못한다.


마음을 가다듬고 생각해본다. '그래, 내가 왜 여기 와 있는거지? 진정하고 의미를 떠올려보자.' 나는 여기서 만난 사람들이 좋다. 가치관도 맞는 게 많고, 함께 있는게 즐겁다. 서울에 있으면 취미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많다. 사람들의 견문이 넓다.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적어도 내가 만나는 친구들은 '덜 꼰대'다. 책을 읽고 이야기할 수 있고, 시사 이슈에 대해 한 목소리도 낼 수 있다. 근무환경도 지방조직보다는 민주적인 편이다. 적어도 기성 꼰대들에게 '아니다'라고 자기주장을 하는 mz세대들이 꽤 있다. 나는 그게 좋다. 서울에 집은 없는 이방인이지만 정서적으로는 서울이 편하다. 적어도 그렇다.


서울은 기회의 땅이다. 미국의 실리콘벨리는 무너졌다고는 하지만 대한민국의 실리콘벨리는 판교도 세종도 아니고 아직도 서울이다. 그 기회를 '적어도' 탐하고 발휘시키고 힘껏 활용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나라가 될 순 없을까?


매달 구찌 지갑을 살 돈을 아끼면 뭘 할 수 있을까? 다이소에서 1000원짜리 2000원 짜리 청소포 중에서 뭘 살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거고, 올리브영에서 버블 염색약을 사는 대신 미용실에서 염색을 했을거다. 친구들에게 취업턱으로 밥도 몇 번 살 수 있었을 것 같다. 돈이 없어 친구들과의 약속을 미루는 일도 줄어들 것 같다. 연애를 하며 데이트 비용을 걱정하는 스트레스도 덜할 것 같고, 엄마 아빠 동생 가족여행도 떡 하니 보내줄 수 있었을 것 같다. 동료들처럼 학원도 몇 개 더 등록해보고, 차도 끌 수 있었겠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기계발에 더 투자할 수 있었을 것 같다. 월급날 고정지출을 빼보고 '아, 이번 달에는 여름 옷도 하나 사야지.'하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을 것 같다. 그리고 당장 집은 못 사더라도 '영끌해서라도 변두리에 집 사서 이자는 갚을 수 있겠다.'라는 희망은 품어볼 수 있었을 것 같다.


노동소득은 개인이 발휘할 수 있는 노력의 댓가다. 불로소득 유산 등 그런건 바라지도 않는다.(있다면 좋겠지만) 그냥 내가 열심히 번 돈이 내일 그리고 그 다음날을 좀 더 윤택하게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희망을 갖고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구찌 지갑이 바닥에 흩뿌려져 내 노력에 대한 보상이 반감되지 않으면 좋겠다. 아 서울에 관사만이라도 좀 줬으면 안되겠니.


내가 가진 열등감은 추상적인게 아니다. 현실이다. 현실의 벽에서 감당하는 열등감은 마음수련을 해서 해결될 게 아니다. 해결책도 제법 명확하다. 다만 실현되지 않을 뿐이지. 사회가 조장한 이 열등감좀, 어떻게 해결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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