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우연 Jul 20. 2016

직업으로서의 정치가

최근 리얼미터에 따른 차기 대통령 후보 지지율은 반기문, 문재인, 안철수, 박원수 순이었다. 대통령 후보니까 이들을 모두 정치인이라 불러야 옳을까. 글쎄다. 반기문은 아직 외교관이라는 타이틀이 자연스럽다. 그를 대선 후보로 상정하고 이야기하는 기사에서는 ‘정치인으로서의’ 반기문이라는 사족이 붙는다. 박원순은 자신을 여러 차례 행정가라 강조했다. 대신 안철수와 문재인은 정치인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다. 똑같은 대선 유력 후보자인데, 차이는 어디에서 올까. 아무래도 후자는 전·현직 국회의원이기 때문이 아닐까. 이처럼 한국에서 직업 정치인은 여타 정무직 공무원이나 정당인 중에서도 단연 유권자가 뽑은 국회의원 집단으로 통한다.


이런 국회의원과 관련해 잊힐만 하면 등장하는 이슈가 있다. 이른바 국회의원의 ‘특권 내려놓기’다. 최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국회의원 반값 세비와 같은 제안은 박근혜 대통령도, 안철수 전 대표도 주장했던 바다. 여당이 주장하는 면책특권 폐지, 혹은 종종 불거져 나오는 국회의원 정수 들이기 등 역시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이다. 대중의 국회에 대한 불신을 고려한 제안임을 이해한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가기관 및 단체 중 국회의 신뢰도는 17.4%로 사법부, 행정부, 검찰, 경찰, 언론계, 군대 노조 등 13개 조사대상 중 꼴등이었다. 이처럼 한국 시민들의 눈에 국회의원은 소명을 가진 직업이라기보다는, 그 자체로 특혜이자 권위인 감투다. 정치학자 최장집은 "오늘의 한국 상황에서 정치와 관련해 중요한 것은 정치를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사회에 널리 확산돼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권력은 권위주의와 동일시되고 정치는 탐욕과 타락을 상징하는 인간 행위가 된다.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는 것은 국회의원의 몫이 마땅하다. 문제는 이들이 특권 내려놓기를 기획함으로써 스스로 대중의 ‘정치 혐오’ 현상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다. 세비 삭감과 같은 주장은 국회의원 자신이 감투자였음을 인정하는 꼴이다. 이 시점에서 막스 베버가 정치인의 덕목으로 제시한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다시 되새겨 봐야 한다. 신념윤리는 행위의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는 태도다. 반면 책임윤리는 정치인으로서 결과를 감당하는 자세다. 정치인은 두 윤리 사이의 긴장을 잘 조절해야 한다. 그런데 특권 내려놓기를 놓고 본다면, 한국 정치인 마치 모두가 신념윤리만이 가득한 척, 혹은 응당 그래야만 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는 셈이다. 그 ‘특권’이 어떤 점에서 문제였으며, 이를 없앰으로써 미칠 파장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책임윤리가 없다. 다만 내려놓는다는 선언뿐이다. 내려놓는다고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닌데 말이다.


세비는 정치인으로서의 직업수행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제공되는 권리일 뿐이다. 이를 줄이겠다고 선언함으로써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오히려 ‘세금값’에 걸맞게 노력하겠다고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책임윤리에 맞다. 국회의원의 책임윤리 없는 결정으로 인한 피해는 오롯이 국민에게 돌아온다. 세비 감축이나 의원 정수 축소로 인해 의회의 기능이 축소된다면, 이득을 얻는 것은 의회로부터 견제받아야 할 행정부나 시장 기득권 세력이기 때문이다. 의회의 약화를 선호하는 사람은 결국 평범한 사람의 민의를 기반으로 하는 의회의 힘이 강화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 즉 지금도 충분히 사법∙행정∙입법 권력에 다가갈 수 있는 기득 세력이다. 이렇게 된다면 정치인은 세비 없이도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의 ‘부업’으로 축소될 것이다. 세비 감축은 보좌관을 포함한 의회의 여타 공무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국회의원은 스스로 정치혐오의 덫에 걸려 특권 내려놓기 따위를 운운하기 전에, 책임윤리부터 돌아보자. 그네들이 할 일은 이런 것이 아니다. 


2016년 7월 14일

작가의 이전글 찰나의 해피엔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