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었다.’는 문장이 불러오는 청춘의 느낌을 이길 문장이 아직은 없는 것 같다. 내겐 특히 더 그렇다. 원래도 여름을 좋아했지만 어쩐지 나는 항상 여름에 재밌는 일이 시작됐다.
글쓰기 모임을 가입하면서 정말 오랜만에 네이버 카페 앱을 설치했다. 앱에는 내가 전에 가입했던 여러 카페들이 있었고, 그중 ‘심란팸’도 있었다. 그 카페의 개설일은 2013년 7월 10일. 정말 딱 10년 전이었다.
그때는 무리들을 다 ㅇㅇ팸이라고 불렀다. 여자 동기 5명인 그 모임은 매일 심란한 일이 끊이질 않아 심란팸이었다. 다섯 명이서 번갈아가며 심란하고, 다 같이 심란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하루도 무사한 날이 없었다. 카페는 그런 우리들의 20살을 웹툰으로 그리겠다고 만들어 놓은 곳이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한 명이 그리기 시작하고 나를 포함한 나머지는 각자 경험을 이야기하기 바빴다.
우리는 매일 아지트에 모였다. 우리의 아지트는 학교 앞 카페 골목을 벗어나 아무도 찾지 않는 골목 끄트머리의 카페였다. 자리도 편안하고 음료도 맛있었지만 늘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그래서 그곳은 정말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우리 중 커피를 마실 줄 아는 애는 없었다. 커피는 써서 못 마신다면서 매일 술은 마셨다. 술과 함께 속마음을 쏟아내며 웃고 떠들고 화내고 난리였지만 우리가 외치는 심란 중 진짜 심란한 일은 없었다. 우리는 설렘을 심란이라고 불렀다. 선배, 동기, 남자 등 대학생이 되어 겪는 여러 일상이 소재였다. 우리의 고민은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타, 교통카드를 찍음과 동시에 증발해 버릴 만큼 가벼운 것이었다.
우리는 종종 밤새 놀았다. 그래서 우리의 20살은 매일이 여름날이었다. 하루 일과가 끝나도 아직은 해가지지 않아 저녁이 온 줄 모르는 것처럼. 우리의 밤은 남들보다 늦게 찾아오는 것처럼. 매일 저녁을 여름밤처럼 내내 환하게 떠들며 놀았다.
그리고 얼마 전 지인의 홈 파티에 초대되었다. 서른이 된 나는 올해 처음 만나 친하게 된 이들과 함께 놀았다. 각자 들고 온 술과 안주를 다 먹어서, 다시 나가서 술을 더 사 올 정도로 열심히 마시고 놀았다. 갑자기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춤을 추고 누구는 그걸 사진과 영상으로 담았다. 랜덤으로 단어를 뽑아서 각자 뽑은 단어로 자신을 소개했다. 우리는 꿈을 말하고 걱정을 말하면서도 웃고 떠들었다. 다들 걱정과 응원을 주고받으면서도 새벽 두 시가 넘어 비틀거리며 집으로 오는 길엔 이 근방에서 우리가 제일 행복하다며 소리쳤다.
우리는 하룻밤 사이 많은 진심을 쏟아냈다. 걱정과 고민과 설렘과 두려움, 그런데도 행복한 모든 것들이 다 우리의 진심이었다. 함께 떠든 이들 중엔 내가 동경하는 어른 친구도 있다. 그녀는 진심을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드러낸다. 그래서 열정적이고, 그러면서도 쿨하다. 단단함이 느껴지는 그녀가 내게 말했다.
“얘, 50대도 좆밥이야.”
겁먹지 말고 좋아하는 일에 달려들라는 말을 그렇게 인상적이게 했다.
내게 청춘은 하루를 끝맺기 싫어 유예하는 시기 같았다. 그런데 그런 게 청춘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원래 재밌는 일은 밤에 일어나고, 잠들지 못하는 시간에 사건을 만들게 되니까. 그래서 10년이 지나 여전히 그대로인 삶을 살아도, 아직 청춘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서른이 된 지금 달라진 게 영 없지는 않다. 20살에는 술이 취한 밤에만 속마음을 말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술이 없는 밤에도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 마흔이 된다면, 너무 화창해서 진지한 이야기를 꺼내기 민망한 날에도 진심을 당당하게 꺼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불어 지금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그때가 되어서 미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거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