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현 Feb 15. 2022

나누는 일

탁발

19년 8월 2일 메모  [__행복에 대한 집착. 무슨 대단한 삶이라고 이렇게 애달복달하며 사는 것인지. 그렇다고 가만두지도 못하는 성격__]  나도 드리고, 스님도 나누고. 아무 이유없이 서로 나누는 경험은 나누는 것이 얼마나 쉬운 지 알게 했고, 그동안 가진 것도 없이 꽉 쥐고 있었던 내 빈 손을 그대로 바라보게 했다.



 솔직히 말하면 탁발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개념도 없었기 때문에 루앙프라방에서 탁발을 한다는 것 자체에 무지한 상태였고 친구가 들떠있는 걸 보며 흥미로운 일인가 보다 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탁발 도를 닦는 승려가 경문을 외면서 집집마다 다니며 동냥하는 일이라고 했다. 한국의 것과 조금 다른 것이겠지만 비슷한 의미를 가져 탁발로 번역이 된 것 인듯 하다. 그런데 아침에 그걸 꼭 가야할까. 


 새벽4시 알람이 울렸다. 늘 그렇듯 친구와 나는 비몽사몽하는 순간에 그냥 알람끄고 자버릴지 말지를 사백만번은 고민한다. 그러나 그날은 조금 달랐다. 친구 굳은 의지로 눈을 떴고, 나는 엉덩이를 맞으며 눈을 떠야했다. 우리는 모자만 대충 둘러쓰고 전날 미리 알아둔 장소를 향해 길을 나섰다. 그런데 이 시간이면 사람들이 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 인지 눈에 보이는 사람이라고는 내 친구뿐이었다. 조금 걷다보니 공양을 할 밥과 꽃, 바나나등을 파는 상인들이 보였다. 얼만치 사야하는 지 몰라 일단 눈치를 보기로 하고 친구와 뒤로 빠져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사람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신성한 의식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어로 추정되는 언어를 사용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은 큰 소리로 떠들며 마치 축제에 온 것 처럼 굴었다. 그래, 저런 사람이 빠지면 섭섭하지. 

 어디선가 사람들이 나타나 길을 따라 낮은 의자를 줄지어 놓았다. 한눈에 보아도 관광객인 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자리를 잡고 자세를 고쳐앉아본다. 죄를 지은 적 없지만 원죄도 내 죄라면 반항 한 번 없이 감수 해 낼 것 같은 엄숙함. 저 멀리서 승려들이 줄지어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긴장할 때면 오는 내장까지 얼어버리는 불안함이 느껴졌다. 승려들은 줄 시작에서 부터 가장 끝에 앉아있는 나에게로 차례 차례 걸어 오기 시작하셨다. 그때 한 소녀가 재빨리 뛰어 내 옆에 비닐봉지를 열고 앉았다. 조금 의아했지만 긴장한 나머지 손까지 덜덜떠는 상황에서 깊이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내 차례가 되어 승려의 바구니에 밥 조금과 바나나를 넣었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줄지어 오는 순서에 감정을 느끼기 보다는 행위에 집중해야했다. 점점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밝아졌다. 옆을 보니 승려들은 앞서 받은 것들을 내 옆에 있는 소녀에게 또 나누어 주었다. 아, 또 나누는 일이구나. 정말 감동적 그 자체였다. 


나누고 나누고 나누는 일...


 승려들은 덩어리진 밥보다 실질적으로 소녀에게 도움이 될 만한 물건들을 건네 주었다. 돈, 물건, 과일 같은 것들 말이다. 탁발을 경험한 효과는 대단했다. 이렇게 마음이 개운해 질 수 있을까. 단 한번의 경험으로 마음속에 몇년 묵은 끈적한 때들이 씻겨나가는 듯 했다. 놀라운 겸험이다. 과연 여행이란 내 안에 이런 조각들을 쌓아올리고 담아보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 감히 그 밤이 그리워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