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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현 Feb 20. 2021

감히 그 밤이 그리워서

보라카이



그들이 어긋난지는 꽤 되었다. 그녀는 혼자 자주 울었고, 그의 눈빛은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채로 그들은 함께 떠났다.


빛바랜 햇빛이 그녀 얼굴의 절반을 내리쬐고 있었다. 여자는 챙이 넓은 모자를 대충 둘러쓰고 바닷가로 아침 산책을 갈 채비를 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을 깬 남자도 여전히 닫힌 눈을 비비며 여자를 따라나섰다. 예전처럼 손을 꼭 잡고 이 낯설고 끈적한 공기가 주는 설렘을 즐겼다. 바다가 있다는 허술한 화살표를 따라 좁은 골목길을 구불구불 돌아갔더니 그 끝에 정말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졌다. 그녀는 잡은 손을 풀고 뛰어나갔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감히 누릴 수 있는 것들인가 하는 자책이 들 정도로 황홀한 풍경이었다. 그녀는 그를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도 그런 것 같았다. 분명히.


그들은 해변을 거닐며 너무 로맨틱하지도 너무 소란스럽지도 않은 적당한 레스토랑을 골랐다. 음식이 대단히 맛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에메랄드빛 바닷가 앞의 레스토랑에서 그와 함께 아침을 먹는 일은 그녀에게 감히 행복이라 표현할 수 있는 일이었다.

숙소로 돌아가 물놀이 채비를 하곤 화이트 비치로 나섰다. 과연 손에 꼽을 아름다운 푸른빛의 바다였다. 그들은 해변에 늘어져 일광욕도 했으며 관광객을 상대로 매일같이 투어를 판매하는 노련한 장사꾼에 맞서 절반이 넘게 가격을 깎아내며 협상에 성공했다. 늘 그랬던 것처럼 그렇게 손발이 잘 맞았다.


그들은 영원할 것처럼 서로를 사진에 담아냈다. 곧 맞이할 시간을 망각한 것인지 모른 채 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해가 바다로 내려앉으며 붉게 하늘이 타오를 땐, 함께 해온 지난 시간들에 대해 격려를 보냈고, 자축을 했으며, 내일의 시간에 대해서는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꾹 다물었다. 그들은 각자의 시선을 둔 채 함께 왔던 길을 되돌아 집으로 향했다. 오래 사랑했던 사람들.  시간이 흘렀고, 시간에 오래 남을 이야기들.  

대부분의 것이 그렇듯, 그들도 그렇게.

그런 여행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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