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안정제를 처방받지 않은 유일한 날이었는데 나는 오늘따라 짜증이 솟구친다. 잠깐 나간 서울에서는 엄청난 비를 맞았고 오지 않는 버스를 대신해 탄 택시는 퍼레이드로 막힌 길을 쉽사리 뚫고 지나가지 못했다. 집에 와 유일한 내 숨구멍인 방구석에서 영화를 보려고 하면 들이닥치는 가족들에 나는 그만 짜증을 내고 말았다.
그동안 하루라도 신경안정제를 먹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나는 왜 이리도 나약한 걸까. 오늘은 유일하게 ‘신경안정제가 없어도 잘 지낼 수 있겠다’ 싶은 날이었는데 하루도 못 가서 깨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